G7 에너지장관 회의는 석유 산업 몰락 '전주곡'일까?[뉴욕 in]

염현석 기자 2026. 3. 11.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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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무즈 긴장 속 G7 비축유 카드 논의…공급 충격 대비
G7 비축유 12억~13억배럴…호르무즈 통과량 약 60일 규모
유가 변동성 커질수록 에너지 전환 압력 확대
AI 생성이미지

(뉴욕=머니투데이방송) 염현석 특파원 = 주요 7개국(G7) 에너지장관 회의가 단순한 유가 안정 논의를 넘어 글로벌 에너지 질서 변화의 신호가 될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중동 긴장이 고조되면서 미국과 유럽은 다시 '전략비축유 방출'이라는 카드를 테이블 위에 올렸다. 로이터에 따르면 G7 재무장관들은 지난 9일(현지시간) 회의에서 유가 급등에 대응해 '필요한 조치'를 취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고, 에너지장관들이 추가 대응을 논의하기로 했다. 아직 즉각적인 방출 결정이 내려진 것은 아니지만, 평소 잘 꺼내지 않는 비축유 카드가 공개적으로 거론됐다는 점 자체가 시장의 긴장도를 보여준다.

이번 논의의 배경에는 호르무즈 해협 리스크가 있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2024년 기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 원유와 석유제품은 하루 평균 약 2000만배럴로 전 세계 석유 소비의 약 20%에 해당한다. 중동에서 생산된 원유 상당량이 이 좁은 해협을 통해 이동하기 때문에 군사적 긴장이나 항로 차질이 발생할 경우 국제유가뿐 아니라 글로벌 공급망 전체가 흔들릴 수 있는 구조다.

이 때문에 G7이 쥔 '비축유 카드'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로이터가 정리한 각국 비축유 현황을 보면 미국 전략비축유는 2월 말 기준 약 4억1540만배럴이다. 여기에 민간 상업재고 약 4억3930만배럴이 별도로 존재한다. 일본은 정부 보유 원유 약 2억6000만배럴에 민간까지 합치면 약 4억7000만배럴 수준의 재고를 보유하고 있다. 독일은 원유 약 1억1000만배럴과 정제품 약 6700만배럴, 프랑스는 원유와 석유제품을 합쳐 약 1억2000만배럴 수준이다. 이탈리아는 약 7600만배럴의 의무 재고를 보유해야 하고 영국은 원유 약 3800만배럴과 정제품 약 3000만배럴 정도다. 캐나다는 순수출국이기 때문에 미국이나 일본처럼 대규모 전략비축유 체계는 상대적으로 제한적이다.

이를 보수적으로 합산하면 G7이 보유한 공공·의무 비축 물량은 약 12억~13억배럴 수준으로 추산된다. 이 수치를 호르무즈 해협 통과 물량과 비교하면 의미가 더 분명해진다. 하루 약 2000만배럴이 호르무즈를 통과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G7의 비축유 규모는 이론적으로 약 60일 안팎의 물량에 해당한다. 물론 이 물량이 모두 시장에 즉시 풀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저장시설의 방출 속도, 정제품과 원유 비율, 민간 재고의 동원 가능성, 각국의 국내 소비 우선 구조 등을 고려하면 단순 계산처럼 작동하지 않는다. 국제에너지기구(IEA)도 비축유의 효과는 총량보다 방출 속도와 시장 연결성에 좌우된다고 설명한다.

그럼에도 G7이 비축유를 논의한다는 사실 자체는 시장에 강한 신호를 준다. 전략비축유는 통상 전쟁이나 대규모 공급 충격 같은 비상 상황에서만 거론되는 카드다. 즉 G7이 이 카드를 논의하고 있다는 것은 에너지 시장이 다시 지정학 리스크 국면으로 들어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비축유 방출은 근본적 해법이라기보다 일종의 '진통제'에 가깝다. 실제로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국제에너지기구 회원국들은 약 1억8000만배럴 이상의 비축유를 방출했지만 이는 공급 공백을 완전히 메우기보다는 시장 불안을 완화하는 역할에 가까웠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비축유는 단기적으로 유가 상승 속도를 늦추고 시장 심리를 안정시키는 효과는 있지만, 장기적으로 공급 구조를 바꾸지는 못한다.

이 때문에 시장에서는 또 다른 질문이 등장한다. 화석연료 중심 에너지 시스템이 반복적으로 지정학적 충격에 노출된다면 장기적으로 더 안정적인 에너지 구조로 이동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실제로 각국 정부는 최근 에너지 안보를 단순한 석유 수급 문제가 아니라 전력망, 재생에너지, 저장장치, 핵심광물까지 포함한 구조적 문제로 보기 시작했다.

물론 이번 G7 에너지장관 회의가 곧바로 석유 산업의 몰락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세계는 여전히 하루 약 1억배럴 이상의 석유를 소비하고 있고 호르무즈 해협만 해도 하루 2000만배럴이 지나가는 핵심 통로다. 석유는 여전히 현재형 산업이다.

다만 분명한 변화도 있다. 중동 리스크가 확대될 때마다 세계 경제는 유가와 운임, 인플레이션과 금리까지 동시에 흔들린다. 그만큼 화석연료 중심 에너지 구조의 취약성이 반복적으로 드러난다는 의미다. 역사적으로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1970년대 1·2차 오일쇼크는 원자력 발전 확대와 에너지 효율 투자, 이후 재생에너지 산업 성장의 계기가 됐다.

이런 점에서 이번 호르무즈 해협발 유가 변동성 역시 단순한 단기 시장 충격에 그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에너지 공급 불안이 반복될수록 각국 정부와 산업은 결국 더 안정적인 에너지 구조를 찾게 된다. 수소나 배터리 같은 신에너지원이 주목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결국 이번 G7 에너지장관 회의의 의미는 석유 산업의 즉각적인 몰락이라기보다 화석연료 의존 경제의 취약성을 다시 확인시키며 에너지 전환 논리를 더욱 강하게 만드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 있다.

염현석 머니투데이방송 MTN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