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노총 “세상 바뀌었다”… 900개 사업장서 교섭 요구 쏟아져

“세상이 바뀌었다! 원청 사장 나와라!” “하청 노동자 차별 해소, 원청 교섭 쟁취하자!”
노란봉투법 시행 첫날인 10일 오후 2시. 민주노총은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사거리에서 ‘민주노총 투쟁 선포 대회’를 열었다. 4000여 명이 참석한 이 자리에서 양경수 민노총 위원장은 “법이 바뀌었음에도 정부와 사용자가 여전히 책임질 준비가 돼 있지 않다”며 “또다시 투쟁을 선포한다”고 했다.
지난해 노란봉투법이 통과되고 올 초 시행령과 해석 지침이 나오며 원·하청 교섭이 불가피한 상황이 됐는데, 기업들은 여전히 현실을 부정하고 있다며 강력한 경고장을 날린 것이다. 이날 민노총은 조직적이고 일사불란한 움직임을 보였다. 약 900개 사업장에서 14만명 규모의 조합원이 원청 업체를 상대로 단체교섭을 요구했고, 동시에 전국 각지에서 업종별 집회나 기자회견을 열어 장외 여론전도 시작했다.

이날 오전 10시 공공운수노조 서울지역공공서비스지부는 기자회견을 열어 “대학이 직접 청소·경비 노동자와 교섭에 나서야 한다”며 고려대, 중앙대, 서강대 등 15개 대학에 교섭을 요구했다. 한 시간 뒤엔 포스코 사내 하청 광양·포항지회 등이 서울 강남구 포스코센터 앞에서 “포스코가 2만명에 달하는 사내 하청 노동자를 활용하면서 사실상 노동조건을 결정해 왔다”며 “이는 위장 하도급이자 불법 고용”이라고 주장했다. 현대모비스 생산 자회사인 유니투스와 현대IHL 노조도 모회사인 현대모비스 본사 앞에서 집회를 열었다.
비슷한 시각 전국공항노동자연대는 인천국제공항공사와 한국공항공사를 상대로, 택배노조가 속한 서비스연맹은 CJ대한통운, 쿠팡, 우체국 등을 상대로 교섭 요구에 나섰다. 건설노조는 현대건설, 대우건설, 롯데건설 등 건설사 약 100곳에 단체 교섭 요구 공문을 전달했다.
이들 하청 노조가 원청에 전달한 교섭 요구 공문에는 ‘산업 안전’ 분야 협의가 이유로 기재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결국 교섭 테이블에 앉은 후엔 임금이나 성과급 인상 주장이 나올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하청 노조들이 바라는 처우 개선의 핵심은 임금 인상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금속노조는 지난 3일 정기 대의원 대회를 열어 임금 인상을 원청 교섭의 핵심 의제로 정했다고 공표하기도 했다. 노동부는 노란봉투법 해석 지침에서 ‘원칙적으로 임금은 하청 노조와 원청 업체 간 교섭 의제가 아니다’라고 밝혔는데, 현실을 반영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산업계에선 앞으로 노사 교섭 시 노조가 유리한 고지에 설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노란봉투법은 ‘사용자의 불법 행위에 대해 노동조합 또는 근로자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부득이 사용자에게 손해를 가한 노동조합 또는 근로자는 배상할 책임이 없다’고 규정하기 때문이다. 한 대기업 노무 담당자는 “노사 교섭은 기본적으로 협상 과정인데, 노란봉투법은 노조가 파업을 무기화해 원청 업체를 압박하고 사측은 끌려다닐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들었다”고 했다.
정부 안팎에선 노조의 칼날이 정부를 향할지에 대해서도 예의 주시하는 분위기다. 양경수 위원장은 이날 “이재명 대통령 스스로가 진짜 사용자로서 공공 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교섭 자리에 앉아야 한다”고 했다. 정부 역시 공공 부문 하청 노동자의 ‘실질적 사용자’에 해당할 수 있어 교섭이나 파업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노조가 정부에 날을 세울 경우, 석유화학 분야 재편 등 주요 정책 추진에 차질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대산산단을 시작으로 핵심인 여수와 울산 등 주요 석유화학 단지 재편이 이어질 예정인데, 경쟁력 강화를 위한 설비 통폐합 등이 이뤄지려면 구조 조정이 전제돼야 한다. 이는 노란봉투법상 파업 대상에 해당한다. 국내 최대 해운사인 HMM의 부산 이전 문제 역시 노조의 협조 없이는 불가능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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