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 최고가격제 눈앞… 정유사·주유소 중 어디를 묶을지가 관건

이영빈 기자 2026. 3. 11. 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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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시행, 핵심 쟁점 살펴보니
10일 서울 구로구의 한 주유소에 주유하려는 차량이 줄지어 서 있다. 전국 주유소 휘발유 가격은 지난달 28일 1693원에서 이날 1907원까지 올랐지만, 서울 주유소 휘발유 가격은 전날(9일) 1950원에서 1946원으로 소폭 하락했다. 정부는 이르면 이번 주 석유 최고 가격제를 시행할 예정이다. 정부가 시장 주유소 가격에 직접 개입하는 것은 1997년 유가 자유화 이후 29년 만이다./고운호 기자

정부가 이르면 이번 주 석유 최고가격제를 시행한다. 1997년 유가 자유화 이후 29년 만에 정부가 시장 가격에 직접 개입하는 것이다. 1970년 석유사업법 제정 이래 단 한 번도 발동된 적 없는 제도인 만큼, 산업통상부가 고시 제정 작업을 서두르고 있지만 세부 시행 방식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다. 정유사와 주유소 업계는 아직 구체적인 대응 방향을 확정하지 못한 채 세부 내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소비자 생활물가에 직접 영향을 미칠 최고가격제의 쟁점을 짚어본다.

우선 정부가 어떤 기준으로 ‘합리적인 최고가격’을 산정할지가 업계의 최대 관심사다.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은 지난 8일 “2주 단위로 가격을 다시 산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14일마다 연료 가격 상한을 조정하는 크로아티아 모델과 유사한 방식이다.

정부는 최근 몇 주간의 싱가포르 원유 현물시장 가격 평균에 일정 마진을 더해 최고가를 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10일 알려졌다. 싱가포르 가격은 아시아 석유 제품 거래에서 기준 가격 역할을 하는 지표로, 국내 가격 산정의 준거가 된다.

정유사의 도매가격과 주유소의 소매가격 가운데 어디에 상한을 둘지도 핵심 쟁점이다. 도매가격만 통제할 경우 1만 개가 넘는 주유소의 가격 결정 자율성이 유지되는 장점이 있지만, 소비자 가격을 직접 통제하기 어렵다. 반대로 소매가격에 상한을 두면 소비자 가격 안정 효과는 크지만 영세 주유소의 수익 구조를 압박할 수 있다. 정부는 주유소의 원가 부담을 낮추기 위해 도매가격 상한에 무게를 두고 제도를 설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그래픽=김성규

◇ 도·소매 중 어디에 적용할 것인가

전문가들은 해외 사례에서 나타난 부작용을 면밀히 살펴야 한다고 지적한다. 크로아티아는 기준 국제 유가에 평균 유통마진·유류세를 더해 2주 단위로 최고가격을 재산정하는 방식을 택했다. 전체 961개 주유소의 94%에 적용됐다. 도·소매 가격을 모두 통제한 크로아티아 정부는 별도의 손실 보전을 제공하지 않아 정유사와 주유소가 상당한 재무 부담을 떠안아야 했다. 일부 주유소는 시한부 집단 영업 중단에 나서며 정부에 항의하기도 했다.

손실 보전의 기준과 지급 시기도 쟁점이다. 최고가격제 근거 규정인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 사업법’ 제23조는 가격 통제로 인한 사업자 손실을 국가가 보전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문제는 ‘정책으로 인한 손실’을 어떻게 특정하느냐다. 정유사 손익은 국제유가 변동·정제마진·기존 재고 원가 등 수많은 변수에 좌우되고, 주유소 역시 인건비·카드 수수료·부대시설 운영비 등 비용 구조가 제각각이다. 손양훈 인천대 명예교수는 “가격 상한이 설정되면 실제 시장 가격이 얼마였을지를 추정하기 어려워진다”며 “정책으로 인한 손실만을 다른 손익 변수와 분리해 특정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손실 보전 규모 시뮬레이션을 마쳤다고 밝혔지만, 임의조항이라 강제성이 없다는 점도 걸림돌이다.

보전 시기도 관건이다. 루마니아에서는 2021년 가스·전력 가격 상한제 시행 당시 정부 보상 지급이 수개월씩 지연되고, 이후엔 1년 이상 지연이 고착되면서 공급업체들이 유동성 위기를 겪었다. 한국주유소협회 관계자는 “물가 안정에 도움을 주는 최고가격제 도입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영세한 주유소가 많은 만큼 정부의 손실 보전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정유업계 관계자도 “업계 부담을 완화할 보완 장치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손실 보전을 위한 재원 마련도 과제로 남아 있다. 정부는 추가경정예산 편성 가능성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공급 불안으로 이어질 가능성

가격 통제가 공급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최고가격제가 시행되면 정유사는 가격 상승기에 비싼 원유를 들여와도 상한 가격이 적용된 국내 시장에서 그보다 낮은 가격에 판매해야 한다. 손실 보전이 충분하지 않거나 지급이 늦어질 경우 정유사가 해외 시장으로 물량을 더 돌리려 할 가능성도 있다. 정부는 정유사가 생산량의 일정 비율 이상을 국내에 판매하도록 의무화하고 주유소의 재고 축적을 제한하는 ‘매점매석 고시’를 동시에 시행할 방침이다. 하지만 기업이 생산 물량 자체를 줄이는 경우에는 이러한 조치만으로 공급 부족을 막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통 단계에서도 왜곡이 나타날 수 있다. 유가 상승 국면에선 2주 주기의 가격 조정 시점이 가까워질수록 주유소들은 판매를 늦추려 하고, 소비자들은 가격 상승을 예상해 미리 주유하려는 수요가 늘어날 수 있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유사가 손실을 피하기 위해 공장 가동률을 낮추고 생산량 자체를 줄여버리는 선택을 할 수도 있다”며 “가격 통제에만 의존하는 정책 대신 대체 수입선을 확보하고, 정유사의 수출 물량을 국내로 전환하는 경제적 유인을 주는 식의 중장기적 대책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형평성 논란도 예상된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손실 보전 재원이 결국 세금에서 나오는 만큼, 대중교통만 이용하는 시민 입장에서는 자동차 운전자의 연료비를 자신이 보조하는 셈이 된다”며 “수혜자와 부담자가 엇갈리는 구조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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