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허 위에 공장, 연구센터, 와이너리… ‘죽은 땅’에 사람이 돌아왔다
류정 특파원 후쿠시마 르포

“제 고향이 ‘돌아올 수 없는 곳’이 되는 것은 참을 수 없었습니다. 아름다운 우리 마을을 다음 세대에도 물려주고 싶은 그런 마음에...”
최근 일본 후쿠시마현 해안 마을 후타바. 15년 전 대지진으로 폭발했던 후쿠시마 제1원전이 불과 5㎞ 떨어진 이곳에서 만난 다카쿠라 이스케(70)씨는 “왜 폐허였던 이곳으로 돌아왔는지” 묻자 눈물을 글썽였다.
그는 대지진 당시를 떠올렸다. 2011년 3월 11일 오후 2시 46분, 강한 흔들림을 느낀 직후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주민들을 대피소로 가는 트럭에 태웠다. 다카쿠라씨는 “높이 16m였던 쓰나미가 몇십 초만 일찍 왔어도 죽었을 것”이라고 했다. 살아남았다는 안도감도 잠시, 50분 뒤 원전 1호기에서 수소 폭발이 일어나면서 버섯구름이 피어올랐다. 이후 원전 반경 20㎞ 주민에게 피난 명령이 내려졌고, 후타바는 이때부터 11년 동안 주민 수가 ‘0’인 유령 마을이 됐다. 다카쿠라씨는 도쿄에서 6년간 피난 생활을 하다, 피난 명령이 먼저 해제된 곳으로 돌아와 마을 재건에 참여해 왔다.
3·11 동일본 대지진 15년을 맞아 후쿠시마 제1원전에 인접한 해안 마을 후타바·나미에·오쿠마·도미오카에 다녀왔다. 원전 사태로 마을 전체가 피난 구역에 포함됐던 곳이다. 당시 규모 9.0의 강진과 쓰나미로 집과 건물이 쓸려나갔고, 설상가상으로 원전 폭발이 일어났다. 살아남은 주민들은 오랜 피난 생활뿐만 아니라 ‘후쿠시마=방사능’이라는 오명까지 견뎌야 했다. 하지만 2017년부터 조금씩 피난 명령이 해제되면서 주민들이 하나둘 돌아오고 있다. 돌아온 이들은 모두가 죽은 땅이라고 했던 이곳을 포기하지 않고 살려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고향 찾아, 친구 따라… “재건 한마음”
이틀에 걸쳐 둘러본 해안 마을들은 유령 마을에서 사람 사는 마을로 조금씩 변모하고 있었다. 이 마을 일대를 감싸고 있는 웅장한 아부쿠마산 아래 드넓은 평지가 펼쳐져 지진 전의 아름다운 풍광을 짐작케 했다. 15년이 지난 지금 쓰나미의 잔해는 거의 보이지 않았지만, 아직 텅 비어 있는 땅이 많아 적막함이 감돌았다. 하지만 드문드문 보이는 신축 건물은 건축미가 돋보였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자연이 어우러진 신도시가 탄생할 조짐도 보였다.

나미에 마을의 재건을 상징하는 도로 휴게소 ‘마치노에키 나미에’엔 포켓몬 창시자 다지리 사토시가 기증한 ‘포켓몬 놀이터’가 들어섰다. 여기에 후쿠시마산 농산물을 파는 슈퍼마켓, 푸드코트가 어우러져 마을의 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와타나베 유지(64)씨는 원래 도쿄에서 살았지만, 마을 복구에 참여하려고 8년 전 이주했다고 했다. 방사능이 걱정되지 않았느냐고 묻자 “처음엔 조금 걱정했지만 올바른 방사선 지식을 가지면 걱정할 필요가 없다”며 “이곳에서 파는 채소는 전량 방사선 검사를 하기 때문에 오히려 안전하다”고 했다.
이곳엔 후쿠시마가 고향이 아닌데도 재건을 돕고 싶어 온 이주민들도 많았다. 나미에에서 묵었던 호텔에서 만난 매니저 요시다 노부오씨는 “복구에 작은 도움이나마 보태고 싶어 6년 전 이 호텔에 취업했다”고 했다. 그는 “쓰나미 이후 이곳 바닷가 3㎞ 이내는 집을 지을 수 없게 됐다. 자기 집에 돌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안쓰러웠다”고 했다.
초등학교의 쓰나미 피해 현장을 그대로 보존해 놓은 우케도소학교박물관에서 일하는 다케다 수미(54)씨도 나미에 출신 친구를 따라 이곳에 왔다. 다케다씨는 “아름다운 자연에 반해 왔다. 이제 하나하나 필요한 것을 만들어나가고 있다”고 했다.

◇논밭 있던 곳에 공장·연구센터
대지진 전 이곳은 농어업·관광, 원전 관련 산업이 주요 수입원이었다. 하지만 원전 폭발로 모든 것이 ‘제로’가 됐다. 2017년부터 피난 명령이 일부 해제되면서 공장과 연구센터가 들어서고 있었다. 정부와 지자체가 해안 일대를 ‘부흥 재생’ 거점으로 삼고 집중 지원하고 있다.
고기능 특수 실을 만드는 방직 회사 아사노넨시는 2023년 후타바에 ‘슈퍼제로밀’이라는 공장을 지었다. 후쿠시마대를 졸업한 창업 2대 사장 아사노 마사미(65) 대표가 사업 확장지로 택했다. 5일 찾은 이곳은 단순한 공장이 아니라 문화 복합 시설이었다. 로비에 카페와 피아노 연주 공간도 있었다. 아사노 대표는 “처음 왔을 때 이곳을 복구하는 건 다들 무리라고 했다”며 “하지만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졌을 때도 다들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라 했다. 이곳은 굉장한 도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쌀로 만든 친환경 플라스틱 브랜드 ‘라이스레진’의 나미에 공장엔 젊은 직원들도 많이 보였다. 이곳에서 일하는 일다 쇼헤이(43)씨는 “후쿠시마 하면 체르노빌 같은 이미지겠지만 그걸 깨보고 싶다”며 “‘환경에 나쁜 지역’이 아니라 ‘환경에 좋은 것을 만드는 곳’으로 세계에 알리고 싶다”고 했다. 나미에엔 일본 정부가 설립한 ‘후쿠시마 국제연구교육기구(F-REI)’의 대규모 연구 단지도 들어설 예정이다.
도미오카의 해안가엔 와이너리가 조성돼 있었다. 이곳 출신인 엔도 료이치씨가 피난민 10여 명과 함께 땅을 일궜다. 와이너리 매니저 호소카와 준이치로(54)씨는 “여러 사람의 기대와 비방을 함께 받았지만, 과학적 검증으로 비방은 이제 없다”며 “이곳을 보고 사람들이 더 많이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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