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발성 경화증, 이유없이 극심한 피로 반복된다면…
만성화되면 건강한 세포·조직 공격
감각 이상·팔다리 마비 등 증상
20~40대·남성에게서 많이 발병
여러 부위에서 다발적으로 발생
초기 신호를 단순 피로로 오해 잦아
심한 피로에 직장·사회생활 포기도
MRI 등 정밀검사로 조기 발견 가능
약물 치료·운동·휴식 병행 도움

30대 주부 A씨는 최근 갑자기 한 쪽 눈이 흐려지고 팔 다리에 힘이 빠지는 일이 자주 생겼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으나, 이러한 증상이 반복되자, 종합병원을 찾았는데, 진단 결과 '다발성 경화증' 진단을 받았다.
겉으로는 멀쩡해 건강에 자신이 있었던 A씨는 생소한 병명에 깜짝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울산대학교병원 신경과 김선영 교수와 '다발성 경화증'의 증상과 치료 및 예방법 등에 대해 알아본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는 자가면역질환
다발성 경화증(Multiple Sclerosis)은 뇌, 척수, 시신경 등 중추신경계를 구성하는 신경세포에 반복적으로 염증이 생기는 만성질환이다. 면역체계가 건강한 세포와 조직을 공격하는 자가면역질환으로 신경 신호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몸의 기능에 문제가 생긴다.
김선영 울산대학교병원 신경과 교수는 "신경을 감싸고 보호하는 수초(myelin)가 손상되면 신경 신호 전달이 느려지거나 차단되고, 그 결과 시력 저하, 감각 이상, 팔다리 마비, 균형 장애, 어지럼증, 배뇨 장애 등 다양한 신경학적 증상이 나타난다"며 "병변이 중추신경계 여러 부위에 흩어져 발생하기 때문에 '다발성'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설명했다.
발병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유전적 요인과 환경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고 알려졌다.
특히 위도 45~60도 지역에서 발병률이 높은 경향을 보이는데 적은 일조량과 낮은 비타민D 수치가 연관 있다고 추정되고 있다. 청소년기 비만, 흡연, 과도한 음주 등도 연관된다고 전해진다.
주로 20~40대 젊은 층에서, 남성보다 여성에게서 더 발생하는 경향을 보인다. 증상은 중추신경계 어느 부분이 손상되느냐에 따라 다르다. 시신경이 손상되면 시력 저하, 안구 통증, 시야 흐림, 색각 이상, 실명 등이 나타난다.
김선영 교수는 "초기 증상은 수주 내 자연스럽게 호전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많은 환자들이 단순한 피로나 스트레스, 과로로 인한 일시적인 증상으로 오해하고 병원을 찾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그러나 시력 이상이나 팔다리 저림, 힘 빠짐과 같은 신경 증상이 반복된다면 반드시 정밀 검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뇌와 척수 자기공명영상(MRI), 뇌척수액 검사 등을 통해 비교적 초기 단계에서도 정확한 진단이 가능해졌다. 조기 진단은 향후 신경 손상의 누적을 막고, 장기적인 장애를 예방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과거에는 치료 방법이 제한적이어서 다발성경화증을 '점점 나빠질 수밖에 없는 병'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지난 20여 년 사이 치료 환경은 크게 달라졌다.
김 교수는 "환자의 질병 활성도, 부작용 위험, 생활 패턴, 향후 임신 계획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맞춤형 치료 전략을 세울 수 있게 된 것이 가장 큰 변화"라고 말했다.
◇조기 치료 및 운동 등 생활관리 중요
조기에 치료를 시작하면 재발 없이 오랜 기간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하며 학업과 직장, 가정생활을 이어가는 환자들도 점점 늘고 있다. 치료의 목표는 단순히 현재 나타난 증상을 줄이는 데 그치지 않는다.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신경 손상을 최소화해 장기적인 삶의 질을 지키는 데 있다.
다발성경화증 환자들이 흔히 겪는 또 하나의 큰 어려움은 극심한 피로감이다. 이는 단순한 피곤함과는 다르다. 충분히 쉬어도 회복되지 않는 깊은 피로가 지속되며, 많은 환자들이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을 정도의 만성피로를 경험한다. 일부는 신경학적 장애보다 이 피로 때문에 직장이나 사회활동을 포기하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 인해 자신감 저하와 우울감이 동반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피로는 눈에 잘 보이지 않지만, 환자의 삶의 질을 크게 떨어뜨리는 중요한 증상이다.
김 교수는 "이러한 피로는 결코 의지 부족이나 정신적인 문제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며 "최근 연구들은 뇌 위축, 근육 감소, 에너지 대사 저하, 면역 활성화, 신경전달물질 변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피로를 유발함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따라서 환자가 "재발은 없는 것 같은데 너무 지친다"고 호소할 때, 단순히 휴식을 권하는 데 그치기보다 우울감 여부, 보행 기능과 근력 변화, 수면 상태, 뇌 영상 변화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보는 세심한 진료가 요구된다"며 "또한 피로 역시 다발성경화증의 중요한 일부이며, 적극적인 관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약물 치료와 함께 생활 관리도 매우 중요하다. 규칙적인 가벼운 운동은 근력 유지와 피로 개선에 도움이 되며, 충분한 수면과 휴식은 신체 회복에 필수적이다.
감염 예방, 금연, 적절한 비타민 D 유지 등도 질병 안정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반대로 과도한 스트레스와 무리한 과로는 증상 악화를 유발할 수 있어, 자신의 몸 상태를 이해하고 조절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김 교수는 "다발성경화증은 더 이상 '치료할 수 없는 병'이 아니다. 조기 진단과 꾸준한 치료, 올바른 생활 관리가 함께한다면 많은 환자들이 자신이 계획한 삶을 이어가며 살아가고 있다"며 "다만 초기 증상이 모호하고 일시적으로 좋아지는 특성 때문에 진단이 늦어지는 경우가 여전히 적지 않다. 반복되는 시력 이상, 팔다리 저림, 이유 없는 극심한 피로가 나타난다면 단순한 스트레스나 과로로 넘기지 말고 신경과 전문 진료를 받아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차형석기자 stevecha@ks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