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언론, 전쟁 보도에 '증시' 렌즈만 가진 것 같다"

김예리 기자 2026. 3. 10.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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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 한국 언론, 증시 소식이 전쟁 고통보다 중요한가
이란 어린이 168명 숨진 학교 폭격에 '코스피·증권' 기사 2.2배
민간인 사망 1200명 넘어서는데, 'K-방산' 낙관·증시 보도 수놓아

[미디어오늘 김예리 기자]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중동 지역 긴장이 급격히 고조되며 두바이행 노선 등이 결항한 가운데 3월1일 인천공항의 이용객들이 관련 뉴스를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침공 이후 이란 내 민간인 사망자가 1200명을 넘어선 가운데, 증시 동향을 앞세우는 한국 언론의 '전쟁 보도'가 도를 넘었다는 언론계 안팎 비판이 거세다. 어린이를 포함한 민간인 피해가 늘지만 확전을 주식시장 영향 관점에서만 해석하는 보도가 주를 이루고, 인도주의 관점이나 전쟁 책임을 짚는 보도는 찾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지난달 28일 이란을 침공한 지 열흘이 지났다. 알자지라 등 외신에 따르면 두 나라는 전쟁 발발 이후 이란 전역에서 약 2000곳의 목표물을 공격했고, 이란 최고지도자였던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를 비롯한 고위 관리들을 사살했다. 침공은 미국과 이란이 핵 협상을 이어가던 와중 이뤄졌다. 유엔(UN) 헌장을 위반한 불법 침공에 해당한다는 지적이 처음부터 제기됐다.

침공 첫날인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란 남부 도시 미나브의 한 여자 초등학교를 폭격해 어린이 168명 등 최소 182명이 숨졌다. 지난 9일 기준 이란 내 민간인 사망자는 최소 1255명으로 늘었고, 레바논에서도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486명이 사망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스라엘이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인간의 직접적 감독 없이 폭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비판은 더욱 커지고 있다.

침공 뒤 어린이 폭격엔 62건, 이란·증시 언급 137건

이런 가운데 한국 언론은 전쟁으로 인한 인명 피해와 그 책임보다 증시 동향에 치중한 보도를 이어왔다. 이는 침공 첫날 발생한 초등학교 폭격 보도에서도 두드러진다. 한국언론진흥재단 뉴스분석시스템 빅카인즈에 따르면, 미나브 지역의 초등학교 폭격으로 인한 피해를 다룬 기사는 2월28일~3월1일 이틀 간 62건 나왔다. 그러나 같은 기간 침공을 코스피 등 증시와 관련해 언급한 기사는 137건에 이르렀다. 증권시장이 휴장인 주말이었음에도, 언론이 침공을 증시와 관련 지어 낸 기사가 전쟁범죄 피해를 언급한 기사보다 2.2배 많았다.

기간을 넓혀 살펴봐도 전쟁으로 인한 인명 피해보다 증시 보도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한 것으로 보인다. 빅카인즈에 따르면 2월28일부터 3월10일 오후 1시까지 이란 전쟁 관련 보도 가운데 코스피와 증권 관련 열쇳말을 언급한 보도는 4213건에 이르렀다. 이는 같은 기간 폭격이나 공습으로 사망자가 나왔다는 표현을 포함한 보도량 3283건에 비해 28%나 많은 숫자다.

시아바시 사파리 서울대 아시아언어문명학부 교수는 10일 통화에서 증시를 앞세운 보도 추세가 “한국 언론 보도에서 특히 우려되는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이란 국적인 그는 한국의 이란 전쟁 보도를 꾸준히 살피고 있다.

사파리 교수는 “언론에선 한국 기업에 미치는 영향과 주식 시장이라는 렌즈에만 지나치게 초점을 맞추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 언론은 전쟁을 볼 때 마치 주식 시장이라는 렌즈만 가진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전쟁 초기엔 한국 기업들이 무기를 판매할 수 있으니 주식 시장에 좋을 것이라는 식의 낙관하는 헤드라인까지 나왔다”고 했다.

실제로 중동 전세가 확전되는 가운데 전쟁을 투자 기회로 풀이하는 기사가 줄이었다. 특히 한국이 아랍에미리트(UAE)에 제공한 요격 미사일 천궁-Ⅱ가 전쟁에 쓰여 성과를 냈다고 강조하는 'K-방산' 강조 보도가 많았다. 한경닷컴의 <“이란 미사일 격추시키는 거 봤지?”…하락장에 고점 뚫었다[종목+]>가 대표 사례다. 여성학 연구자인 권김현영 씨는 SNS에서 “최근 들어본 가장 끔찍한 전쟁 기사”라고 평하기도 했다.

다른 언론사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천궁-Ⅱ가 96% 명중률을 기록했다며 무기 제조사인 LIG넥스원 주가 급등세를 앞다퉈 다뤘다. 매일신문 <중동 홀린 고마진 미사일'…구미 K-방산 잭팟 터졌다>, 한국경제 <LIG넥스원 '천궁' 부각에 최고가>, 중앙일보 <50㎞ 밖 천안서, 잠실구장 스트라이크 꽂았다…이게 천궁>, 뉴시스 <천궁-Ⅱ 실전 명중에 방산주 들썩…LIG넥스원, 금주에만 50% 상승>, 매경이코노미 <“천궁-Ⅱ 빨리 넘겨줘” UAE 요청에 방산주 '불기둥'> 등이다.

전세를 주식 투자 관점으로 풀이하는 경향은 정도 차이는 있지만 매체 논조를 막론하고 나타났다. 경향신문은 미국과 이스라엘의 국제법 위반과 비인도적 공격 문제를 다뤘으나 '검은 화요일'을 다룬 지난 4일 1면 머리기사 <이란발 '유탄' 코스피 직격>에서 “전략적 관점에서 볼 때 아시아의 근본적 펀더멘털이 여전히 매우 긍정적이기 때문에 중동 정세를 오히려 기회로 삼을 수 있다”는 주식 전략가의 블룸버그 인터뷰를 인용했다.

▲천궁 관련 보도 제목 갈무리

전쟁 책임·인도주의 관점은 찾기 힘들어

이 같은 보도는 전쟁으로 인한 실제 피해를 가린다는 점에서 가장 큰 문제다. 사파리 교수는 “한국 언론을 보면 이란인 사망자뿐 아니라 다른 나라 사람들의 생명에 대한 인도주의적 관심이 부족하다. 1000명 넘는 이란인이 사망했고, 레바논에서도 민간인 수백 명이 목숨을 잃었지만 전체 보도의 작은 부분으로만 언급될 뿐, 주요 헤드라인으로 다뤄지지 않는다”고 했다.

주식 투자 관점의 보도가 전쟁이 민생에 미치는 여파보다도 중하게 다뤄진다는 우려도 나온다. 사파리 교수는 “전쟁은 유가 상승과 물가 상승 등 한국 경제에도 큰 부담을 준다”며 “그럼에도 언론은 전쟁으로 이익을 볼 수 있는 기업과 투자자, 이른바 상위 1%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한국의 무기 지원이 확전에 일조할 수 있음에도 이 같은 우려는 찾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영아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팀장은 통화에서 “무기를 수출하는 정책은 중동 분쟁에 개입하는 것을 의미한다”며 “이는 중동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음이 분명함에도, 언론에선 '방산주 급등'이나 '개미 투자자들에게 새로운 기회' 같은 기사만 넘쳐나는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이 팀장은 이 같은 보도 경향이 최근 들어 심해졌다고도 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K-방산이 큰 이익을 봤고, 이후 불안한 국제 정세를 한국 방산 기업의 새로운 시장으로 보는 보도가 이어졌다”며 “이재명 정부가 '국민 주식 투자'를 강조하는 분위기와 맞물리면서 이란 침공 보도에서는 더 노골적으로 투자 관점 보도가 쏟아지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해외 언론도 전쟁을 투자 기회로만 접근하는 보도 관행이 알려져 있다. 증권가에 '미사일이 날아가면 (주식을) 살 때다(when missiles fly, time to buy)'라는 표현이 자리잡은 것이 그 일례다. 영국 국적으로 한국에서 활동하는 라파엘 라시드 기자는 지난 9일 통화에서 이 관용구를 들며 “해외에도 금융 전문매체나 주요 언론의 주식 보도가 전쟁을 투자 기회로 해석하는 관행이 있다”고 전했다. 다만 그는 “물론 모든 전쟁 보도를 그런 식으로 하지는 않는다”며 “전쟁으로 이익을 보는 무기 제조사들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보도도 함께 나온다”고 했다.

▲9일(현지시각) 이란 테헤란타임스는 1면에 지난달 28일 미국의 공습으로 이란 남부 미나브의 학교 인근에서 숨진 어린이 100명의 얼굴 사진을 실었다. 헤드라인은 “”

“취재 없는 자리 '내수용 영합주의' 보도로 채워”

전쟁에 대한 깊이 있는 취재가 부족한 가운데 그 빈 자리를 주식 보도로 채운다는 진단도 나왔다. 전규찬 언론개혁시민연대 공동대표(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통화에서 “언론이 전쟁 상황을 분석하거나 현지 상황을 전달하는 취재를 충분히 하지 못하면서 그 공백을 한국 사회 내부의 반응으로 채우고 있다”고 말했다.

전 교수는 “한국 증시가 워낙 뜨겁고 국제 정세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특수성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그럼에도 한국 방송과 지면에서 이란의 지식인이나 전문가를 직접 취재하려는 시도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고 했다. 그는 “현장 취재가 어렵다면 화상 인터뷰 등으로 상황을 전달할 수 있는데, 그런 노력 대신 트럼프 발언 속보나 미사일 수출, 증시 보도로 채우고 있다”며 “이는 전 세계적인 사건조차 한국 내부 반응으로만 채우는 '내수용 영합주의 뉴스”라고 비판했다.

장세 중심의 전쟁 보도에 언론계 내부에서도 목소리가 나왔다. KBS가 지난 3일과 4일 연속 전쟁 상황보다 코스피 폭락을 톱 뉴스로 내보내자,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 쟁의대책위원회는 성명을 내고 “증시 소식이 전쟁의 고통보다 중요한가”라며 “공영방송에 걸맞게 이란 전쟁을 보도하라”고 요구했다. KBS본부는 “이란 전쟁이 국내 증시에 미칠 영향은 보도할 가치가 있지만 원인인 전쟁 자체보다 더 중요할 수는 없다”며 “보도시사본부 수뇌부는 이란 전쟁보다 국내 증시 동향이 더 중요하다고 보는 것인가”라고 물었다.

이란 전쟁을 취재하는 이유경 국제분쟁 전문기자는 주류 언론의 대안을 자처하는 유력 유튜브 채널에서도 인도주의 관점을 찾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 기자는 통화에서 “시간 제약이 덜해 전쟁의 문제점과 피해 상황을 다룰 여유가 더 많은 유튜브조차 전문가를 불러도 군사 지식이나 전황을 설명하면서 '누가 이기느냐'만을 전망하는 경우가 많다. 마치 게임을 관전하듯 전쟁을 소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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