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값 2천원 시대 가짜석유 다시 고개 드나
최근 적발 건수 줄었지만 면세유 불법 유통 우려 제기
주유소보다 석유 일반판매소 중심으로 단속 집중 예정

"많이 사라졌는데 최근 유가가 급등한 만큼 다시 성행할 여지는 있을 것 같습니다." 30년 넘게 유조차 기사로 일했던 김인철(가명·70대·대구 달서구)씨는 최근 국제유가 상승으로 가짜석유 판매가 늘어날 수 있다고 봤다. 다만 단속이 강화되고 처벌 수위도 높아 과거만큼 성행할 가능성은 다소 낮게 봤다.
중동 분쟁 여파로 국내 휘발유·경유 가격이 ℓ당 2천원을 돌파하면서 기름값이 '시가(市價)'가 됐다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국제유가 인상분이 곧바로 소비자가격에 반영되는 상황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쪽에서는 이를 악용한 가짜석유의 등장을 우려한다. 정부가 기름값을 잡기 위해 최고가격제 도입과 함께 가짜석유 단속 강화에 들어갔다.
10일 만난 김씨는 "예전엔 가짜석유가 생각보다 많았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는 "가짜석유 단속은 대부분 제보로 시작된다"며 "주유한 사람이 연비가 갑자기 떨어지거나 매연이 심해지면 신고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단속 과정도 비교적 치밀하게 진행됐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제보가 들어오면 바로 단속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기름을 사서 검사한다. 문제가 확인되면 주유소가 문을 닫는 밤시간대에 들어가 탱크를 확인하고 증거를 확보한다.
과거 가짜기름 판매 수법은 주말을 이용하는 등 치밀했다. 김씨는 "금요일 밤에 정상 기름을 빼고 가짜기름을 넣어 팔다가 일요일 밤에 다시 정상 기름으로 바꿔놓는 식으로 장난을 쳤다"며 "주말엔 단속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점을 노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부 업자들은 별도 저장시설을 이용해 단속을 따돌렸다. 주유소 뒤쪽에 탱크로리나 추가 탱크를 숨겨놓고 정상 기름과 가짜기름을 바꿔가며 판매한 것이다. 아예 지하 탱크를 분리해 단속을 피하기도 했다. 그는 "겉으로 보면 일반 주유소와 똑같아 단속이 쉽지 않았다"고 했다.
가짜기름은 대개 경유에 등유를 섞는다. 김씨는 "예전엔 등유 가격이 훨씬 싸 경유에 섞어 파는 경우가 많았다"며 "차를 몰다 보면 냄새가 다르고 연비도 확 떨어져 금방 티가 났다"고 말했다. 이어 "관광버스나 화물차 중 일부는 등유를 사서 말통에 직접 넣는 경우도 많았다. 차를 따라가 보면 배기가스 냄새가 달라 가짜석유 사용 여부를 금방 알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김씨에 따르면 최근 들어선 가짜석유 판매가 크게 줄었다. 적발될 경우 영업정지나 허가취소 처분까지 받을 수 있어 주유소들이 위험 부담을 크게 느끼기 때문이다. 2년간 영업정지가 내려지거나 허가가 취소되면 다시 영업 허가를 받기도 쉽지 않다. 결국 예전처럼 대놓고 가짜기름을 파는 경우가 많이 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최근 3년간(2023~2025년) 대구에서 가짜석유를 팔다 적발된 건수는 3건에 불과하다. 연도별로 각 1건이다. 처벌도 사업정지 1건, 과징금 2건으로 비교적 수위가 높지 않았다. 정유사와 품질관리 기관이 수시로 기름 샘플을 채취해 검사하는 점도 가짜석유 판매를 막는 요인으로 꼽힌다.
반면 김씨는 가짜기름보다 면세유를 빼돌려 판매하는 경우가 더 문제라고 주장했다. 면세유는 세금이 붙지 않아 일반 차량에 사용하거나 되팔면 불법이다. 하지만 직거래 형태로 이뤄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단속의 손길이 미치지 못했다. 그는 "유가가 오르면서 일부 업자들이 다시 유혹을 느낄 수 있다"며 "연비가 갑자기 떨어지거나 차량 상태가 이상하면 소비자들이 한 번쯤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가짜석유를 넣었다고 판단되면 즉시 차량을 세우고 정비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계명대 신유준 교수(자동차공학과)는 "쉽게 이야기하면 불량식품을 다량으로 먹은 것과 같다. 어떤 일이 발생할지 알 수 없고, 차가 달리다 정지할 수도 있다"며 "누적되면 손상이 커지며 엔진에 무리가 간다. 심하면 엔진 실린더가 파손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가짜 석유를 넣었다고 판단되면 즉시 시동을 꺼야 한다. 주행하지 말고 정비공장으로 입고시켜 엔진 등 연료와 관련된 부품에 일종의 세척 작업을 해야 안심하고 탈 수 있다"고 조언했다.
위험이 큰 만큼 정부의 가짜기름 단속 지침에 따라 각 지자체도 이번 달부터 단속에 나설 예정이다. 세금 탈루 목적의 '무자료 거래' 역시 단속에 포함되며, 한국석유관리원과 공동으로 진행된다. 매월 2천건 이상을 대대적으로 점검한다는 구상이다.
지자체에서는 일단 주유소에서 가짜석유를 판매하는 경우가 많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최태훈 달서구청 기후관리과 에너지관리팀장은 "행정처분을 받게 되면 해당 주유소는 정유사에 수억원에 달하는 위약금을 물어야 한다"며 "가짜기름 단속은 주유소보다 석유 일반판매소를 중심으로 나설 계획"이라고 했다.
김현목기자 hmkim@yeongna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