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오만(Hubris)의 대가

조광일 수필가·전 마산합포구청장 2026. 3. 10. 19:55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이타카의 왕 오디세우스.

그러나 오디세우스의 환상은 무참하게 무너진다.

그 사이 숫양의 아랫배에 매달려 간신히 빠져나온 오디세우스는 또 주책없이 군다.

결과적으로 오디세우스가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건 '겸양' 덕분이었다는 이 이야기 속엔 지도자의 오만과 자신에 대한 맹목적 과신, 그로부터 비롯되는 폭력 따위를 꼬집는 촌철살인이 담겨 있는 것이다.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지도자라면 오만·자만심 버려야
지방선거서 겸양 갖춘 일꾼 뽑자

이타카의 왕 오디세우스. 그는 트로이 전쟁을 승리로 이끈 지략가였으나, 권력의 한계를 모르고 정복과 지배를 추구하다가 참혹한 대가를 치른다. 승리에 도취한 오만과 무모함이 그의 발목을 잡는 것이었다.

10년 전쟁을 끝내고 고향으로 돌아가던 오디세우스는 별안간 키클롭스(눈이 하나밖에 없는 괴물)의 섬에 들어가 음식과 재물을 약탈한다. 그러면서 그는 언감생심 괴물들이 선물까지 내어 바치길 기대한다. 그러나 오디세우스의 환상은 무참하게 무너진다. 키클롭스가 "웬 놈들이냐?" 묻자 오디세우스는 "나는 트로이 전쟁의 승자인 아가멤논의 백성이고, 제우스가 사랑하는 사람이니 예를 갖추어 대접하라"며 으스댄다. 자신의 지위와 영향력을 과시하고 군림하고 싶은― 영웅입네 하며 젠체하고 싶은― 일종의 '인정 욕구'인 셈이다.

키클롭스는 가소롭다는 듯 코웃음을 치더니 오디세우스의 부하 중 두 명을 잡아먹어 치우는 것으로 대답한다. 그는 부하들의 만류에도 공연히 키클롭스의 동굴에 제 발로 들어갔고,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만용을 부리다가 낭패를 당한 것이다. 절체절명의 위기에 봉착한 오디세우스는 궁리 끝에 자신들이 가져온 포도주를 갖다 바친다. 선물 공세에 한껏 고무된 키클롭스가 "네 이름이 뭐냐?"고 하자 오디세우스는 대뜸 "우티스(Ουτις·아무도 아닌)"라고 대답한다. 불콰하게 취기가 달아오른 키클롭스는 마치 선심을 베풀듯 '아무도 아닌 놈'을 가장 나중에 잡아먹겠다 하고선 곯아떨어지자 오디세우스는 불에 달군 나무 창으로 괴물의 외눈을 찔러 제압한다. 키클롭스는 고래고래 비명을 질러댔고 동료 괴물들이 몰려와 "누구의 짓이냐?" 캐묻자 그가 외친다. "아무도 아니야! 아무도 아닌 자가 나를 해치고 있어!" 그러자 다들 '미쳤다' 생각하고는 각자 제 구역으로 되돌아가 버린다.

그 사이 숫양의 아랫배에 매달려 간신히 빠져나온 오디세우스는 또 주책없이 군다. 난바다로 내달리며 부아질을 하는 것이다. '누가 네 눈을 멀게 했느냐 묻거든 이타카에 사는 라에르테스의 아들, 오디세우스에게 당했다' 하라며 조롱한다. 부지불각에 자신의 이름과 주소까지, 정체를 까발리고 말았다.

분을 삭이지 못한 키클롭스는 자신이 당한 횡액을 아버지 포세이돈에게 일러바치게 되고, 오디세우스는 모진 고난과 역경을 겪는다. 신이 그에게 본때를 보인 것이다. 그리고 10년의 방랑은 그를 다른 사람으로 바꾸어 놓았다. 스스로 자초한 재앙에 완전히 무너져 만신창이가 된 오디세우스는 비로소 '낮추면 높아지고, 비우면 채워진다'는 이치를 깨닫는 것이다. 늘 몸을 낮추었고, 자신의 영지(이타카)에 들어갈 때에도 누더기를 걸치고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내세우지 않으려 한다. 결과적으로 오디세우스가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건 '겸양' 덕분이었다는 이 이야기 속엔 지도자의 오만과 자신에 대한 맹목적 과신, 그로부터 비롯되는 폭력 따위를 꼬집는 촌철살인이 담겨 있는 것이다.

풀뿌리 지방선거가 석 달도 남지 않았다. 지방이 국가균형발전의 주체가 되는 시대를 앞당기기 위해선 정책 전문성, 책임감, 성실함, 안목 등의 사회적 능력에 더해 낮추고 보듬고 고언에 귀 기울일 줄 알며, 최소한의 양식과 공적 마인드를 갖춘 인물을 일꾼으로 뽑아야 하지 않을까? 인간세엔 온통 자기 뜻대로 세상을 움직이려는 오만과 독점욕, 그리고 감언이설로 환심을 사려는 이들이 넘쳐난다.

/조광일 수필가·전 마산합포구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