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우승이 쉬웠다고 말했던 사람들
[박용후 / 관점 디자이너] 도쿄에서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벼랑 끝에 서 있던 대한민국 대표팀이 17년 만에 WBC 8강에 진출한 것이다. 조건은 매우 까다로웠다. 2점 이하로 실점하면서도 5점 이상 이겨야 했다. 한순간의 실수도 허용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대한민국 대표팀은 이러한 중압감을 이겨내고 결국 8강 진출에 성공했다.
이 경기를 중계하던 박용택 해설위원은 경기 내내 눈물을 흘렸다. 그는 이런 말을 했다. “선수들이 정말 열심히 준비했고 최선을 다해 경기에 임했는데 기대에 못 미치면 팬들은 SNS나 댓글로 대표팀을 향해 욕을 쏟아냈다.”
그는 그런 상황이 너무 가슴 아팠다고 말했다. 선수들의 노력과 고통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사람으로서, 결과만 보고 쏟아지는 비난이 견디기 어려웠던 것이다.

“아시안게임 우승이 그렇게 어려웠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과하든 사퇴하라.”
이어 그는 “이렇게 끝까지 버티면 2020년까지 감독을 하기 힘들 것”이라며 정치권의 분위기까지 언급했다.
이 발언이 논란이 된 이유는 단순히 감독 개인을 비판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 말 속에는 하나의 전제가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아시안게임 우승은 어렵지 않다”는 인식이다.
하지만 스포츠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이 말이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인지 쉽게 알 수 있다. 국제대회에서의 우승은 결코 당연한 결과가 아니다. 오히려 거의 기적에 가까운 결과다.
최근 열린 World Baseball Classic(WBC)은 그 사실을 다시 한번 보여주었다. 한국은 최고의 선수들을 모아 대표팀을 구성했지만 일본과 대만에 연이어 패했다.
이 두 경기는 단순한 패배 이상의 의미를 던졌다. 세계 무대에서 이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리고 국제대회에서 승리하는 것이 얼마나 값진 결과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일본은 세계 최고 수준의 야구 인프라를 가진 나라다. 프로야구 리그의 수준도 매우 높고,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는 선수들도 꾸준히 배출하고 있다. 특히 최근 일본 야구의 중심에는 오타니 쇼헤이 같은 세계적인 스타가 있다.
대만 역시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대만은 아시아에서 가장 체계적인 유소년 야구 시스템을 갖춘 나라 가운데 하나이며, 메이저리그와 일본 프로야구로 꾸준히 선수를 배출하고 있다. 실제로 국제대회에서 대만은 한국을 위협하는 강팀으로 평가되어 왔다.
이처럼 각국이 국가의 자존심을 걸고 최고의 선수들을 내보내는 무대가 바로 WBC다. 이 무대에서는 한 경기 승리를 거두는 것조차 쉽지 않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이런 무대에서 우승은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답은 간단하다. 상상을 초월할 만큼 어렵다.
야구는 확률의 스포츠다. 아무리 뛰어난 팀이라도 한 경기에서 패할 가능성은 언제나 존재한다. 메이저리그에서도 1위 팀이 꼴찌 팀에게 패하는 일이 흔하게 발생한다.
국제대회에서는 변수와 압박이 훨씬 더 커진다. 짧은 일정, 낯선 환경, 국가대표라는 심리적 부담, 그리고 각국 최고의 선수들이 한자리에 모인 경쟁 구조가 동시에 작용한다.
이 조건 속에서 우승한다는 것은 단순한 실력만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다. 전략과 집중력, 운, 그리고 팀워크가 동시에 맞아떨어져야 한다.
실제로 국제 스포츠 역사에서 “우승이 당연한 팀”은 존재하지 않는다. 축구에서도 브라질이 항상 월드컵에서 우승하는 것은 아니다. 농구에서도 미국 드림팀이 모든 대회를 독식하는 것은 아니다.
야구 역시 마찬가지다. WBC에서 일본이 강력한 우승 후보로 평가받지만 모든 대회에서 우승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종종 이런 착각을 한다. “우승은 당연한 것”이라는 착각이다.
이 착각은 대부분 결과만 보고 과정을 지워버릴 때 생긴다. 국가대표 선수들은 수십 년의 시간을 훈련에 투자한다. 수많은 실패와 부상, 그리고 치열한 경쟁을 통과해야 대표팀 유니폼을 입을 수 있다. 국제대회에 출전하는 것 자체가 이미 최고 수준의 성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말한다. “그 우승이 그렇게 어려웠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문제는 이런 말이 단순한 의견을 넘어 타인의 노력을 가볍게 만드는 언어가 된다는 점이다.
노력의 가치를 이해하지 못하면 결과 역시 제대로 평가할 수 없다. 결과만 보고 “쉬웠다”고 말하는 순간, 우리는 그 뒤에 숨어 있는 수천 시간의 훈련과 압박, 긴장을 완전히 지워버리게 된다.
이 현상은 스포츠에만 국한된 일이 아니다. 우리 사회 전반에서도 자주 나타난다. 누군가 성공하면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운이 좋았을 뿐이다.”“그 정도는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그 자리에 올라가 보면 알게 된다. 그 자리는 결코 쉽게 도달할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래서 국제대회는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준다. 승리는 당연한 것이 아니라 존중받아야 할 결과라는 교훈이다. 그리고 패배 역시 노력의 부족이 아니라 경쟁의 치열함을 보여주는 증거라는 사실이다.
최근 WBC에서 일본과 대만에게 패한 한국 대표팀의 경기는 우리에게 또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세계적인 무대에서 이기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이 질문의 의미를 이해한다면 우리는 다시는 쉽게 말하지 못할 것이다. “그 우승이 그렇게 어려웠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타인의 노력은 그렇게 가볍게 평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경기를 직접 뛰어보지 않은 사람, 그 긴장과 압박을 온몸으로 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승리의 무게를 쉽게 말할 수 없다. 그래서 스포츠는 우리에게 늘 같은 교훈을 준다. 결과를 비판하기 전에 먼저 과정을 존중하라.
그것이 경쟁을 이해하는 가장 기본적인 태도이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WBC 야구 국가대표팀의 8강 진출에 경의를 표한다.
김현아 (chaos@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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