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광장] 기금형 퇴직연금 활성화의 조건

파이낸셜뉴스 2026. 3. 10.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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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형과 기금형이 경쟁하게 되면
가입자 이익 우선 원칙 제도적 보장
기금단위 수익률 비교할 수 있어야
지나치게 공격적이거나 보수적인
자산배분이 안되게 장기분산투자
근로자의 노후소득보장이 최우선
김용하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교수
정부가 최근 발표한 퇴직연금 제도개선 노사정 합의문에서 가장 주목할 대목은 '기금형 퇴직연금의 활성화'이다. 퇴직연금 도입 20년 만에 계약형 중심 구조에서 벗어나 기금형을 제도권 안에 올려놓겠다는 선언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큰 방향은 제시되었지만, 기금형 퇴직연금 제도를 어떻게 구체화할 것인지가 중요한 과제이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지난 2023년 정부가 퇴직연금의 장기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추진했던 디폴트옵션 제도의 성과가 다소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다. 2025년 디폴트옵션 연간 수익률 평균은 3.7%에 그쳤다. 적극투자형 상품의 수익률은 14%를 넘었지만, 적립금의 85%가 몰린 안정형 상품의 수익률이 저조했기 때문이다. 지난해같이 금융시장이 좋았던 해에도 평균 수익률이 3%대에 머물렀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크다. 확정기여형(DC) 퇴직연금은 근로자가 운용방법을 선택한다. 근로자 입장에서 원금손실 가능성이 있는 금융상품을 선택하는 것은 쉽지 않다. 디폴트옵션 도입에도 불구하고 개인 선택 중심 구조의 한계가 노정된 것이다. 정부가 기금형 선택지를 검토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기금형 퇴직연금은 적립금을 집합적으로 모아 하나의 기금 단위로 운용하고, 기금 간 수익률로 경쟁하는 구조다. 개별 금융상품 선택이 아니라, 기금 자체의 운용 역량과 거버넌스가 성과를 좌우하게 된다. 정부는 크게 세 가지 유형의 기금형을 제시했다. 금융기관 개방형, 공공기관 개방형 그리고 연합형이다.

금융기관 개방형 기금은 은행·보험·증권사가 별도 수탁법인을 설립해 다수 사업장의 자금을 모아 운용하는 모델이다. 기존 금융사의 운용 역량과 인프라를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기존의 계약형과 같이 금융기관 중심 구조인 만큼 수수료 구조와 이해상충 문제를 여하히 통제할 것인가가 관건이다.

공공기관 개방형 기금은 중소기업퇴직연금기금처럼 공공기관이 중심이 되는 모델이다. 안정성과 공공성을 확보하기 용이하고, 영세 사업장 보호에 유리하다. 일부에서는 국민연금기금이 참여하는 방안이 제시되고 있지만, 국민연금기금은 현재 규모도 너무 방대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고, 퇴직연금과 국민연금의 차별성이 모호해지는 문제가 있다. 무엇보다 기존 금융기관의 반대를 넘어야 한다. 기존 중소기업퇴직연금기금 적용 대상 기업 규모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노사정 합의안에서 선보인 안 중에서 다소 새로운 유형은 연합형 기금이다. 복수 사용자가 공동으로 기금을 설립·운영하는 방식으로, 업종이나 직역 단위로 구성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생소하지만 해외에서는 다수 운영 사례가 있다. 네덜란드의 산업별 연금기금은 업종 단위로 자금을 통합 운용하며, 노사 대표가 함께 거버넌스를 구성한다. 덴마크 역시 단체협약 기반의 노동시장 연금이 정착돼 있다. 이들 국가는 높은 연금 적립률과 안정적 장기 수익률을 동시에 달성해 왔다.

연합형 강점은 세 가지다. 첫째, 맞춤형이다. 유사 직종 기업 단위로 통합 운영하면 직종 특성을 반영한 노후설계가 가능하고, 직장 이동 시에도 동일 기금에서 연속적 관리가 가능해진다. 둘째, 대표성이다. 노사 또는 가입자 대표가 의사결정에 참여함으로써 신뢰를 높인다. 셋째, 교육과 관리의 통합이다. 동일 업종 근로자에게 맞춤형 금융교육과 정보 제공이 가능하다. 수탁자 책임의 법제화, 독립적 이사회 구성, 외부 감시체계 구축 등 거버넌스 구조를 명확하게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다.

향후 계약형과 기금형이 경쟁하는 형태가 되면 운용 성과 개선과 비용 절감을 유도할 수 있다. 그러나 경쟁이 가입자에게 위험을 떠넘기는 경쟁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하고, 이를 위해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수익률 공시의 투명성이다. 기금 단위 수익률을 명확히 비교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수탁자 책임 강화다. 가입자 이익 최우선 원칙이 제도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셋째, 수익률과 안전성의 조화이다. 지나치게 공격적이거나 보수적인 자산배분이 되지 않도록 장기 분산투자 원칙을 제도 설계에 반영해야 한다.

퇴직연금은 단순한 금융상품이 아니다. 근로자의 노후를 좌우하는 제2의 사회보장 장치이다. 디폴트옵션이 개인 선택의 한계를 드러냈다면, 이제는 집합적 운용체계로 한 단계 나아갈 시점인 것은 분명하다. 기금형 퇴직연금 제도의 목표가 상품 판매가 아니라 노후소득 보장이라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김용하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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