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심야 할인’ 런던 ‘과전력 할인’…전기료 아낄 선택지 다양
알뜰족 환호 ‘골라 쓰는 전기요금제’(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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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요금을 휴대폰 요금제처럼 자유롭게 골라 쓸 수는 없을까? 우린 아직이지만, 옆 나라 일본이나 유럽의 영국 등은 소비자가 여러 전력회사의 다양한 요금제를 비교해 선택하는 ‘시장 경쟁’ 제도를 운용 중이다. 퇴근 뒤 심야 시간대에 맞춰 값싼 전기를 쓰거나, 재생에너지 전용 요금제를 선택해 요금을 20% 가까이 절약하는 게 가능하다.
밤에 가전 돌려 전기요금 절약
이런 생활습관은 ‘시간대별 차등 요금제’(TOU·Time of Use)에 가입한 뒤부터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다. 해당 요금제는 낮에 상대적으로 높은 요금을 적용하고, 전력 수요가 적은 심야 시간(밤 11시∼아침 7시)에 요금을 할인해주는 구조로, 낮에 집을 비우는 젊은 층 사이에서 큰 호응을 얻었다. 일본의 경우 2016년 전력 소매시장 개방 이후 다양한 전력 판매사들이 경쟁적으로 통신·가스 결합 할인이나 전기 사용 포인트 적립 등 차별화된 요금제를 내놓으면서 소비자 선택권이 넓어졌다.
요금제를 바꾼 뒤 미나코는 얼마나 전기요금을 아낄 수 있었을까? 한달 평균 약 300킬로와트시(㎾h) 전기를 사용하는 그는 요금 할인을 받는 심야 시간대에 전기 사용량의 60%(180㎾h)를 집중시키는 습관으로 매달 1200엔(약 1만1천원) 이상 요금을 아낄 수 있었다. 일반 요금제였을 때는 ㎾h당 30엔을 적용해, 한달에 약 9천엔의 요금을 냈지만, 시간대별 차등 요금제(㎾h 기준 피크 35엔, 심야 20엔)에 가입한 뒤부터 요금이 7800엔(약 7만1800원)으로 줄었다. 연간으로 환산하면 1만4400엔(약 13만2600원)에 달한다.

다양한 전기요금제의 등장은 발전사와 전력망 운영사들에도 득이 된다. 원전 및 화력발전소처럼 대형 발전 설비가 많은 양의 전기를 계속 쏟아내는 상황에서 전력 사용량이 적은 저녁에 전기를 쓰도록 유도하는 요금제는 전력수급 균형을 맞추는 완충장치 구실을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시간대별 차등 요금제가 일본 전력 시장 최대 피크를 약 10.7%까지 줄이는 효과가 있다는 일본 규슈대 공학연구원 조사 결과도 있다. 덕분에 최대 전력 수요에 맞춰 발전소와 전력망을 확충해야 하는 부담을 덜게 된 것이다.
재생에너지 넘칠 땐 ‘마이너스 요금’ 행운
그는 사회생활을 시작한 2020년 초부터 ‘실시간 도매가격 연동 요금제’(RTP)를 사용했다. 이 요금제는 전력 생산 시장 가격에 따라 30분 단위로 소비자 요금이 변동하는 구조로, 풍력 발전 비중이 빠르게 늘어나는 시기에 불규칙한 재생에너지 수급을 맞추기 위한 목적으로 출시됐다. 예를 들어 바람이 많아 풍력 발전량이 넘칠 때 ㎾h당 전기요금은 약 0.15파운드까지 내려가지만, 발전량이 적을 땐 약 0.4파운드로 요금이 두배 이상 오른다. 운이 좋아 전력 공급이 넘치는데 수요까지 적어 도매가격이 0원 아래로 떨어지는 경우엔 전기를 쓰고도 돈을 받는 ‘마이너스 요금’(㎾h당 0.05파운드 환급)도 경험할 수 있다.
오스카는 요금제를 바꾼 뒤부터 한달 평균 약 15파운드(2만9천원, 300㎾h 사용 기준)를 절약할 수 있었다. 기존 요금제에선 한달 90파운드(300㎾h×0.3파운드)를 냈지만, 비교적 싼 시간대에 전기 사용량의 60%를 집중시키는 방법(할인 180㎾h×0.15파운드, 할증 120㎾h×0.4파운드)으로 한달 전기료를 75파운드로 낮췄다. 연간으로 따지면 180파운드(약 34만8천원)를 아낀 셈이다.
이 밖에도 전기차 2대를 굴리는 오스카의 동료는 밤 시간대 충전 할인을 받는 ‘전기차 특화 요금제’를 사용하고, 환경을 중시하는 이웃집은 화석연료 대신 재생에너지만 공급받는 ‘친환경 요금제’에 가입하는 등 영국에는 다양한 요금제 선택지가 있다.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높은 미국 캘리포니아주와 텍사스주, 오스트레일리아 빅토리아주 등에서도 발전량이 많은 시간대 요금을 할인하는 ‘차등 요금제’가 확산하는 추세다.

단일 요금제 한국,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중
문제는 재생에너지 확대로 발전량의 변동성이 커진 상황에서 단일 요금제 체계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낮과 밤에 쓰는 전기료가 동일할 경우 전기 사용은 낮 시간대에 집중되고, 결국 늘어난 최대 전력 수요에 대비하려 원전 등을 더 짓는 악순환이 반복되게 된다. 소비자 입장에서도 단일 요금제는 ‘영리한 소비’로 전기료를 아낄 기회마저 박탈한다. 그래서 기후솔루션 등 연구단체들은 “전기차나 히트펌프 등 전기 사용량이 많은 분야의 전용 요금제부터 출시하거나 기본요금제는 유지한 채 희망 가구만 시간대별 요금제를 선택할 수 있는 제도를 도입하자”고 제안한다.
※이 기사는 일본과 영국 가정에서 평균 수준으로 전력을 쓰는 가상 인물이 도쿄전력과 옥토퍼스 에너지의 요금제를 사용하는 상황을 시뮬레이션한 결과를 바탕으로 작성했습니다.
기후부, 산업용 전기에는 ‘요금 차등제’ 추진
한국 정부가 산업용 전기요금에 대해 시간대나 지역에 따라 할인 혜택을 주는 ‘차등제’ 도입을 추진한다. 요금제 개편을 통해 늘어나는 재생에너지 발전량을 수용한단 계획이지만, 지역 차별을 해결하고 가정용으로까지 확대해야 제 효과가 날 거란 지적이 나온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올해 발표를 목표로 산업용 요금에 계절·시간별, 지역별 차등을 두는 개편안을 만들고 있다. 지역별 차등은 발전소와의 거리에 따라, 계절·시간대별(계시별) 차등은 전력 수요가 달라지는 계절과 시간에 따라 요금에 차등을 주는 방식이다.
먼저 윤곽이 드러난 건 산업용 전기에 대한 계시별 차등 요금제다. 전력 수요가 몰리는 낮 시간대(오전 11시~오후 3시)에 높게 책정됐던 산업용 전기의 ‘최대 요금’을 낮추고, 저녁 6~9시의 ‘중간 요금’을 최대 요금으로 조정하는 안이 유력하다. 태양광 발전량이 많은 낮 요금은 내리고, 저녁 요금을 높이는 식이다.
발전소 인근 지역 전기요금을 할인하는 지역별 차등 요금제도 정부 임기 내 시행한다는 방침이다. 지역별 요금제는 발전시설은 지역에 몰렸지만 전력 수요는 수도권에 집중된 비정상적 구조를 해소하겠단 차원에서 제안됐다. 발전시설 인근 요금이 싸지는 경우 기업이 지역으로 이전하면서 균형 발전에 기여할 것이란 계산도 깔렸다. 김성환 기후부 장관은 앞서 한겨레 인터뷰에서 “당장 지역별 요금을 달리하기보다 발전소 인근 지역에 요금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을 생각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다만 지역별 차등 요금제는 지역 간 갈등으로 번질 수 있고, 산업용 차등 요금제만으론 수급 관리에 한계가 있어 더 촘촘한 정책 설계가 필요하단 목소리도 나온다. 그래서 세계 주요 나라들은 차별 우려가 있는 지역별 요금제 대신 시간대별 차등 요금제를 주로 시행 중이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정책위원은 “산업용에 먼저 적용한 차등 요금제를 바탕으로 낮 시간대에 재생에너지를 소비하는 패턴을 만든 뒤, 향후 가정용 요금제까지 확대해 낮과 밤의 전력 수급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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