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승범이 쏘아 올린 공…‘일·가정 양립’ 스포츠, 프로축구는 왜 어려웠을까

박효재 기자 2026. 3. 10.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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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시즌 K리그1 울산 HD 소속이었던 고승범. 프로축구연맹 제공

K리그1 울산 HD 소속이던 고승범은 지난해 둘째 출산을 앞두고 구단 관계자에게 “제왕절개는 하루 이틀이면 낫는다”, “장모가 딸 가진 죄”라는 망언을 들었다. 출산 전날 밤과 당일 오전, 왕복 10시간을 직접 운전해 훈련장으로 복귀해야 했다. 이 사실이 알려진 뒤 프로축구선수협회가 출산 휴가 의무화를 촉구했고, 프로축구연맹은 표준계약서에 출산·경조사 휴가를 넣는 방안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프로야구는 2019년 유급 경조사 휴가를 제도화했다. 휴가 기간에 1군 명단에서 빠지더라도 자유계약선수(FA) 자격에 필요한 1군 등록 일수는 그대로 인정해, 휴가가 선수 경력에 불이익이 되지 않도록 했다. 이와 같은 일·가정 양립을 위한 제도적 보장 논의가 프로축구에서는 왜 이제 시작되고 있을까.

본지는 K리그1 12개 구단 전체와 고승범이 이적한 K리그2 수원 삼성을 대상으로 질문을 던졌다.

우선 울산은 고승범 건에 대해 “구단의 전통적인 방침과는 상반된, 당시 의사결정권자들의 개인적 판단에 따른 예외적 상황이었다”며 유감을 표했다. 이전 수뇌부와 감독 체제에서 벌어진 극히 이례적인 상황이었다는 입장이다.

설문에 응한 구단 대부분은 그동안 출산·경조사 휴가를 잘 보장해왔다고 답했다. 다만 김천 상무를 제외하면 이를 명문화한 규정을 갖춘 곳은 없었다. 모두 감독 재량에 맡기는 구조다.

울산은 2024년 아시아챔피언스리그 16강 2차전 도쿄 원정을 앞두고 골키퍼 조수혁에게 출산 휴가를 줬다. 8강 진출과 클럽 월드컵 출전권이 걸린 경기였고, 골키퍼는 경기 중 부상 시 대체가 어려운 자리지만 구단은 가족 곁을 지킬 권리를 우선했다. 인천 유나이티드는 2023년 4월 포항 원정 경기 당일, 숙소 출발 직전 외국인 선수 델브리지의 아내로부터 예정일보다 한 달 빨리 진통이 시작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구단은 인천에 있던 직원을 선수 자택으로 보내 병원 이송을 도왔고, 경기 엔트리 한 자리를 포기하면서까지 델브리지를 통역관과 함께 인천으로 돌려보냈다. 전북 현대는 2025년 피지컬 코치였던 불가리스 파나요티스 아내의 출산에 맞춰 약 한 달간 그리스 귀국을 보장하고 보수도 전액 지급했다.

김천 상무는 유일하게 선수단 운영 규정에 자녀 출산 3일, 배우자·부모 사망 5일 등 유형별 휴가 일수를 명시하고 있었다. 국방부 산하 군 팀의 특수성 덕분이다.

김천 상무 김주찬과 고재현(빨간 유니폼)이 지난 8일 전북 현대와의 2026시즌 K리그1 2라운드 홈경기에서 김태현의 볼을 빼앗으려 하고 있다. 프로축구연맹 제공

제도화가 늦어진 배경에는 종목 특수성이 있다. 야구는 한 시즌 총 144경기, K리그1은 38경기를 치른다. 한두 경기에 시즌 성패가 갈릴 수 있어 경기당 비중이 다르다는 것이 축구의 주장이다. 야구는 투수와 타자의 개인 대결이 기본 단위지만, 축구는 11명이 하나의 전술 안에서 맞물려 움직여야 해 주전 한 명의 빈자리가 경기 운영 자체를 바꿀 수 있다.

포항 스틸러스는 “더블 스쿼드 이상의 구성을 갖추지 않으면 전력 타격이 불가피하다”고 했고, 전북도 “주전급 선수가 3~5일 빠지면 그 주말 경기 투입이 어렵다”고 답했다. 김대길 스포츠경향 해설위원은 “하루 이틀만 쉬어도 체력이 눈에 띄게 떨어진다. 90분 넘게 계속 뛰어야 하는 종목이라 체력이 준비되지 않으면 출전 자체가 어렵다”고 설명했다.

프로축구연맹이 제도 보완을 검토하면서 연맹 규정이 아닌 표준계약서를 택한 것은 선수의 법적 지위와 관련이 있다.프로축구 선수는 현행법상 근로자가 아닌 개인사업자로 분류되어, 근로기준법상 배우자 출산 휴가 같은 조항이 적용되지 않는다. 연맹 규정에 넣으면 연맹과 구단 사이의 약속에 그쳐, 구단이 어기더라도 선수가 직접 권리를 주장하기 어렵다. 반면 선수와 구단이 체결하는 계약서에 들어가면 선수 본인이 계약 당사자이므로, 구단이 지키지 않았을 때 이행을 요구하거나 법적 조처를 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이 방향 자체에 반대하는 구단은 없었다. 울산은 “명문화된 규정이 있으면 불필요한 갈등을 막을 수 있다”고 했다. 다만 구체적인 일수를 정하는 데는 온도 차가 있었다. 전북은 “명문화하면 자율성을 해친다. 사안에 따라 더 넉넉한 휴가를 줄 수 있는데도 규정에 적힌 일수만 따르는 분위기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대전은 “규정이 들어가면 구단 운영은 편해지겠지만 코치진 입장에서는 부담”이라며 이면을 짚었다.

답변 구단 대부분이 “그동안 잘 해왔기 때문에 제도화 논의가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고승범 사태는 사람이 바뀌면 관행도 바뀔 수 있음을 보여줬다. 포항이 “국가대표 차출을 받아들이듯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한 것처럼, 출산과 경조사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려면 감독 개인의 판단이 아니라 최소한의 제도가 뒷받침돼야 한다. 프로축구연맹이 시작한 이 논의가 현장의 자율성과 선수의 가족권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아, K리그에서도 일·가정 양립이라는 말이 낯설지 않은 시대로 이어질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박효재 기자 mann616@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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