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기름값 무서워’ 핸들 놓은 대구 시민들, 대중교통으로 모인다

김정원 기자 2026. 3. 10.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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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값이 한 달 생활비”…경유 ℓ당 2천 원 돌파, 휘발유도 2천 원 근접
평일 대구도시철도 이용객 180만 명 돌파
시내버스 이용객, 전년 대비 42만 명 가량 늘어…도심 외곽지역 주민들의 시내버스 유입
전문가들 “일시적 현상일 뿐…구조적 변화 이끌어야”
출근 시간대 대구 도시철도 반월당역은 사람들로 도시철도를 탑승하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로 붐비고 있다. 김정원 기자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사이의 군사적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하며 국제 유가가 요동치자 대구 지역민들의 출퇴근 풍경이 급변하고 있다.

경유는 이미 ℓ당 2천 원 돌파했으며 휘발유 역시 2천 원에 근접해지는 상황에서 '기름값 폭탄'을 피하기 위해 자가용 대신 도시철도와 시내버스를 선택하는 시민들이 늘어난 것이다. '기름값 전쟁' 이 멈추지 않는 한 달구벌대로의 적막과 대중교통의 북적임은 당분간 대구의 새로운 '뉴노멀'이 될 전망이다.

◆거대한 주차장이 된 아파트, 적막이 흐르는 도로

10일 오전 8시10분께 동구 신천동 벤처벨리네거리 인근. 교통 체증으로 클랙슨 소리가 난무하던 평소와 달리 조용했다. 상습 정체구간으로 알려진 이곳은 출근시간대였지만 차량 흐름이 눈에 띄게 원활했으며, 신호 대기선에 늘어선 차량 행렬도 훨씬 짧아졌다.

또한 '도로 위 주차장'으로 불릴 만큼 정체가 심하던 달구벌대로 만촌네거리~범어네거리 구간도 비슷했다. 왕복 10차선의 넓은 도로 위를 달리는 차량은 평소의 절반 수준이었다. 이외에도 두류네거리, 반월당네거리 등 차량 통행량이 많은 지역 역시 한산한 분위기를 띄었다. 두류동에서 반월당으로 출퇴근하는 김민종(38)씨는 "평소 출퇴근 시간이 30분 이상 걸리는데 지금은 15분 정도면 도착한다"며 "확실히 도로 위에 차가 없어 오히려 자차를 이용해 출퇴근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풍경은 아파트 단지 주차장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10일 오전 8시50분께 대구 동구의 한 대단지 아파트 주차장. 평소 같으면 주민들 출근으로 텅 비어 있어야 할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곳곳에 차량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직장인 박준호(45)씨는 최근 일주일째 자신의 차량을 지하 주차장에 세워두고 있다. 평소 동구 신서혁신도시까지 자차로 출퇴근하던 박 씨는 "왕복 25㎞가 넘는 거리를 매일 오가면 한 달 기름값만 40만 원으로 아이들 한 달 학원비만큼 나오게 생겼다"며 "중동전쟁 소식이 들릴 때마다 주유소 가격표가 훌쩍 뛰니 도저히 감당이 안돼 도시철도와 시내버스를 이용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 3월 유가 폭등 이후 대중교통은 항상 '만석'
10일 오후 퇴근시간이 아님에도 도시철도 내부는 승객들로 가득했다. 김도경 수습기자

텅 빈 도로와 달리 도시철도는 이용객들로 가득했다. 대구교통공사에 따르면 지난 4(화)~7일(금)까지 도시철도 1·2·3호선의 이용객은 183만4천292명으로 전년 동기(180만6천413명)과 비교했을 때 2만8천 명가량 증가했다. 특히 2호선 범어역과 1·2호선 환승역인 반월당역은 출근 시간대마다 몰려드는 승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고유가로 자가용 이용자들이 대거 도시철도로 유입된 것으로 분석된다.

대구권 광역철도(대경선) 역시 붐비는 상황이 비슷했다. 구미나 경산으로 자차로 출퇴근하던 인구가 대경선으로 유입되며 지난 4~7일 1만8천913명이 이용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0%가량 늘어난 수치다. 경산에서 대구로 출퇴근하는 성모(31)씨는 "고유가 지속 이후 대경선을 타고 출퇴근해 보니 훨씬 편하다"며 "유가가 돌아와도 대경선을 주로 이용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지난 9일 오전 8시께 시내버스는 몰린 승객들로 붐볐다. 서고은 수습기자

시내버스의 경우 도시철도보다 더 붐볐다. 지난 9일 오전 8시께 990번 버스는 사월에서 대구 도심으로 출근하기 위한 사람들로 앉을 자리가 없었다. 지난 1일부터 6일까지 대구 시내버스 이용객 수는 총 350만467명으로 전년 동기 307만7천43명과 비교했을 때 13.8%(42만3천424명)이 증가했다. 특히 대체공휴일 이후 평일 시작인 3일부터 6일까지 70만 명에 가까운 승객이 시내버스를 이용했다. 대구시 관계자는 "유가 상승 이후 달성군, 수성구 고산·사월 인근 주민들의 시내버스 이용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며 "도심 외곽지역으로 평소 자차를 운전하던 사람들이 시내버스로 유입된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 대중교통 몰리는 현상…전문가들 "경제적 잇점 경험으로 인식 달라지길"
한근수 대구교통공사 미래모빌리티연구실장.
교통·사회 전문가들은 이번 고유가 사태를 대구의 낮은 대중교통 분담률을 끌어올릴 역설적인 기회로 보고 있다. 한근수 대구교통공사 미래모빌리티연구실장은 "대구는 자가용 중심의 도로망이 이미 잘 갖춰진 곳으로 좋은 대중교통 유인 정책이 있어도 힘을 쓰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지금처럼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유입된 대중교통 이용객들은 이동의 편리성과 경제적 잇점을 체감하면 인식이 달라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허창덕 영남대 사회학과 교수

허창덕 영남대 사회학과 교수 역시 "현재 대중교통 몰림 현상은 하나의 '경제적 행동'으로 기름값 상승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재정 부담을 줄이기 위해 일시적으로 대중교통 이용률이 높아진 것"이라며 "이번 사태 이후 대중교통 이용객을 늘리기 위해서는 증편 및 환승 체계를 고도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정원 기자 kj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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