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재향군인회, 예산 빼돌렸다..."대통령실 조의금 300만원 만들자"

신은별 2026. 3. 10.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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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시절 고위인사용 '거액 조의금' 만들려
회장 측근, '인덕션 100개' 주문한 척 조성
회계 비리 불거지자 반환… 회유 시도도
잘못 인정했지만… 일회성? 조사 불가피
2022년 10월 6일 당시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서울에서 열린 대한민국재향군인회(향군) 창설 제70주년 기념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서재훈 기자

제대군인의 친목 도모를 목적으로 하는 '대한민국재향군인회'(이하 향군) 회장 측근이 향군 예산을 빼돌렸던 것으로 확인됐다. 물품을 구매한 것처럼 허위로 세금계산서를 발행하는 '전형적인 회계 부정 수법'을 동원했다. 국가보훈부 산하 공직유관단체인 향군은 산하업체 운영 수익을 보훈부에 보훈성금으로 납부한 후 동일한 규모의 예산을 돌려받는 방식으로 지원 받는다. 규모는 매년 수십억 원대다.

10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신상태 향군 회장 측은 2022년 모친상을 당했던 윤석열 정부 대통령실 수석비서관인 A씨에게 건넬 거액의 조의금을 마련하기 위해 회계 비리를 저질렀다. 향군에 대한 정부 지원금이 삭감될 가능성이 커지자, 이를 타개할 방안으로 대통령실 핵심 인사를 지원군으로 삼고자 했다.


"허위세금계산서 좀…" 업체와 '짬짜미'

국민권익위원회에 접수된 공익 제보 등에 따르면, 회계 비리는 신 회장의 최측근인 향군 비서실장 주도로 이뤄졌다. 2022년 8월 10일 A씨가 모친상을 당하자, 당시 '회계 시스템이 부실하다'는 이유로 예산 삭감 압박을 받던 향군은 이를 '기회'로 봤다. 향군은 대통령실 내 A씨 소관 단체였다. 같은 해 10월로 예정된 향군 창설 70주년 기념식에 윤석열 전 대통령을 초청하는 과정에서도 A씨의 도움이 필요했다. 윤 전 대통령이 조문한 8월 11일 신 회장도 빈소를 찾았다.

향군 내부 규정상 '외부 인사에 대한 조의금'을 별도로 규정하지는 않지만, 내부 인사들에게 적용되는 10만 원을 '적정 규모'로 본다. 그러나 비서실장 및 신 회장 측근들은 신 회장 명의로 조의금을 내는 만큼 10만 원은 부족하다고 봤다. 이에 이 실장은 평소 향군에 기념품 등을 납품하던 업체를 동원해 돈을 빼돌렸다.

한국일보가 대한민국재향군인회(향군)를 통해 확보한 8월 11일자 내부 서류에 '회장님 기념품 명목으로 인덕션 100개를 구입하고자 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총 360만 원 규모다. 신상태 향군 회장 측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 평소 거래하던 납품 업체가 허위세금계산서를 발행하는 방식으로 비자금을 조성했다. 신은별 기자

한국일보가 입수한 향군 내부 서류들을 분석한 결과, 8월 11일 이 실장은 본인 명의로 향군 내 기획행정국장에게 '2022년 사업계획 및 예산에 근거, 회장님 기념품 구입을 건의하니 협조 바란다'는 공문을 띄웠다. 적시된 물품과 수량은 3만6,000원짜리 인덕션 100개, 총 360만 원 규모였다. 8월 18일 업체가 전자세금계산서를 발행하자, 향군은 곧장 이 거래를 취소했다.

실제로 한국일보가 업체를 찾아가 거래 내역을 확인해보니, 2022년 진행된 인덕션 거래는 총 4건(4월, 8월, 9월, 12월)이었는데, 이 중 8월 거래엔 '예정'이라는 문구가 표시돼 있었다. 거래 취소 등의 사유로 정산이 되지 않았을 때 이렇게 표시되곤 한다. 이 실장은 한국일보에 "향군이 업체에 준 360만 원 가운데 업체 몫으로 60만 원을 떼어준 뒤 300만 원을 챙겼다"고 인정했다.

한국일보가 6일 서울 소재 한 업체를 찾아 확인한 '스티커 주문' 내역 일부. 스티커는 업체가 주문받은 물건을 납품하는 과정에서 발행한다. 해당 내역에 '대한민국재향군인회(향군) 스티커'가 다수 있다는 점에서, 업체가 향군과 지속적으로 거래해왔음을 알 수 있다. 이유진 기자

이민우 법무법인 영 변호사는 "재화나 용역을 받지 않고 세금계산서를 수취하는 '현금깡'은 비자금을 조성하기 위한 전형적인 방식"이라며 "조세범 처벌법에 근거해 형사처벌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영란법 위반? "300만 원, 마련은 했지만…"

신 회장이 A씨 모친상 조의금으로 300만 원을 냈다면,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 이른바 '김영란법' 위반이다. 대통령실 고위 인사였던 A씨와 공직유관단체인 향군은 청탁금지법 적용 대상이다. 청탁금지법에 따르면, 명목과 무관하게 1회 100만 원 또는 회계연도에 300만 원을 초과하는 금품 등을 주고받아선 안 된다.

9일 서울 서초구 대한민국재향군인회(향군) 건물 앞에서 향군 부실 재정 등을 규탄하는 집회가 열리고 있다. 집회 주최 측이 걸어둔 현수막 뒤로 향군 간판이 보인다. 신은별 기자

신 회장과 A씨는 조의금을 주고받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신 회장은 "경조사가 있으면 개인 돈으로 10만 원이나 20만 원을 한다"고 했고, A씨는 "300만 원을 받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 실장은 "실제로 조의금을 내지는 않았다"면서 "이왕 돈을 확보했으니 향후 비슷한 일이 있으면 쓰자는 생각으로 사무실 금고에 보관해 뒀다"고 해명했다. 신 회장 조문 닷새 뒤 A씨 부하직원은 서울 서초구에 있는 향군 사무실을 찾았다.

한국일보가 확보한 대한민국재향군인회(향군)의 2022년 방문자 목록 일부. 대통령실 고위 인사 A씨에 대한 신상태 회장의 조문 닷새 뒤 A씨 부하직원이 서울 서초구 향군 사무실을 방문한 것으로 확인됐다. 나광현 기자

'회계 비리' 감추려 3개월 뒤 '뒤늦은 반환'

주문한 인덕션이 배달되지 않자 같은 해 11월 향군 내부에서는 '돈을 빼돌린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를 인지한 이 실장은 360만 원 반환을 시도했다. 원래 지출된 계정과 동일한 계정으로 마이너스 금액을 전표 처리하는 회계 절차인 '여입처리'를 하고자 한 것이다. 이 실장은 직원들을 통해 360만 원(5만 원권 72매)을 기획행정국에 반납했으나, 일부 직원이 수령을 거부하자 '당시 72억 예산이 그분(A씨)에게 달려 있다고 생각해 다소 무리해서 돈을 쓴 것이니 양해해 달라'며 회유를 시도하기도 했다.

이 실장은 "당시엔 편법을 이용해서라도 조직을 관리하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했는데, 잘못 생각한 것"이라며 "신 회장은 내부적으로 회계 부정 문제가 불거졌을 때(2022년 11월) 전말을 알게 됐다"고 주장했다.

2023년 10월 4일 당시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열린 대한민국재향군인회(향군) 창설 제71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향군기가 입장하자 박수를 치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은 2022년에 이어 2년 연속 향군 창설 기념식에 참석해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서재훈 기자

향군은 중앙회 산하 14개 시도를 비롯해 각 시군구에 지회가 있는 거대 조직이다. 향군 내에선 허위세금계산서 발행을 통한 회계 부정이 '공공연한 관행'으로 여겨지고 있어, 향군에 대한 전반적인 조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향군 관계자는 "외부 회계감사에서 3년 연속 '적정 의견'을 받을 정도로 투명한 운영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나광현 기자 name@hankookilbo.com
이유진 기자 iyz@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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