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리스크에 원료 공급 흔들···석화 구조조정 영향은 ‘미미’

노경은 기자 2026. 3. 10.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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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 급등락 속 원료 공급망 불안 확대
진행 중인 석화 산업 재편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듯
항공 차질 불가피, 차·반도체도 예의주시
최근 열흘 간 종가기준 WTI 시세 / 표=정승아 디자이너

[시사저널e=노경은 기자] 중동 정세 악화 여파로 국제 유가가 급등과 급락을 반복하는 롤러코스터 장세를 보이면서 국내 산업계의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단기간에 배럴당 30달러 이상 움직이는 극단적 변동성이 나타나면서 원유 가격 자체는 물론 원료 공급망 불안도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석유화학 업계에서는 원료 수급 차질이 이미 현실화한 가운데 현재 진행 중인 산업 구조조정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10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현지시각 9일 미국 뉴욕상품거래소에서 서부텍사스산원유(WTI) 4월 인도분 선물 가격은 장중 배럴당 119.48달러까지 치솟았다. WTI 가격이 100달러선을 넘어선 것은 2022년 7월 이후 약 3년 만이다. 같은 날 국제 유가 기준인 브렌트유 5월 인도분 선물 가격도 배럴당 119.5달러까지 상승했다. 그러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쟁 조기 종식 가능성을 언급하고 주요 7개국(G7)이 전략 비축유 방출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유가는 다시 급락했다. 브렌트유는 배럴당 88달러대, WTI는 84달러대까지 내려왔다.

단기 급등락을 반복하는 변동성 장세가 이어지면서 산업계에서는 유가 자체보다는 공급망 불확실성 확대에 더 주목하는 분위기다. 특히 세계 원유 해상 운송의 핵심 통로인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장기화할 경우 원유와 석유화학 원료 수송에 차질이 발생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한국은 원유 수입의 약 70%를 중동에 의존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95% 이상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들어온다. 수송 차질이 발생할 경우 원유 확보 비용 상승뿐 아니라 대체 공급망 확보에도 상당한 비용 부담이 불가피하다.

◇나프타 수급 불안 현실화···여천NCC 공급 불가항력 선언

석유화학 업계에서는 이미 원료 수급 문제가 현실화하고 있다. 나프타 분해시설(NCC) 업체인 여천NCC는 최근 주요 고객사에 일부 제품 공급 지연을 통보하고 공급 불가항력(Force Majeure)을 선언했다. 이는 통제 불가능한 외부 요인으로 계약 이행이 어려울 경우 책임을 면하기 위해 기업이 내리는 조치다.

여천NCC의 이번 조치는 원료인 나프타 확보에 어려움이 발생한 데 따른 것이다. 나프타는 에틸렌과 프로필렌 등 석유화학 기초유분을 생산하는 핵심 원료로 플라스틱·섬유·합성수지 등 다양한 산업의 출발점이 되는 기초 소재다.

문제는 공급 구조다. 한국이 사용하는 나프타 상당량은 중동에서 수입되며 이 가운데 상당 부분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다. 해상 운송 불확실성이 커지면 원료 확보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국내 석유화학 기업들의 나프타 재고는 통상 2~3주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공급 차질이 장기화할 경우 NCC 가동률 하락이나 일부 설비 가동 중단 가능성도 거론된다.

석유화학 업계는 이미 중국발 공급 과잉과 업황 부진으로 가동률을 낮추는 구조조정 국면에 들어간 상태다. 여기에 원료 수급 불안까지 겹치면서 생산 차질과 비용 상승이라는 이중 부담에 직면한 것이다.

업계에서는 원료 수급 불안이 현재 진행 중인 석유화학 산업 구조조정의 변수로 작용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지만 그럴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김평중 대한석유화학협회 본부장은 "이미 중국발 공급과잉으로 인해 회사들이 가동률이 낮은 상태다 보니 호르무즈 해협 폐쇄와 같은 외부 요인이 구조조정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극히 적다"고 내다봤다.

유연백 대한석유협회 부회장도 "이란산 석유는 중국이 최대 구입처였다는 점에서 중국의 리스크가 우리보다 상대적으로 크겠지만 우리도 개편 이후 정상화까지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밝혔다.
호르무즈 해협 위치도 / 이미지=김은실 디자이너

◇항공·자동차·반도체까지 확산되는 '오일 쇼크'

한편 유가 상승의 영향은 항공업계에서도 빠르게 나타나고 있다. 항공사 비용 구조에서 유류비는 전체 영업비용의 25~35%를 차지한다. 대한항공의 연간 예상 유류 소비량은 약 3050만 배럴로, 유가가 1달러 오르면 약 3050만 달러(약 450억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

환율 상승 역시 부담 요인이다. 항공기 리스료와 정비비 등 주요 비용이 대부분 달러로 결제되기 때문이다. 대한항공의 경우 환율이 10원 오를 때마다 약 300억원의 외화 손실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저비용항공사(LCC)는 상황이 더 취약하다. 항공기를 직접 구매하기보다 임차하는 경우가 많아 달러 결제 비용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대형 항공사는 화물 운송으로 일부 수익을 보완할 수 있지만 여객 중심 LCC는 재무적 타격이 더 큰 것으로 알려져있다.

중동발 리스크 장기화는 자동차와 반도체 등 주요 수출 산업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에너지 가격 상승은 제조업 전반의 비용 증가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특히 국제유가 급등시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 압력이 커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산업용 전기요금은 앞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이미 7차례에 걸쳐 약 70% 인상된 상태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헬륨 등 일부 소재 공급 차질 가능성이 거론되지만 공급망 다변화가 진행돼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다만 에너지 가격 상승이 전력 비용 증가로 이어질 경우 AI 투자 확대에 나선 반도체 기업들의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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