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산비리 척결하려 만든 조직이 'K-방산' 신화 썼다…방위사업청 탄생 비화는

방위사업청 20주년...'K방산'의 현재와 미래<1>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역사를 만들고 그 과정에서 귀인(貴人)을 만나면 기적이 발생한다.”
필자의 지인이 자주 하는 말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귀인이 되어, 한 개인의 삶을 넘어 국가 공동체에 기적 같은 역할을 감당하라는 뜻이다. 귀인은 우연히 나타나고 기적은 마치 ‘로또’ 당첨처럼 갑작스럽게 주어지는 행운이라 여기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지난 30여년 동안 필자가 K-방산 현장에서 ‘우연히 행운처럼’ 만난 귀인이나 기적은 없었다. 방산 각 분야의 능력자들과 수없이 만났지만, 그 만남이 즉시 기적 같은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철저히 준비해 서로 협업하고, 실패해 쓰러져도 더 큰 비전을 갖고 일어서는 일이 수십년 반복되고 축적된 결과가 오늘의 ‘K-방산’이다. 준비된 사람만이 귀인이 될 수 있고, 기적은 준비된 사람들이 오랜기간 협업하며 축적한 결과가 임계치를 넘어서는 순간 비로소 나타난다. 이런 기적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적이다.
K-방산은 현장 인력들이 서로에게 귀인이 되어 피·땀·눈물로 엮어낸 기적의 역사다. 2006년 방위사업청 개청 이후 필자는 전문성과 열정을 가진 귀인들을 만났고, 방산 현장에서 함께 울고 웃으며 역경을 극복했다.
방산은 국가 안보를 위해 존재하는 공공재 산업
방위산업은 다른 산업들과 근본적인 차이점이 있다. 일반 산업은 다수의 수요자와 공급자가 참여하여 시장에서 경쟁을 통해 생산과 배분이 이뤄지는 소비 경제 시스템이다. 반면 방위산업은 국가 안보를 위해 존재하며, 독점적 수요자인 정부가 기술·산업정책을 주도하고 소수의 독과점적 공급자가 제조 생산하는 국가 주도 안보 시스템 성격의 공공재 산업이다.

방위산업 현장은 정책과 사업을 주도하는 정부, 기술을 개발하는 연구자, 기술을 무기체계에 적용해 생산·공급하는 소수의 방산기업으로 구성돼 있다. 방산 시장에도 수요와 공급이 존재하지만, 정부가 주도해 경쟁 방식과 규칙 등을 설계하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한 나라의 방위산업 수준은 방산 인력들의 역량과 성숙도가 결정한다. 특히, 국내 방산시장 전체를 설계하고 관리하는 정부의 역량은 매우 중요하다. 국제 방산시장에서도 정부가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국제 방산시장의 수요자는 보통 우방국 정부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무기체계 획득업무(방산수출 포함) 전담조직으로 2006년 1월 1일 방위사업청을 출범시켰다. 올해로 스무살이 된 방위사업청은 K-방산의 흐름과 함께 국제 방산시장에서 주목받는 전문기관으로 자리매김했다. 일본도 우리 방위사업청을 모델로 삼아 2016년 방위장비청을 출범시켰다.
올해 K-방산은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목표는 K-방산 'G4' 진입이다. 방위사업청이 책임지고 감당해야 할 과제다. 방사청 구성원과 방산분야 인력이 서로에게 귀인이 되면 무난히 달성할 수 있다.
"비리로 얼룩진 방산 분야의 개혁 필요"...2006년 방위사업청 출범
필자에게 ‘K-방산의 가장 결정적인 순간’을 꼽으라면 2006년 1월 1일 방위사업청의 개청이다. 방위산업이 우리 군의 전력 증강을 위한 통로, 즉 무기체계 획득을 위한 산업이 아니라, 부국과 강병을 동시에 이룰 유일한 산업으로의 가능성을 인정받은 것이다. 현재 세계가 주목하는 ‘K-방산’의 출발점이다.
필자와 방위사업청과의 만남은 2003년 10월 시작됐다. 2000년대 들어 ‘린다김’ 사건을 필두로 대형 비리가 드러나면서 방산 분야는 고질적 부패가 만연한 분야로 각인됐다. 그리고 2002년 초 대통령 직속기관으로 출범한 부패방지위원회에는 방산비리에 대한 신고가 폭주했고, 이를 처리할 방산업무 경험이 있는 과장급 인력이 필요한 상태였다. 1999년부터 국방부 획득실에서 근무했던 필자는 2002년 말부터 부패방지위원회에서 과장급으로 근무하면서 방산비리의 다양한 민낯을 보게 됐다.

2003년 2월 출범한 참여정부는 모든 공직 분야의 투명성을 높이는 근본적인 변화를 시도했고, 그 흐름은 권력형 방산비리로 향했다. 린다김 사건에 이어 국방차관과 국방부 산하 품질관리소장 등 국방 분야 고위직의 비리가 드러나면서 방산비리는 국민적 공분의 대상이 됐다.
참여정부는 방산비리를 고질적·구조적 문제로 인식하여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기 시작했다.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이 ‘30여 년간 누적된 군납비리 구조를 근본적으로 타파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이 신호탄이 됐다.
해결책을 찾기 위해 당시 노무현 정부 청와대의 이용철 법무비서관 겸 민정2 비서관이 나섰다. 2003년 10월 중순쯤 필자는 청와대 회의실로 호출됐다.
이 비서관은 필자의 대학 선배로 신입생이었던 1983년 같은 동아리에서 인연을 맺었고, 이후에도 연락을 주고받던 사이였다. 국방부 획득실과 부패방지위원회에서 근무한 필자의 경력을 알고 있기에 부른 것이다. 회의에는 민정1비서관실 선임행정관이 배석했다. 이 비서관은 노무현 대통령의 부패척결 의지를 전달하며, 방산비리 구조를 깊이 있게 진단하고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획득체계개선단에서 만난 귀인들...K방산의 출발점
일주일 뒤 열린 두번째 회의에는 당시 국방부 획득실 산하 연구개발관실에서 근무하던 이창희 중령이 합류했다. 필자가 국방부 분석평가관실에서 일할 때, 여러 차례 자료 협조을 받았고, 다양한 경험을 전해 주던 ‘똑 부러지는’ 장교였다. 회의에선 소요부터 획득 업무 전체를 세세히 나눠 비리가 발생하는 구조적 원인을 분석했다. 이 비서관은 사전 자료 수집과 분석을 통해 방산 비리가 발생하는 획득 업무를 꿰뚫고 있었고, 비리 구조 분석을 주도했다.
다시 일주일 뒤 열린 세번째 회의에선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대안에 대한 토론이 이어졌다. 필자는 그 자리에서 ‘획득청’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당시 획득 업무는 국방부 획득실이 담당하고 있었다. 율곡비리에 대한 국민적 공분이 커지자 획득 정책과 사업 관리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마련한 조직이었다. 그러나 주무 담당을 포함해 주요 직위자의 90% 이상이 현역 장교로 구성됐고, 육군 중심이었다.

사업관리 실무는 각 군에 설치된 사업단이, 계약은 조달본부 등 별도의 조직이 독자적으로 수행하는 구조였다. 국방부 획득실은 각 군에서 파견 나온 장교들이 사업을 담당하며, 예산편성과 집행, 주요 의사결정을 관리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각 군별 ‘끼리끼리’ 문화가 형성될 수 밖에 없었고, 상명하복의 폐쇄적 의사결정이 만연했다. 게다가 장교들은 순환 근무가 원칙이어서, 획득 정책과 사업 관리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기 어려웠다. 그래서 ‘소요→획득→야전배치 및 운영유지’로 이뤄진 전력증강 절차 중 핵심인 획득 단계만을 전담하는 ‘획득청’ 신설을 제안한 것이다.
이후 수 차례의 치열한 토론과 대통령 보고 등을 거쳐, 2004년 3월 범정부적 ‘획득체계개선위원회’가 구성됐고, 2004년 8월 외청 신설 결정, 9월 총리실 산하 ‘획득체계개선단’ 출범이 속속 이뤄지면서 본격적으로 방위사업청 개청이 추진됐다.
획득체계개선단은 단장을 맡은 이용철 비서관이 혁신 방향과 제도화를 이끌었고, 2005년 대령으로 진급한 이창희 중령도 핵심 역할을 했다. 창의적인 대안을 제시했던 국방부 김일동 서기관 등 현장 전문가들은 부패구조 타파 뿐만 아니라 전문성, 효율성, 방산 경쟁력 강화 등을 방위사업청의 지향점으로 설정했다.

그리고 2005년 12월 30일 한밤중 당시 야당의 거센 반대 속에 ‘방위사업법’이 국회를 통과했고, 2006년 1월 1일 방위사업청이 출범했다. 당시 해외 유학 중이던 필자는 2006년 1월 귀국해 방위사업청 방산정책과장으로 임명됐다. 이용철 비서관은 방위사업청 개청과 함께 초대 차장으로 임명돼 조직 안정화와 획득업무의 혁신을 주도했다. 그 해 11월 사임한 그는 19년 만인 지난해 11월 방위사업청장으로 복귀했다.
방산 비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구성된 획득체계개선단에서 만난 이용철 비서관(현 방위사업청장), 이창희 중령(국방기술품질원장 역임), 김일동 서기관(현 방위사업청 차장) 등이 방위사업청을 출범시켜 K-방산의 출발점을 만든 주역들이자 귀인들이다.
우리나라 방산 발전의 역사
1970~80년대 무모한 도전으로 시작된 기술개발...율곡 비리의 그림자
우리나라에서 현대적 의미의 방위산업은 1970년 국방과학연구소(ADD)가 출범하면서 시작된다. 창설 첫해, 대통령의 특별 지시로 ADD에 부여된 임무는 소총, 탄약, 박격포, 무전기 등을 개발하는 ‘번개사업’이었다. 그 이듬해에는 국산 최초 유도무기(미사일)를 개발하는 ‘백곰사업’이 시작됐다. 소총 한 자루 제대로 만들지 못하던 시기였다. 기술적 기반이 극히 취약한 상황에서 시작된 무모한 도전이었지만, ADD는 국산 무기 개발이 기술적으로 가능함을 입증하였고, 특히 백곰사업은 우리나라 미사일 개발의 기원이 되었다. 권위주의 체제에서 최고 권력자가 내린 정치적 결정을 기술적으로 보좌하는 아이러니한 모습이었지만, 무모하리만큼 도전적인 국방 연구개발(R&D)의 역사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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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31010300003071
K방산의 결정적 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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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22610120002805)
(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30316110002104)
(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30309220000650)
강은호 전북대 교수(전 방위사업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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