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대한스키협회 스포츠공정위는 '승부조작'을 어떻게 무혐의로 만들었나

정형근 기자 2026. 3. 10. 14:01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대한스키스노보드협회 스포츠공정위가 스포츠윤리센터의 '승부조작' 징계를 거부해 논란이 일고 있다. 

[스포티비뉴스=정형근 기자] 스포츠윤리센터가 약 1년 6개월 동안 조사해 ‘승부조작’ 정황을 확인하고 중징계를 요구한 사건이 대한스키·스노보드협회 스포츠공정위원회에서 뒤집혔다. 협회 공정위는 승부조작 혐의를 인정하지 않고 ‘경기 진행 미숙’만 문제 삼아 비교적 가벼운 징계를 의결했다.

대한스키·스노보드협회가 직접 구성한 공정위원회가 윤리센터 조사 결과를 뒤집으면서 ‘솜방망이 징계’와 ‘제 식구 감싸기’ 논란이 커지고 있다. 윤리센터가 장기간 조사해 내린 결론이 회원종목단체 공정위의 한두 차례 회의로 뒤집힌 셈이기 때문이다.

◆ 대학 입시 걸린 경기에서 나온 ‘승부조작’…윤리센터는 중징계 요구, 협회 공정위는 ‘무혐의’

‘승부조작’ 논란이 일어난 대회는 2024년 1월 열린 제54회 대한스키협회장배 전국스키크로스대회다. 대학 입시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이 대회에서 당시 TD(Technical Delegate)를 맡았던 장애인스노보드 전 국가대표 A 감독이 주도해 판정을 변경하면서 최종 순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스포츠윤리센터 결정문에 따르면 판정 변경의 수혜를 입은 선수들이 A 감독이 운영했거나 실질적으로 지도한 것으로 조사된 사설팀과 연관돼 있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윤리센터는 판정 권한과 사적 이해관계가 결합돼 그 결과가 특정 선수 집단에 유리하게 작동했다고 판단했다.

윤리센터는 약 1년 6개월 동안 관련 자료와 참고인 진술 등을 확보하며 조사를 진행했다. 판정 변경 과정과 관련자들의 이해관계, 경기 당시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끝에 이 사건을 단순한 판정 논란이 아닌 경기 결과에 영향을 미친 승부조작으로 판단했다.

윤리센터는 이에 따라 관련자들에 대한 중징계를 요구하고 경찰 수사까지 의뢰했다.

그러나 대한스키·스노보드협회 스포츠공정위원회의 판단은 달랐다. 협회 공정위는 지난 2월 24일 열린 회의에서 승부조작 혐의에 대해 ‘혐의 없음’으로 판단했다.

대신 경기 운영 과정에서의 절차적 문제만 인정했다. 공정위는 A 전 감독에게 자격정지 9개월, 경기위원장과 레프리에게 각각 자격정지 6개월의 징계를 의결했다.

윤리센터가 장기간 조사를 통해 승부조작 결론을 낸 사건을 협회 공정위는 한두 차례 회의 끝에 ‘경기 진행 미숙'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1년 넘는 조사 결과가 협회가 구성한 공정위원회의 짧은 심의 과정에서 뒤집힌 셈이다. 심지어 공정위원회 회의 현장에 참석한 위원은 고작 5명뿐이었다.

스포츠공정위 징계 규정에 따르면 승부조작 혐의가 인정되면 '영구 제명' 이외의 결론은 내릴 수 없다.

그러자 대한스키·스노보드협회 스포츠공정위는 '승부조작' 혐의를 무혐의 처분하고, '경기 진행 미숙으로' A 감독은 자격정지 9개월, 경기위원장과 레프리는 각각 자격정지 6개월의 징계를 의결했다.

이 같은 결정이 알려지자 체육계에서는 '제 식구 감싸기'가 또 나왔다는 지적이 나왔다. 특히 스키 종목 특성상 국내 대회가 거의 열리지 않는 비시즌 기간이 길다는 점을 고려하면 실제 활동 제한 효과가 크지 않을 수 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문체부 산하 스포츠윤리센터는 약 1년 6개월의 조사를 바탕으로 해당 사건에 대해 '승부조작' 혐의가 인정된다는 결론을 냈다. 그런데 대한스키스노보드협회 스포츠공정위는 한두 차례의 회의로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대한스키스노보드협회 스포츠공정위의 징계 결정서. 윤리센터 조사와 반대로 '승부조작' 혐의가 없다고 명시하며 경기진행 미숙에 대한 징계를 의결했다. 스포츠공정위 현장에는 5명의 공정위원이 있었다. 

◆ 협회가 구성한 스포츠공정위…반복되는 ‘솜방망이 징계’ 논란

이번 사건이 더 큰 논란으로 이어진 이유는 스포츠공정위원회의 구조 때문이다. 대한체육회 규정상 종목단체 스포츠공정위원회 위원은 해당 협회가 선임한다. 즉 협회가 구성한 공정위원회가 협회 내부 사건을 심의하는 구조다.

매번 지적된 스포츠공정위의 '제 식구 감싸기'가 이번에도 반복됐다는 지적이다.

한 체육계 관계자는 "예전에 한 종목에서는 피해 선수가 폭행 지도자를 신고했더니, 스포츠공정위에서 신고한 선수에게 지도자보다 더 센 징계를 내린 적도 있었다. 폭행 지도자는 스포츠공정위원들과 모두 안면이 있고, 자신에게는 최소한의 징계만 나올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었다. 협회와 징계 대상자가 밀접한 관계에 있는 경우가 많은데 누가 제대로 된 징계를 내리겠나"라고 반문했다.

체육계에서는 윤리센터가 장기간 조사해 승부조작 정황을 인정한 사건을 협회 공정위가 회의 한두 번으로 뒤집은 점 자체가 매우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심지어 이번 공정위에서는 피해자와 가해자를 대질 심문하는 '2차 피해'까지 이뤄져 논란은 더욱 커지고 있다.

피해자 측 역시 공정위 심의 과정에 강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피해자 측은 “공정위가 열린다는 것도 협회가 아닌 스키계 관계자를 통해 들었다. 협회에 가서 발언 기회를 왜 주지 않느냐고 항의하니 그제서야 회의에 참석하라는 공문을 보내줬다. 그런데 회의에 가보니 분위기가 이상했다. 이미 결론을 정해놓고 질문하는 느낌이었다”며 “아내가 승부조작을 한 당사자와 마주치는 것이 부담스러워 자리를 다시 잡기도 했다”고 말했다.

또 “공정위 관계자가 '아들이 계속 운동해야 하니 우리가 충분히 고려해서 판단하겠다'는 발언까지 했다”며 “그때부터 결과가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결국 승부조작이 무혐의라는 결론이 나온 것을 보면서 당시 느꼈던 의심이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이어 "2년 전 승부조작이 발생했을 때 협회에 스포츠공정위를 열어 이 사건을 다뤄달라고 얘기했다. 그런데 협회는 윤리센터의 결과를 기다리겠다며 시간을 끌었다. 그런데 윤리센터의 결과가 나오자, 그 결과를 뒤집는 결정을 했다.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한 스포츠 인권 전문가는 “고(故) 최숙현 사건 이후 체육계 비위 행위 조사는 스포츠윤리센터가 맡고 있다”며 “윤리센터 조사 결과를 종목단체 스포츠공정위가 정면으로 뒤집는 사례는 사실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스포츠공정위는 조사 권한이 있는 기관도 아니다. 그런데 피해자와 가해자를 같은 자리에서 대질 심문하고 1년 넘게 진행된 조사 결과를 사실상 뒤집었다면 의문이 남을 수밖에 없다. 인권 감수성에도 분명한 문제가 있는 회의다. 윤리센터는 참고인 진술과 정황 자료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결론을 내린다. 수사까지 진행 중인 상황에서 협회 공정위가 승부조작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은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대한체육회는 스키 종목의 승부조작 사건에 대해 매우 엄중하게 인식하고 있다며, 엄정하게 조치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 스포츠윤리센터 '재징계 요구' 유력…공은 대한체육회 스포츠공정위로

대한스키·스노보드협회 스포츠공정위의 '솜방망이 징계'에 대해 스포츠윤리센터는 재조치를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국민체육진흥법 제18조의9에 따르면 '(체육단체에서) 보고 받은 (징계) 처리 결과에 대해 필요한 경우 다시 조치할 것을 요구할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다. 또한 스포츠윤리센터로부터 징계를 요구받은 체육단체는 결과 보고 시 회의록 등 객관적 근거 자료를 의무적으로 제출해야 한다.

체육단체가 재조치 요구마저 이행하지 않을 경우, 문체부를 비롯한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해당 단체에 대해 최대 2년간 재정 지원을 제한할 수 있도록 명문화됐다.

윤리센터의 대응과 별개로 대한체육회 스포츠공정위도 해당 사안에 대한 판단을 내릴 전망이다. 대한체육회 스포츠공정위원회 규정에 따르면 종목단체 공정위의 1차 징계 결정에 대해 당사자는 재심을 신청할 수 있다. 특히 '권익 침해' 사안의 경우 피해자 역시 재심을 요청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다.

이번 사건에서도 피해자 측은 협회 공정위가 스포츠윤리센터 조사 결과를 사실상 뒤집었다며 대한체육회 스포츠공정위원회에 재심을 신청했다. 협회가 징계 사유를 ‘경기 운영 미숙’으로 판단했더라도 사건의 성격이 승부조작 등 공정성 침해와 관련된 사안이라면 피해자의 재심 신청 자체는 가능하다는 것이 체육계의 일반적인 해석이다.

체육계에서는 이번 사건이 단순한 경기 판정 논란을 넘어 한국 스포츠 징계 시스템의 구조적 문제를 드러낸 사례라는 지적도 나온다. 스포츠윤리센터가 조사해도 실제 징계 권한은 종목단체 스포츠공정위가 갖는 구조 속에서 ‘솜방망이 징계’ 논란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승부조작 사건이 발생한 이후 약 2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사건은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다. 이제 공은 다시 스포츠윤리센터와 대한체육회 스포츠공정위원회로 넘어갔다. 대한스키·스노보드협회 공정위의 판단이 적절했는지 여부가 다시 한 번 시험대에 오를 전망이다.

<저작권자 ⓒ SPOTV 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스포티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