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꺼번에 해안 밀려온 고래...'사회성' 때문?
고래가 한꺼번에 해변으로 올라오는 '집단 좌초'는 세계 곳곳에서 반복돼 온 현상이다. 달라진 해안 환경 등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친 결과다. 이런 가운데 일각에서는 고래가 가진 '사회성'이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에도 주목하고 있다.

사건은 2023년 7월 스코틀랜드 루이스섬 톨스타 베이(Tolsta Bay)에서 발생했다. 해안으로 올라온 고래들은 대부분 이미 탈진 상태였고 구조가 어려운 개체는 안락사됐다. 이 사건은 영국에서 발생한 가장 큰 규모의 파일럿고래 집단 좌초 가운데 하나로 알려졌다.
파일럿고래는 돌고래과에 속하는 대형 해양포유류다. 몸길이는 보통 5~7m에 이르며 둥근 이마와 짧은 주둥이가 특징이다. 주로 오징어와 물고기를 먹고 살며 수십 마리에서 많게는 100마리 이상이 모인 무리를 이루는 강한 사회성을 가진 종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무리 행동이 강한 특성 때문에 파일럿고래는 전 세계에서 집단 좌초가 가장 자주 보고되는 고래류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임신한 암컷 개체를 무리 전체가 따라갔을 가능성"
스코틀랜드 해양동물좌초조사단(SMASS)과 글래스고대 연구진이 지난 5일 발표한 2023년 좌초 사건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좌초된 고래들은 영양 상태와 신체 조건이 전반적으로 양호한 상태였다. 병리 검사에서도 치명적인 질병이나 감염은 발견되지 않았다. 연구진은 이를 근거로 이번 사건이 질병 때문이라기보다 행동과 환경 요인이 결합해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이 주목한 단서 가운데 하나는 무리 안에 있던 임신한 암컷 개체였다. 조사 과정에서 이 개체에서 출산 과정의 어려움(난산) 가능성이 확인됐다. 연구진은 이 개체가 얕은 해역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무리 전체가 함께 따라갔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해안 지형 역시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사건이 발생한 톨스타 베이는 수심이 빠르게 얕아지는 해저 지형을 가지고 있으며, 좌초 당시에는 해안 방향으로 바람이 불고 있었다. 연구진은 이러한 조건이 고래들이 방향을 바꾸거나 깊은 바다로 돌아가는 것을 어렵게 만들었을 가능성을 짚었다.
유전자 분석 결과도 흥미로운 단서를 제공했다. 좌초된 고래들은 하나의 가족 집단이 아니라 여러 집단이 섞인 무리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어린 개체는 어미와 떨어진 상태로 발견되기도 했다. 연구진은 이러한 상황이 얕은 해역에서 무리 행동에 혼란을 만들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해안 지형·환경 조건·개체 상태 등 동시에 작용
한편 다른 연구에서는 해양 환경 요인이 고래 건강에 영향을 줄 가능성도 제기됐다. 2023년 해양생물학 학술지(Journal of the Marine Biological Association of the United Kingdom)에 게재된 연구에서는 아이슬란드에서 좌초된 파일럿고래를 분석한 결과, 고래 지방 조직에서 잔류성 유기오염물질(POPs)이 검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연구진은 이러한 오염물질이 직접적인 좌초 원인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해양 포유류에서 어떤 수준의 오염물질이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지는 아직 충분히 규명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연구를 종합하면 연구자들은 파일럿고래 집단 좌초를 단일 원인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현상으로 보고 있다. 사회적 행동과 해안 지형, 환경 조건, 개체 상태 등이 동시에 작용하면서 사건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집단 좌초 사건이 "깊은 바다에서 살아가는 고래의 건강 상태와 먹이, 해양 환경을 함께 분석할 수 있는 중요한 연구 기회를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파일럿고래 집단 좌초는 세계 여러 해역에서 반복적으로 보고되고 있다. 2020년 호주 태즈메이니아에서는 약 470마리가 좌초했으며, 뉴질랜드와 북대서양에서도 수십에서 수백 마리 규모의 좌초 사례가 기록돼 왔다. 연구자들은 이러한 사건을 통해 고래의 사회 행동과 해양 환경 사이의 관계를 이해할 단서를 찾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