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문보물’에서 ‘한국야구 보물’로 진화한 문보경 “미국 가서 보고 싶은 선수? 없어요. 정후 형이랑 한 팀에서 뛰어서 행복해요” [도쿄 in SEGYE]

남정훈 2026. 3. 10.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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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남정훈 기자]프로야구 LG 팬들은 문보경(26)을 가리켜 ‘문보물’이라 부른다. 2019년 신인 드래프트 2차 3라운드 25순위로 LG 지명을 받은 후 1군 데뷔가 2021년으로 다소 늦었지만, 2022년 첫 3할 타율(0.315)을 넘긴 문보경은 2024년 22홈런 101타점, 2025년 24홈런 108타점으로 뚜렷한 성장세를 보이며 KBO리그에서 귀하디귀한 거포 내야수로 자리 잡았다. 보물이라는 애칭은 그의 성장을 상징하는 단어다.
9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2026 WBC 조별리그 C조 4차전 한국과 호주의 경기, 2회초 무사 주자 1루 한국 문보경이 2점 홈런을 친 뒤 그라운드를 돌고 있다. 뉴시스
지난해까진 문보경이 LG 팬들만의 보물이었다면, 올해 3월부터는 ‘한국야구의 보물’로 우뚝서는 모양새다. 2009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준우승 이후 오랜 기간 본선 1라운드 탈락의 늪에 빠졌던 한국 야구를 17년 만에 결선 라운드로 이끈 일등공신이 바로 문보경이기 때문이다.

류지현 감독이 이끄는 한국 야구대표팀은 지난 9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2026 WBC C조 조별리그 호주와의 최종전에서 7-2로 승리했다.

호주와의 맞대결 전까지 1승2패로 몰렸던 한국이 조 2위에 오르기 위해선 2실점 이하, 5점차 이상 승리라는 바늘구멍 같은 경우의 수가 있었는데, 딱 들어맞는 승리를 거둔 것이다. 여기엔 0-0으로 맞선 2회 선제 투런포를 때려낸 문보경의 공이 컸다. 홈을 밟은 후 더그아웃에 들어와 동료들과 하이파이브를 하던 문보경은 “가자, 할 수 있다”라며 포효했다.
9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2026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C조 조별리그 최종전 대한민국과 호주의 경기. 호주를 꺾고 8강 진출을 확정한 한국 이정후가 포효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보경은 선제 투런포에 멈추지 않고, 3회 적시 2루타, 5회 펜스 직격 적시타를 때려내며 이날 한국이 낸 7점 중 4점을 책임졌다. 지난 5일 체코전에서도 1회 선제 결승 만루포를 때려냈던 문보경은 조별리그 4경기에서 타율 0.538(13타수 7안타) 2홈런 11타점 OPS(출루율+장타율) 1.779라는 만화 같은 성적을 냈다. 타점 11개는 2009 WBC에서 김태균(전 한화)이 세웠던 한국 타자 단일 WBC 최다 타점과 타이다. 8강, 그 이상까지 오를 경우 문보경은 신기록 작성도 가능하다. 이번 WBC 한정, 한국 최고 타자는 이정후(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가 아니라 문보경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기 뒤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에서 만난 문보경의 얼굴에는 기쁨이 가득했다. 그는 “LG가 한국시리즈 우승했을 때보다도 지금이 더 좋다는 말로도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기뻐요”라며 벅찬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울었냐’는 질문에 “네. 안 운 사람을 찾는 게 더 어려울 것 같은데요?”라고 반문한 문보경은 뭔가 막혀있던 게 뚫린 느낌이에요. 대회 전부터 걱정도 많고 긴장도 많이 했는데, 그런 게 엄청 시원하게 풀려서 눈물이 났던거 같아요”라고 설명했다.
9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2026 WBC 조별리그 C조 4차전 대한민국과 호주의 경기. 2회초 무사 1루 한국 문보경이 우중간 투런 홈런을 치고 있다. 연합뉴스
9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2026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C조 조별리그 최종전 대한민국과 호주의 경기. 호주를 꺾고 8강 진출을 확정한 한국 문보경이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앞선 세 번의 WBC 본선 1라운드 탈락, 2020 도쿄 올림픽 노메달, 2024 프리미어12 조별예선 탈락 등 연이은 국제대회 부진으로 KBO리그의 관중 수는 역대급으로 치닫는 상황과 맞물려 한국 야구는 ‘우물 안 개구리’라는 비판을 받아야 했다. 이에 대해 문보경은 “대만전 패하고 그런 얘기가 또 나오긴 했었잖아요. 그래도 이제 8강에 올라갔으니 한국 팬들이 좋아할 것이고, 야구 인기가 더 올라가면 좋을 것 같아요. 일단 이번 승리로 증명할 수 있어서 좋았던 것 같아요”라고 속내를 털어놨다.
호주전 종료 기준 WBC 전체 선수 중 유일한 두 자릿수 타점으로 1위를 달리고 있지만, 문보경은 “그런 건 솔직히 상관없어요. 그저 위로 올라가서 다행이죠”라며 개인 성적엔 개의치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9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2026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C조 조별리그 최종전 대한민국과 호주의 경기. 호주를 꺾고 8강 진출을 확정한 한국 문보경이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9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2026 WBC 조별리그 C조 4차전 한국과 호주의 경기, 7-2로 승리해 WBC 본선에 진출한 한국 대표팀 문보경이 기뻐하고 있다. 뉴시스
KBO리그에서도 뜨거울 때 한껏 몰아치는 스타일이었던 문보경은 “지금이 제 야구 인생의 최고점 아닐까요? 예전에도 이 정도로 잘 쳤던 적이 없는 것 같은데, 가장 감이 좋을 때 WBC 기간이 겹쳐서 다행이죠”라고 웃었다.
‘LG 팬들의 문보물에서 한국야구의 국보가 됐다’라고 취재진이 찬사를 보내자 문보경은 “제가 잘한 모습을 애국가 배경 영상에 넣어주세요. 체코전 만루홈런이든, 오늘 친 투런홈런이든 어떤 장면이어도 좋아요”라고 농담을 던져 믹스트존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9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2026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C조 조별리그 최종전 대한민국과 호주의 경기. 호주를 꺾고 8강 진출을 확정한 한국 대표팀이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 야구대표팀은 11일 밤 WBC 조직위원회가 제공하는 전세기로 결선 라운드가 열리는 미국 마이애미로 이동했다. 모든 좌석이 비즈니스석 수준으로 개조된 특별 항공기다. 문보경은 이제 세계 최고의 타자들과 야구의 본고장 미국에서 자신의 신들린 타격 능력을 선보이게 된다.

문보경은 “어떤 팀과 만날지 모르지만, 세계 최고 선수들이 많으니까 좋은 투수들의 공을 쳐보고 싶고, 최고의 성적을 내고 싶기도 해요”라고 의욕을 보였다. 이어 보고싶은 MLB 스타가 있냐는 질문에 문보경은 “아니요. 특별히 없어요. 저는 (이)정후 형이랑 야구할 수 있어서 정말 행복해요. 정후 형이 한국에서 뛸 땐 다른 팀이었는데, 이제 같은 팀으로 뛸 수 있어요 좋아요. 저마이 존스나 셰이 위트컴 같은 한국계 메이저리거 선수들과 함께 뛰고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그저 행복합니다”라고 답하며 믹스트존을 빠져나갔다.

도쿄=남정훈 기자 ch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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