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이의 북적북적] 이세돌, 알파고 이후 10년의 성찰과 ‘나만의 수’ 찾기

김호이 기자 2026. 3. 10.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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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김호이 기자

[한국독서교육신문 김호이 기자] 2016년, 바둑 역사에 길이 남을 순간이 찾아왔다. 세계 최정상 바둑 기사 이세돌 9단이 인공지능 알파고와 맞붙은 순간이다. 인류 최초 1승을 거둔 그 대국은 단순한 승패의 문제를 넘어, 인간과 AI의 관계, 창의성과 판단의 의미를 근본적으로 다시 묻게 만들었다. 지난 11월 13일 DDP에서 열린 강연에서 이세돌은 알파고 대국 이후 바둑계와 사회 전반에 일어난 변화를 되돌아보며, 인간 고유의 영역과 불확실한 상황에서 살아가는 법에 대한 통찰을 전했다.

그는 "패배보다 충격적이었던 것은 인공지능 바둑이 더 자연스럽고 창의적으로 느껴졌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AI는 인간의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효율과 승률을 최우선으로 판단한다. 알파고의 등장 이후 바둑계는 격변을 겪었다. 하위 랭커와 상위 랭커의 실력 격차는 극적으로 벌어졌고, 규칙이 명확하고 한정적인 상황에서 AI는 인간을 압도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바둑계의 이야기가 아니다. 챗GPT를 비롯한 산업 전반의 AI 등장과 활용에서도 동일한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AI를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가 개인의 경쟁력과 역량을 가르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AI가 인간을 대체하는 것은 아니다. 이세돌은 강연에서 "정리되지 않은 정보는 혼란만 줄 뿐 가치가 없다"며,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역할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창의적으로 생각하고 질문하며, 소통하고, 혼자만의 시간을 통해 자신만의 통찰을 쌓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의 바둑 경력에서도 이러한 원칙은 명확하게 드러난다.

25년간 1,903전의 프로 경력을 통해 이세돌은 승패를 떠나 '나만의 수'를 찾는 과정을 삶의 나침반으로 삼았다. 그는 바둑에서 '수읽기'란 상대의 수를 해석하고 앞으로의 흐름을 예측해 최선의 수를 결정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스스로 선택하고 행동하는 법, 지나친 신중함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교훈, 적절한 순간에 결단을 내리는 법 등은 바둑판 위에서 터득한 지혜이지만,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그의 경험에서 특히 인상적인 순간은 LG배 세계 기왕전 결승이다. 연승을 거두며 '이세돌의 시대'를 예고했지만, 잡념과 불안에 휩싸이며 3국에서 역전패를 당했다. 이 패배는 멘탈 관리와 자기 통제의 중요성을 일깨워주었다. 그는 "환경이 완벽해야 몰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만들어내는 몰입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자신만의 기준선을 유지하고 집중력을 관리하는 것이야말로 변화를 극복하는 핵심이라는 것이다.

또한, 알파고와의 대국은 인간 창의성의 한계와 가능성을 동시에 보여주었다. AI는 승률이 높은 수를 두지만, 인간만이 바둑판 위에 '예술적 가치'를 부여할 수 있다. 이세돌은 "인공지능은 실력으로 인간을 압도할 수 있지만, 바둑의 본질을 창조해내는 힘은 인간에게 있다"며, 기술과 인간의 역할이 공존해야 함을 강조했다.

그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명확하다. 불확실한 시대일수록 자신만의 판단 기준을 세우고, 올바른 순간에 승부수를 던질 줄 아는 '자기 확신'이 필요하다. 신중함도 중요하지만, 행동하지 못하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반복된 훈련과 복기를 통해 얻은 자신감, 스스로 쌓아 올린 경험과 기준, 그리고 몰입할 수 있는 태도가 결국 최선의 결정을 가능하게 한다.

이세돌은 알파고와의 대국을 단순한 승패의 경험으로만 보지 않았다. 그것은 인간의 창의성과 결단, 몰입과 자기 믿음이 무엇인지 근본적으로 질문하게 만드는 사건이었다. 10년의 숙고 끝에 그는, 삶에서 중요한 것은 결과보다 '나만의 수'를 두고 그 과정에서 배우고 성장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DDP 강연을 통해 그는 이 메시지를 다시 한 번 강조하며, AI 시대에도 인간만의 통찰과 판단, 창의적 결정이 여전히 중요함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