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민주주의에 도움이 되는 도구인가

오세욱 선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2026. 3. 10.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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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와 저널리즘]

[미디어오늘 오세욱 선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중동 지역 긴장이 급격히 고조되며 두바이행 노선 등이 결항한 가운데 3월1일 인천공항에서 외국인들이 관련 뉴스를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촉발된 이란의 현 상황을 지켜보며, 국제 관계 전문가가 아닌 나는 여러 보도와 논평을 통해 정보를 습득하고 있다. 사안 자체에 대해 전문적인 평가를 내릴 위치는 아니지만, 일련의 사태를 지켜보며 한 가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된다. AI는 민주주의에 도움이 되는 도구인가? 흔히 비유하듯 과일 칼이 누구에겐 요리의 도구로, 누구에겐 흉기로 쓰이듯 모든 도구의 용처는 결국 사용하는 사람의 의도에 달려 있다.

저널리즘을 교과서적으로 정의하라고 하면, 이 분야에 약간의 전문성을 갖고 있는 입장에서 “민주주의 공동체 사회의 유지와 발전을 위하여, 서로 다른 목소리를 들려 주어 상호 대화를 촉진하고 이를 위해 권력에게 질문하는 역할”이라고 나름 설명해 오고 있다. 이 정의의 관점에서 볼 때, 현재 이란 상황은 저널리즘에 두 가지 중대한 시험대를 던지고 있다.

첫째, '물리적 통신 차단'에 따른 정보의 암흑이다. 인터넷이 차단된 이란에서 취재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고 정보는 철저히 제한된다.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 것 자체가 난제인 상황에서, 언론인과 활동가들은 처벌의 위험을 무릅쓰고 스타링크 위성 단말기를 비밀리에 이동시키거나 시그널 같은 암호화 앱, 상업용 위성 이미지 분석 등을 동원해 진실의 조각들을 외부로 실어 나르고 있다. 이란의 강화된 간첩법 아래 현장의 상황을 기록하려는 언론인, 활동가, 일반 시민들은 처벌의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제한을 우회하거나, 아니면 침묵해야 하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 3월6일 YTN 뉴스 '테헤란으로 날아온 미사일… 취재하던 이란 기자 '혼비백산'' 보도 갈무리

둘째, 물리적 통신 차단보다 더 위협적인 '심리적 정보 차단'이다. 통신이 차단되고 정보의 공백이 길어질수록, 언론은 자연스럽게 접근 가능한 정보원인 권력자의 목소리에 더 의존하게 된다. 전쟁 보도가 무고한 시민의 죽음보다는 권력자의 전략과 행보를 우선시하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권력자가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먼저 보도되고, 무고한 이들의 죽음은 언급되더라도 지나가는 수준에 그친다. 앞으로 며칠, 몇 주 동안 이란 등 다양한 국가의 무고한 시민들이 큰 고난을 겪게 될 때, 언론이 그들의 고통을 증언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언론이 소외된 이들의 고통을 증언하고 '서로 다른 목소리'를 들려줘야 하는 저널리즘의 본질적 역할은 바로 이 지점에서 가장 절실해진다.

두 가지 차단을 동시에 뚫어야 하는 이 상황에서 언론인들이 실제로 의존하고 있는 것이 바로 AI 기술이다. 그런데 이 기술은 '양날의 칼'이다. AI는 위성 이미지를 분석하고 제한된 영상에서 위치 정보를 추출하며, 물리적 접근이 불가능한 현장을 들여다보게 함으로써 민주주의를 돕는 '삶의 칼'이 된다. 하지만 동시에 동일한 기술이 대규모 감시와 통신 차단, 반대 세력 추적에 활용될 때 AI는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칼'이 된다. '삶의 칼'의 용처를 제한할 필요는 없겠지만, 그 반대 상황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제한할 필요가 있다. 이에 따라 우리는 '윤리적 금지선'을 묻지 않을 수 없다. 기술이 생사를 결정짓는 이 극한의 상황에서, 그 선을 긋는 주체는 누구여야 하는가.

앤트로픽은 자사 AI가 '대규모 감시'나 '완전 자율 무기'에 사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계약상 제한을 두려 하고 있다. 그런데 미국 국방부(펜타곤)는 이를 정부의 정책 수립 권한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하며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이는 '민간 기업의 도덕적 가치'와 '선출된 정부의 민주적 통제 및 국가 안보' 중 무엇이 우선인가라는 근본적인 철학적 충돌로 확산되고 있다. 선출된 정부가 민주적 절차를 통해 결정을 내렸다면 그것이 곧 민주주의적 통제라고 볼 수 있는가. 혹은 민간 기업이 스스로 윤리적 기준을 설정하고 이를 지키는 것이 민주주의를 더 잘 수호하는 방식인가. 쉽게 답할 수 없는 질문이다. 하지만 이란의 현실은 이 질문이 추상적 철학의 영역에 머물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누군가는 지금 이 순간에도, 어떤 기업 혹은 국가가 어떤 결정을 내렸는가에 따라 목숨이 달라질 수 있다.

▲ 3월2일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장관(왼쪽)과 댄 케인 미국 합동참모본부 의장이 워싱턴 D.C. 펜타곤에서 '에픽 퓨리 작전'에 대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flickr(미국 국방부)

칼이라는 도구를 다시 생각해본다. 우리가 누군가를 해칠 수 있는 칼의 판매를 전면적으로 막지 않는 이유는 삶에 더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판단이 성립하려면, 칼이 어떤 손에 쥐어지는지에 대한 최소한의 사회적 합의가 전제되어야 한다. AI도 마찬가지다. AI가 민주주의를 위한 도구가 되려면, 그것이 어떤 목적으로 어떤 조건에서 사용되는지에 대한 합의가 필요하다. 그 합의를 누가,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 이란 등의 현 상황을 지켜보면서 이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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