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도 일이다, 우리의 경력은 계속된다 [플랫]

지난 6일 서울 성동구청 1층 로비. 제각기 다른 이유로 구청을 찾은 방문객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늘어선 패널을 살펴보고 있었다. 중장년층 시민들이 작은 글씨로 적힌 인터뷰 내용을 읽으려 몸을 가까이 숙이거나 눈을 찌푸리며 집중하는 모습도 보였다. 아이를 데리고 구청을 방문한 한 여성이 “나는 아직 멀었다”며 일행과 대화하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성동구청이 3·8 세계 여성의 날을 기념해 6일과 7일 이틀간 구청 1층에서 연 ‘우리의 경력은 계속된다’ 전시회의 풍경이다.
성동구청은 돌봄경력보유여성(경력단절여성), 성동구청 청소노동자, 마을활동가, 필수노동자 등 여성이 다수 종사하지만 사회적으로 충분히 조명받지 못하는 일 이야기를 들어보기 위해 이번 전시회를 열었다.
명함처럼 구성된 전시 패널에는 ‘세 자녀 양육’, ‘두 자녀와 손녀 양육’ 같은 돌봄노동 경험이 ‘이력’처럼 자리잡았다. ‘자녀 돌봄 7년 경력’과 ‘외항사 근무 15년 경력’이 나란히 배치된 패널도 있었다. 양육과 돌봄을 공백이 아니라 경력으로 봐야 한다는 취지다. 이들은 대부분 출산과 육아기를 거친 뒤 노동시장으로 재진입했고, 청소나 요양보호 등 돌봄과 관련된 직업에 자리잡았다.

성동구청 미화원 정연화씨(66)도 아이 둘을 키우고 청소를 시작한 케이스다. 출근시간은 오전 5시지만 그는 오전 3시30분이면 출근한다. ‘정확하게 일하는 것이 좋아서’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구청 청소는 집에서 하는 청소와는 다르다. 업무에 숙련되어 있어야 하고 눈썰미도 좋아야 한다. 예를 들어 겨울에는 직원들이 제설을 하고 오기 때문에 계단과 바닥 청소를 더 신경써야 한다. 염화칼슘은 그냥 물로는 지워지지 않기 때문이다. 정씨는 “힘든 건 당연하지만 그래도 겁내지 않고 일한다”고 말했다. 일은 고단하지만 급여를 받는 데서 나오는 자부심, 업무에 따른 성취감과 보람이 크다. “아침에 청소해 놓고 사무실이 깨끗하면 기분 좋거든요. 인사해주면 더 좋고요. 열심히 일해서 생활비로 쓰고, 손주들 용돈도 주고.” 정씨의 말이다.

정씨처럼 여성 노동자들은 ‘전문가’로서의 직업의식을 갖추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10년 경력 가사관리사인 송수현씨(65)는 수납전문가 2급 자격증을 갖춘 정리정돈 전문가다. 본인만의 업무 루틴이 있고, 육체노동으로 발생할 수 있는 근골격계 질환을 예방하기 위해 운동도 꾸준히 하는 ‘갓생러’다. 10년차 재가요양보호사 박완규씨(73)는 “(어르신들이) 각각 아프신 것도 다르고 좋아하는 음식도 달라서 잘 맞춰야 하는데 10년째 일하니 요령이 생겼다”며 “우리 여자들 끄집어내서 사회에서 이렇게 일하게 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날 전시장을 찾은 박씨는 “‘재가’라는 말은 가정집을 직접 방문해서 도와드리는 걸 뜻하는데 요양보호사 시험 준비하고 일하기 전에는 써본 적도 없는 말이다”며 “돌보는 일도 중요하지만 단어를 사용하는 것에도 섬세해야 한다는 걸 이 일을 하고서야 알았다”고 말했다.
성동구청은 지역 여성노동자들에게 초점을 맞추고 여성의 날에 대해 알리기 위해 이 전시를 기획했다. 전시를 준비하고 구술 인터뷰를 진행한 이경은 성동구청 성평등가족과 주무관은 “중장년 여성들의 일자리인 돌봄노동은 사회적으로 굉장히 수요가 커지고 있는데 여전히 ‘보조 생계부양자’라는 이미지가 강하고 저임금 일자리로만 양산되고 있다”며 “이 자리에서 일하는 여성들이 얼마나 전문적이고 사명감이 있는지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인터뷰 시작 전에는 ‘저 같은 사람이 뭐 말할 게 있겠냐’던 사람들이 인터뷰가 끝나면 ‘제가 되게 대단한 사람이었네요’라는 식으로 말씀하시는 것이 인상적이었다”며 “사람들에게 이 분들의 삶을 보여주는 것만큼 이 분들 스스로가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노동에 대해 인지하는 과정이 의미있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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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을 찾으러 구청에 방문했다가 우연히 전시를 보게 됐다는 김예진씨(26)는 “사회초년생으로서는 잘 와닿지 않던 중년 여성들의 경력을 조명한 것을 보니 육아 경력 27년의 엄마가 생각났고, <우리가 명함이 없지 일은 안 했냐> 책을 읽은 것도 떠올랐다”며 “특히 외항사 15년 근무, 자녀 돌봄 7년 경력직이라고 적힌 패널을 보며 돌봄노동을 하나의 커리어로 짚어준 것 같아 마음이 찡했다”고 말했다. 한참을 패널 앞에 머무르던 황정군씨(66)는 “열심히 일하는 또래들이 많다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 최민서 인턴기자 minseo_0210@khan.kr
최민서 인턴기자 minseo_0210@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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