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다니는 마음은 결국 서로에게 닿을까”… 허민경, 흑연으로 그린 연결의 드로잉

제주방송 김지훈 2026. 3. 10.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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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전 ‘떠다니고 있어 : Floating’… 종이와 선으로 다시 묻는 경계와 공존
전시장 전경


벽에 붙은 종이들이 서로를 향해 조금씩 기울어 있습니다.

아직 완전히 닿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분명 서로를 향해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 사이를 흑연의 선이 지나갑니다.
경계를 긋기보다 떨어진 것들 사이에 조용히 길을 냅니다.

허민경의 드로잉은 바로 그 순간을 붙잡습니다.

서로 다른 존재들이 완전히 분리된 채 살아갈 수 있는지, 아니면 결국 어디선가 서로에게 닿게 되는지.

제주시 동문로 ‘새탕라움’에서 9일 시작한 개인전 ‘떠다니고 있어 : Floating’은 그 질문을 흑연의 선으로 천천히 펼쳐 보입니다.
제주자치도와 제주문화예술재단의 2026 제주문화예술지원사업으로 마련된 허민경의 여섯 번째 개인전입니다.

허민경은 종이와 흑연을 중심으로 관계와 경계의 감각을 탐구해 온 작가입니다.

화면을 하나의 완결된 덩어리로 밀어붙이기보다, 조각난 면들이 이어지고 어긋나는 과정을 통해 감정과 존재의 구조를 더듬는 작업을 이어 왔습니다.

허민경 作 'All an Illusion'


■ 세상을 나누는 습관

사람은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구분합니다.

좋은 것과 나쁜 것, 깨끗함과 더러움, 평화와 싸움.

그리고 결국 너와 나.

이 구분은 세계를 빠르게 설명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많은 것을 지나치게 쉽게 갈라놓습니다.

허민경의 작업은 그 익숙한 분류를 잠시 멈춰 세웁니다.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여 온 경계가 실제로도 그렇게 견고한지, 서로 다른 존재들이 정말 완전히 떨어진 채 남아 있는지 묻습니다.

허민경 作 '죽은 칼'


■ 흑연이 가진 의미

이번 전시의 드로잉 대부분은 흑연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흑연은 연필심의 재료이자 기록의 물질입니다.

무언가를 남기기 위해 오랫동안 사용돼 온 가장 오래된 도구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 물질로 선을 긋습니다.

종이 위에 쌓인 선들은 식물의 가지처럼 뻗어 나가고, 연기처럼 번지며 화면을 채웁니다.

어느 순간 나뭇가지처럼 보이고, 또 어떤 순간에는 구름이나 안개처럼 보입니다.

형태는 쉽게 고정되지 않습니다. 이미지는 계속 변합니다.

선들은 무엇을 단정하게 구획하기보다 서로 다른 형상 사이를 통과하며 화면 전체에 미묘한 긴장을 만듭니다.

허민경 作 '땅에서 피어오르는 연기와 구름'


■ 종이, 조각들

화면은 처음부터 닫혀 있지 않습니다.

작은 종이들이 이어지며 형상이 드러납니다.

각각의 면은 독립된 조각처럼 보이지만 맞닿는 순간 서로의 일부가 됩니다.

이 방식은 작가가 오래 붙잡아 온 질문과 맞닿아 있습니다.

서로 다른 존재들이 어떻게 함께 세계를 이루는가.

드로잉은 그 질문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다만 화면 위에서 보여 줍니다.

허민경 作 '하늘에서 떨어지는 미사일과 유성우'


■ 떠다니는 상태

전시 제목인 ‘Floating’은 바로 그 감각을 말합니다.

떠다니는 마음.

아직 굳지 않은 생각, 어느 쪽에도 완전히 닿지 않은 감정입니다.

사람의 마음은 종종 그 사이에 머뭅니다.
허민경은 그 상태를 드로잉으로 붙잡습니다.

흑연의 선은 경계를 단정하게 긋지 않습니다.

대신 서로 다른 형상 사이를 오가며 이미지를 이어 놓습니다.

번지고 이어지는 선들은 화면 전체를 하나의 흐름으로 만듭니다.

전시장 벽을 따라 종이들을 다시 바라봅니다.

흩어진 조각들이 맞닿으며 화면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 사이를 지나가는 선들은 무엇을 나누기보다 조용히 이어 붙입니다.

전시장 전경. (작가 제공)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문득 이런 생각이 남습니다.

세상이 점점 더 쉽게 갈라지는 시대에도 누군가는 여전히 선을 이어 붙이고 있었구나.

허민경의 드로잉은 바로 그 자리에서 시작됩니다.

멀어진 것들 사이에 다시 통로를 만들고, 떠다니던 마음들이 서로에게 닿을 가능성을 끝내 지워 버리지 않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아직 완전히 닿지 못한 채 떠다니는 존재들일지도 모릅니다.

종이 위에 남겨진 흑연의 선들은 서로 다른 형상 사이를 지나갑니다.

끊어진 것처럼 보이던 감각들이 그 선을 따라 다시 이어집니다.

그리고 그 선이 닿는 자리, 그토록 사무쳤던 마음이 마침내 서로를 알아봅니다.

허민경은 1995년 제주에서 태어나 드로잉을 중심으로 작업해 왔습니다.

종이와 흑연이라는 최소한의 재료로 감정과 관계의 결을 더듬는 작업을 이어 왔으며 개인전과 단체전을 통해 자신만의 조형 언어를 확장해 왔습니다.

전시는 21일까지 이어집니다.

평면 드로잉과 글, 소리 작업으로 구성됐고 전시 디자인에는 YWY STUDIO가 참여했습니다.
관람 시간은 낮 12시부터 오후 7시까지입니다.

JIBS 제주방송 김지훈 (jhkim@jibs.co.kr)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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