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단상] 텅 빈 운동장, ‘스포츠기본법’ 시대를 묻다

주말 아침, 한 초등학교 운동장을 지나던 적이 있다. 잘 정비된 잔디와 주변 시설이 무색하게 운동장은 텅 비어 있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나 공 튀기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대신 몇 블록 떨어진 체육관 앞에는 차들이 길게 줄지어 서 있었고, 안에서는 '선발전'이라는 이름의 경기가 한창이었다. 출전 명단에 이름이 오른 아이들만이 코트를 누볐고, 그렇지 못한 아이들은 관중석에서 경기를 지켜보거나 조용히 집으로 돌아갔다. 어떤 아이는 체육관 앞에서 잠시 멈춰 안을 들여다보다가,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임을 깨닫고 학원 쪽으로 걸어가기도 했다. 그 풍경은 우리 사회에서 스포츠가 어떻게 배분되고 있는지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그 순간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우리는 스포츠를 누구의 권리로 상상해 왔을까?'
최근 한국 사회에서 '스포츠기본권 감수성'이라는 말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스포츠기본권이란 "성별, 연령, 계층, 능력과 관계없이 누구나 안전하고 존엄하게 스포츠를 향유하며, 그 가치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사회적 감수성을 의미한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의 표현을 빌리면, 이는 "우리 사회가 스포츠를 어떤 문화자본으로 인정해 왔는가"의 문제다. 스포츠를 소수의 성취와 국가의 성과로만 인식하는 사회에서 다수의 몸은 자연스럽게 주변부로 밀려나고 '선발되지 않은 몸'은 보이지 않게 된다.
한국 사회의 스포츠 정책과 문화는 오랫동안 엘리트 체육 중심으로 설계돼 왔다. 국제대회 성적과 메달은 국가의 위상을 상징했고, 학교 스포츠는 교육에서 멀어진 '선발과 배제의 장'으로 기능해 왔다. 체육은 모든 학생의 성장 과정임에도 일부 학생을 가려내기 위한 통로가 되었다. 그 결과는 분명하다. 소수의 엘리트 선수에게 정책 자원이 집중되는 동안 다수의 유·청소년과 시민은 스포츠 경험에서 멀어졌다. 생활체육 참여율은 낮고, 스포츠는 '보는 것'이거나 '특별한 사람만 하는 것'으로 인식된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연령대별 생활체육 참여율은 역U자 구조를 보이며, 10대와 70대 이상에서 가장 낮게 나타난다. 인생의 출발점과 노년기에 스포츠 경험이 가장 취약하다는 뜻이다. 이는 건강 형평성과 직결된 사회적 지표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구조가 역설적으로 엘리트 체육 자체의 지속 가능성마저 위협하고 있다는 점이다. 참여 기반이 약한 사회에서 엘리트 선수 풀(pool)은 점점 좁아질 수밖에 없고, 스포츠 산업시장 역시 함께 위축된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다시 감수성의 문제를 생각해야 한다.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공적 영역이란 "사람들이 함께 등장하고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며 말하고 행동하는 공간"이라고 말했다. 스포츠 역시 그런 공적 영역이 될 수 있다. 함께 뛰고 규칙을 배우고 몸을 통해 관계를 맺는 경험은 민주적 삶의 중요한 토대다. 그러나 현재의 구조에서 스포츠는 '경쟁을 통한 선별 장치'이거나 '가진 자만이 누릴 수 있는 공간'으로 작동하고 있다. 그래서 "왜 아이들은 운동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은 충분하지 않다. 이보다 정확한 질문은 "왜 아이들이 운동할 수 없는 구조에 놓여 있는가"다. 접근 가능한 공간, 시간, 지도자 그리고 '뛰어놀아도 괜찮다'는 문화가 함께 갖춰져 있는지부터 점검해야 한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높은 우울감과 자살률', '기대수명과 건강수명 사이의 격차'라는 과제를 안고 있다. 규칙적인 스포츠 활동은 신체 건강뿐 아니라 사회적 관계망 형성과 정서적 안정에 기여한다는 점에서 이러한 지표를 개선하는 가장 현실적이고 예방적인 사회 투자다. 스포츠 참여 기반을 넓히는 일은 곧 '공중보건'과 '공동체 회복'을 위한 정책 전략이기도 하다.
'스포츠기본권 감수성'의 회복은 전환의 문제다. 첫째, 체육 정책이 엘리트뿐 아니라 시민의 일상도 품어야 한다. 특히, 유·청소년 시기의 폭넓은 스포츠 경험은 개인의 건강과 행복은 물론 장기적으로 엘리트 체육과 스포츠 산업의 기반을 확장하는 토대가 된다. 둘째, 학교와 지역사회에서 스포츠를 '선발'이 아닌 '참여'의 언어로 재구성해야 한다. 경쟁은 스포츠의 한 요소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조건이 되어서는 안 된다. 셋째, 스포츠를 국가 성과의 수단에서 '시민의 삶의 질을 구성하는 기본 요소'로 인식하는 문화적 전환이 필요하다. 스포츠는 일상을 살아가는 다수의 삶의 방식이어야 한다.
'스포츠기본권 감수성'이란 결국 이런 질문에 대한 사회적 합의다. 우리는 어떤 몸을 환영해 왔고, 어떤 몸을 배제해 왔는가. 텅 빈 운동장은 그저 우연이 아니다. 오랫동안 축적된 정책과 인식의 결과에 가깝다. 이제는 묻고 바꿔야 한다. 스포츠가 다시 모두의 일상이 될 수 있도록, 그래서 아이와 어른이 더 건강하고 더 행복한 사회가 될 수 있도록.
명왕성 한신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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