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로부터, 실패를 향해

전솔비 2026. 3. 10.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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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필레이션 앨범 《섬의 노래》가 남긴 것

“숲이 기르던 생물들이 잠시나마 숲을 지켰다. 그리고 이 숲에서 사람들은 숲을 구하며 자신을 구하고 있었다.”(윤여일, 『광장이 되는 시간』, 포도밭, 2019, 228쪽)

이것은 실패한 이야기인가?

몇 년 전 제주 구좌읍에 있는 비자림 자연휴양림에 방문했다. 안내판에는 ‘500년~800년생 비자나무 2,800여 그루가 밀집하여 자생되고’ 있다고 적혀있었다. 자생이라는 것은 저절로 자라난다는 뜻이지만, ‘자생되고’ 있다는 건 그것이 가능하도록 인간의 손길이 작동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곳은 보호의 경계 안에 속한 나무들에만 일시적 안전을 보장하는 장소였다.

▲ 비자림 자연휴양림에서 자생되고 있는 나무들 (사진-전솔비)

보호의 구간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는 삼나무들이 벌목되어 쓰러지고 있었다. 제주시 조천읍에 있는 비자림로는 2018년부터 확장공사가 시작되며 숲이 파괴된 장소이다. 활동가들의 노력으로 공사가 중단되기도 했지만 결국 재개하였고, 그간 발파 및 공사로 인해 생긴 소음과 진동이 파괴한 주변 생태계는 여전히 회복되지 않은 채 남아있다. 그곳을 지날 때마다 무언가를 지켜내는 데 실패한 이야기의 마지막 장면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다.

하지만 서울로 돌아와 거리와 광장에서 장애인 이동권 시위, 난민 인정 요구 시위, 재개발에 반대하는 여러 현장의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나는 다시 비자림에서 쓰러진 나무들을 떠올렸다. ‘누구나 자신이 머무를 곳을 결정할 수 있어야 하며 떠날 곳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외침은 곳곳에 있었다. 이동할 권리는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것 같지만 ‘정상성’, 민족주의, 신자유주의 등의 교차 속에서 누군가에겐 문을 열고 누군가에겐 벽을 세운다.

간혹 뜻밖의 사건이 그 벽에 구멍을 만들기도 했다. 2019년 비자림 공사를 잠시 중단시켰던 건, 인근에서 발견된 멸종위기종이자 천연기념물인 팔색조의 존재였다. 팔색조는 인간의 관점에서 특별한 ‘종’이었다. 보존할 만한 가치를 평가받아야만 그제야 파괴가 멈추는 생태운동의 딜레마를 향해, 누군가는 ‘왜 인간 권리와의 비교를 통해서만 비인간의 권리가 결정되는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비자림로 공사 중단을 알리는 기사 아래에 댓글로 등장하는 사람들의 외침 또한 이러한 무의식을 반영하고 있었다. “인간이 나무보다 못한 존재란 말인가. 인간으로서 비참하다.” 이 말은 개발 예정지에 쏟은 투자로 인해 손해를 본 투자자들의 입에서도 나왔지만, 인간 존재로서 아무런 보호받을 만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해서 살던 곳에서 쫓겨나야 하는 강제 이주자들의 목소리로도 등장했다.

이처럼 박탈의 현장들은 빼앗기는 존재들 사이의 갈등을 부추기는 식으로 흘러가곤 한다. 벌목된 그루터기의 상처만이 아니라, 반목했던 인간의 마음속에도 상처를 남긴다.

우리에게 남은 건, 상처뿐인 실패한 이야기일까. 그렇지 않다. 함께 상처를 목격했던 현장의 기억으로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기록 또한 쓰러진 삼나무 곁에 남아있다. 그것은 실패한 이야기로부터 실패에 관한 이야기를 만들며, 우리에게 ‘실패’란 과연 무엇인가를 다시 질문한다.

▲ 난개발로 파괴되는 제주의 자연을 소재로 한 노래들이 모여있는 컴필레이션 앨범 《섬의 노래》(서이다-예람-오재환-이형주 노래, 비스킷 사운드, 2019)

섬의 노래

2019년에 발매된 컴필레이션 앨범 《섬의 노래》에는 난개발로 파괴되는 제주의 자연을 소재로 한 노래들이 모여있다. 앨범에는 다음과 같은 곡들이 수록되어 있다. 〈나무의 키만큼의 뿌리가 땅 속에 있다〉(이형주), 〈새야 울어라〉(예람), 〈말하는 것들〉(오재환), 〈지나가는 숲〉(서이다), 〈사천삼백칠십구일과 하루 더〉(이형주), 〈나무〉(오재환 & 예람), 〈숲으로〉(예람).

난개발에 반대하는 투쟁 현장들이 노래의 배경이기에 제목에 언급된 새, 나무, 땅, 뿌리, 숲은 추상적 은유가 아닌 특정한 시공간의 구체적인 대상으로 등장한다. 이 앨범은 2019년 문화예술행동 ‘미디어로 행동하라 in 제주’에서 제2공항 건설 지역, 비자림로 확장 공사 지역, 기타 난개발 현장들을 방문하며 만들어졌다.

이 앨범에 담긴 곡들은 사라져간 현장의 냄새와 소리, 누군가의 말과 행동을 기록하며 특정 장면들을 노래 속에 남긴다. 훼손되는 숲에서 바라본 풍경에 관한 기억(지나가는 숲), 파괴되는 하나의 현장으로부터 또 다른 파괴의 현장으로 연결되는 마음(나무의 키만큼의 뿌리가 땅 속에 있다), 투쟁하고 갈등하며 깨지는 마음을 들여다보는 시간(말하는 것들), 제주뿐만 아니라 모든 소외된 현장과 투쟁 현장에서 오래도록 버티는 사람들의 시간(나무) 등. 현장에 가보지 않으면 볼 수 없을 장면들이 노래를 통해 상상되고 시각화된다.

《섬의 노래》에 수록된 노래들을 듣다 보면, 인간에 의해 파괴되는 자연 앞에서 수많은 감정을 느끼는 인간을 마주하게 된다. 이들은 말 없는 자연의 대변자, 목격자, 증인, 보호자가 되기 위해 그 숲에 갔지만, 사라지는 쪽에 함께 서는 일이 자신을 지키는 일이기도 한다는 걸 깨닫는다. 박탈됨으로 연결된 세계의 진실을 목격하고, 자신이 지켜야 할 가치가 무엇이었는지 어렴풋이 찾아가는 목소리들. 실패의 현장에서 목격한 풍경을 통해 자신이 잃어버린 것을 깨닫고 되찾아야 할 것을 보았다는 목소리는 역설적으로 이들이 결코 실패하지 않았음을 증언한다.

 

나무의 키만큼의 뿌리가 땅 속에 있다

나무의 키만큼의 뿌리가 땅 속에 있다고

키만큼의 뿌리가 여기에 남아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순간 난 시내로 달려나가

그 누구의 이익 때문에 집에서 쫓겨났던

사람들의 뿌리를 찾으러

그 누구의 욕심 때문에 집에서 쫓겨났던

모든 것의 뿌릴 찾으러

-〈나무의 키만큼의 뿌리가 땅 속에 있다〉(이형주) 노랫말 중에서

《섬의 노래》에서 이형주의 노래는 ‘나무의 키만큼의 뿌리가 땅 속에 있다’라고 반복해서 되뇐다. 그것은 땅 위에서 버티고 서있는 나무를 자르면 그 땅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인간에게 땅 밑에 존재하는, 깊고 긴 뿌리의 시간을 상상해 보라는 요청이다. 그리고 땅 속에 남아있는 나무의 뿌리를 감각하는 일은 곧 자신의 집에서 쫓겨난 수많은 박탈된 존재들을 이해하는 일과 연결될 수밖에 없다는 깨달음이다.

화자는 겉으로 보이는 것 이면에 보이지 않는 시간성과 그곳을 점유하는 삶이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도로를 확장하기 위해 나무를 자르고 그 땅을 차지하더라도, 그 아래에 존재했고 앞으로도 존재할 뿌리를 잊지 말라는 경고이다. 그것은 누군가를 밀어내는 힘으로 살기보다는 사라지는 쪽에서 그것의 파괴된 흔적에 남아있는 기억과 함께 머무르겠다는 결심으로 나아간다.

▲ 〈나무의 키만큼의 뿌리가 땅 속에 있다〉(이형주) 뮤직비디오 https://www.youtube.com/watch?v=wKPnUwkaYI0

이 노래의 뮤직비디오는 숲에서 노래를 부르며 만돌린을 연주하는 사람과 그 옆에서 기타를 치는 사람의 모습이 전부인 단순한 연출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파란 하늘이 보이고 초록빛 풀밭이 보이고 무성한 나무와 흔들리는 나뭇잎, 그 사이로 비추는 햇빛이 있다. 그리고 누군가는 이들이 밟고 있는 땅 아래에 존재하는 뿌리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종종 이 뮤직비디오에서 노래가 거의 끝나가는 후렴구 부분을 여러 번 반복해서 돌려보곤 한다.

“그 누구의 이익 때문에 집에서 쫓겨났던 사람들의 뿌리를 찾으러”

노래를 부르는 사람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는 이 지점에서 갑자기 한꺼번에 지저귀는 새소리가 끼어들고 강한 바람 소리가 마이크에 부딪힌다. 그리고 이들을 둘러싼 바람이 두 사람의 머리칼과 옷자락 그리고 카메라와 마이크를 한순간 뒤흔들어놓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사라진다. 너무나 인간 중심적 상상일지 모르겠지만, 나는 인간과 비인간 존재가 예술을 매개로 만나는 어떤 이상하고 아름다운 장면을 이 노래 안에서 목격했다고 느꼈다.

마법사 프리렌이 말했던가. 마법을 쓸 수 있는 능력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을 정확하게 상상하는 힘에 달려있다고(만화 〈장송의 프리렌〉). 이 마법 같은 장면 안에 감춰진 넓고 깊은 관계망을 상상하는 힘이 아마도 우리를 실패로부터 실패를 향해 나아가게 해주는 힘이 되지 않을까.

 

[필자 소개] 전솔비. 시각문화 연구자. 독립기획자. 정체성과 수행성의 문제를 연구하며 전시와 책을 만들어왔다. 동시대 현장에서 생산되는 이미지의 정치성과 예술적 실천을 탐구하며 예술가, 연구자, 활동가 동료들과 여러 협업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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