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밤’ 주문하는 피자… 도구 필요 없고 간단, 한국선 국밥·김밥 빠르게 한 끼 해결하는 음식[정주영이 만난 ‘세상의 식탁’]

최근 미국의 이란 공습과 함께 ‘펜타곤 피자 지수(Pentagon Pizza Index)’가 화제가 됐다. 국방부와 정보기관이 밀집한 워싱턴DC 인근에서 피자 배달 주문이 갑자기 늘어나면 국제 정세에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는 신호로 판단한다는 것이다. 공식적인 지표는 아니지만, 이 합리적 의심은 꽤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1991년 걸프전 직전 워싱턴 인근 피자 체인점의 주문량이 급증했다는 보도가 있었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긴장 국면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다시 등장했다.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회의와 야근, 그 곁에 쌓여 가는 피자 상자. 위기의 밤을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이 이야기가 흥미로운 이유는 간단하다. 세간에 알려진 뒤에도 국방부의 야근 메뉴가 여전히 피자였다는 사실이다. 햄버거나 중식, 초밥 같은 다른 선택지는 없었을까. 메뉴를 섞어 주문했다면 오히려 눈에 덜 띄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피자가 반복해서 등장한다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한 가지를 보여 준다. 위기의 밤에 사람은 결국 가장 단순한 음식을 찾는다는 것. 모두에게 익숙하고, 접시가 필요 없고, 한 손으로 집어 먹을 수 있는 음식이다.
18세기 영국 샌드위치 가문의 4대 백작 존 몬터규는 카드놀이를 멈추기 싫어 빵 사이에 고기를 끼워 먹었다고 전해진다. 정말 그랬는지는 논란이 있지만, 이 일화는 훗날 ‘샌드위치’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에 퍼졌다. 흥미로운 건 그 이름이 지금도 살아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 영국을 대표하는 샌드위치 체인 ‘프레타망제(Pret a Manger)’는 프랑스어로 ‘바로 먹을 준비가 된’이라는 뜻으로 런던에서 태어나 전 세계로 퍼진 브랜드다. 백작의 게으른 한 끼가 하나의 산업이 된 셈이다.
피자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세계인의 음식이 됐지만, 원래 나폴리 어부와 빈민들의 길거리 음식이었다. 안초비와 마늘, 올리브유를 도 위에 얹어 화덕에 구워 먹던 음식에서 출발했다. 일본 초밥 역시 다르지 않다. 틀에 눌러 만들던 기존 방식과 달리, 19세기 에도에선 손으로 밥을 쥐고 생선을 바로 얹는 니기리즈시(にぎりずし)가 노점 음식으로 퍼져 나갔다. 주문 즉시 빠르게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 최대 장점이었다.
‘패스트푸드’는 건강하지 않은 음식의 상징처럼 여겨지지만 샌드위치도, 피자도, 초밥도 그저 바쁜 사람들이 빠르게 먹기 위한 궁리에서 나온 음식이었다. 속도를 향한 인간의 욕구가 만들어 낸 진지한 발명품들이었던 것이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조선 후기 전국 장터를 떠돌던 보부상들이 빠르게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찾던 음식이 국밥이었다. 일종의 한국식 패스트푸드였다. 속도의 감각은 수백 년이 지난 지금도 이어져 외국인들이 한국 식당에서 종종 놀라곤 한다. 주문하고 먹고, 계산하고 나오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놀랄 만큼 빠르기 때문이다. 펄펄 끓는 국밥 앞에서도 식사 속도를 늦추지 않는 나라다.
속도의 음식은 식당 밖에서도 계속된다. 여행길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음식, 김밥이다. 이른 아침 기차를 타거나 공항으로 향할 때 이만큼 간편한 음식이 또 있을까. 손에 들고 먹기 좋고, 접시도 필요 없고, 한 끼 식사의 구조를 그대로 담고 있다. 어린 시절 소풍과 기차 여행의 기억에도 늘 같은 음식이 등장하는 건 우연이 아니다. 실제로 해외를 여행하다 보면 김밥이 그리울 때가 있다.

나라마다 간편식은 있지만, 균형 잡힌 한 끼를 한 줄에 담아 이동하면서도 깔끔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생각보다 드물다. 그 점에서 김밥은 한국식 간편식의 가장 완성된 형태인지도 모른다. 이런 속도의 음식 문화는 이제 일상 깊숙이 자리 잡았다. 편의점에서는 24시간 언제든 한 끼를 해결할 수 있고, 앱 하나면 음식이 한강공원까지 배달된다.
우리가 먹는 음식은 우리가 살아온 시간의 속도를 닮는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는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을 집어 들고, 밤늦게 배달 음식을 기다린다. 다만 배달 앱을 열어 기사님의 위치를 몇 번이나 새로 고침 하는 순간만큼은, 거창한 시대의 속도라기보다 그저 지금 당장 배가 고프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한양대 관광학과 겸임교수
전쟁은 간편식의 발전을 앞당겼다. 나폴레옹은 장거리 원정을 위한 식량 보존법을 공모했고, 그 결과 프랑스의 니콜라 아페르가 통조림을 개발했다. 세계대전을 거치며 건조식품, 분말수프, 즉석식품 기술이 뒤따랐다. 오늘날 편의점 간편식의 상당수는 사실 전쟁의 식탁에서 시작된 셈이다. 한국군 역시 비빔밥, 볶음밥, 불고기덮밥 등 한식 전투 식량을 개발해 보급하고 있다. 그 기술은 최근 동계올림픽에서도 활용됐다. 영하의 야외 경기장에서 선수들이 따뜻한 한식을 먹을 수 있었던 비결은 물만 부으면 스스로 가열되는 발열형 도시락 용기였다. 전기도, 조리 시설도 없는 전장에서 따뜻한 밥 한 끼를 해결하기 위해 개발된 기술이 이제는 올림픽 선수촌까지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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