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 리포트] "나는 1.5가구입니다"…혼자지만 완전히 혼자는 아닌 삶

정효림 기자 2026. 3. 10.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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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 의존형부터 코리빙까지, ‘혼자와 함께’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1.5가구’가 새로운 주거 방식으로 떠오르고 있다.

[우먼센스] 1인 가구의 독립성을 유지하면서 외로움과 생활비 부담을 덜어낼 수 있는 방식으로 '1.5 가구'로 불리는 주거 형태가 등장했다. 1.5가구는 1인 가구의 자율성에 타인과의 연결감(0.5)을 더한 생활 방식으로, 혼자 살지만 완전히 혼자이고 싶지는 않은 마음을 반영한 주거 트렌드다. 완전한 1인도, 2인도 아닌 필요에 따라 외부 사람들과 느슨하게 연결되는 것이 특징이다.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저서 <트렌드 코리아 2026>에서 이같은 주거 형태를 크게 세 유형으로 구분했다. 본가 근처에 살며 가족의 지원을 받는 '지원 의존형', 같은 공간에 살되 서로의 독립성을 유지하는 '독립 지향형', 코리빙하우스나 셰어하우스를 이용하는 '시설 활용형'이다. 각 주거 유형을 실제로 살아가고 있는 인물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①"퇴근 후 저녁만 먹고 갑니다"…부모 집 근처에 사는 '지원 의존형'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29세 직장인 A씨는 자취 4년 차다. 하지만 그의 주방은 자취방이라기보다 모델하우스에 가깝다. 가스레인지는 미관상 이유로 화이트 커버로 덮여 있고, 냉장고에는 레몬 주스와 버터, 케첩 등 간단한 조미료와 간식 정도만 들어 있다. 일반 가정집에 흔히 있는 쌀도, 밥솥도 없다. '뭘 먹고사는 걸까?' 하는 질문이 나올 법한 주방이지만, A씨는 먹고사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 퇴근 후 언제든 따뜻한 집밥을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A씨의 집은 본가에서 걸어서 10분 거리다. 코로나19 당시 재택근무가 늘어나면서 '홈오피스' 개념으로 첫 독립을 시작했다. 그는 약속이 있거나 바쁜 일정이 있는 날을 제외하면 평일 저녁이나 주말 아침 자연스럽게 부모님 집에 들른다. 본가에서 키우는 반려동물을 보고 싶을 때, 가족과 대화가 필요할 때면 언제든 걸어간다.

대량 구매가 일반적인 치약, 칫솔, 휴지 같은 생활용품은 물론, 혼자서는 잘 사 먹지 않는 과일이나 간식도 "가져가라"며 부모님이 챙겨준다. 계절마다 바꾸는 이불 역시 본가에서 들고 오면 된다. 

주변에서는 "자취 만족도가 최상이겠다"고 부러움의 눈길을 건넨다. 실제로 A씨는 혼자 사는 생활에 만족하는 편이다. 자신의 취향에 맞게 가구와 소품을 배치하고 생활 패턴도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내 공간을 직접 꾸려간다'는 감각이 즐겁다고 말한다. 

다만 그의 부모님은 가끔 "A씨가 집에 와서 장을 봐간다"며 "독립을 하긴 했는데, 너무 자주 온다"고 농담처럼 말한다. A씨처럼 부모 집 근처에서 독립 생활을 하며 필요할 때 가족의 도움을 받는 형태를 '지원 의존형' 1.5가구라고 한다.

② "평일엔 동거, 주말엔 각자"…함께 또 따로 '독립 지향형'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30대 B씨는 연인과 함께 원룸에서 살고 있다. 둘 다 직장이 본가에서 멀어 자연스럽게 동거를 시작했다. 출퇴근 거리를 고려한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두 사람은 같은 집에서 살지만 생활 패턴은 서로 다르다. 출퇴근 시간이 달라 기상·취침 시간도 엇갈린다. 먼저 잠든 사람을 깨우지 않기 위해 조심히 움직이고, 늦게 퇴근하는 날에는 이어폰을 끼고 영상을 보거나 불을 최소한으로 켜는 식으로 서로의 생활을 배려한다. 물론 가끔은 함께 저녁을 먹거나 OTT를 보며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같은 공간에 살면서도 서로의 생활 리듬을 존중하는 것이 두 사람 동거의 기본 원칙이다.

한편 금요일 저녁이 되면 B씨의 연인은 짐을 챙겨 본가로 향한다. B씨는 "원룸이 좁다 보니 애인이 주말에는 넓은 공간이 그립다며 집에 간다. 본가에는 개인 방도 있고 거실도 넓어서 편히 쉴 수 있다고 한다"고 말했다. 평일에는 함께 살지만, 주말에는 각자의 시간을 보내는 방식이다.

B씨는 그대로 원룸에 남아 휴식을 취하거나 친구들을 만난다. 두 사람은 주말에는 따로 데이트를 하지 않는 편이다. B씨는 "평일에 이미 같이 시간을 보내니까 굳이 주말에 또 데이트를 해야 한다는 생각은 안 든다"며 "동거라고 하면 늘 붙어 있어야 할 것 같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서로 편한 방식으로 살고 있다"고 말했다. B씨는 이런 생활을 "같이 살지만 각자 사는 느낌"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동거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개인의 생활 패턴과 취향을 존중하는 방식의 주거 형태는 '독립 지향형' 1.5가구에 해당한다. 

③"완전히 혼자는 아니고 싶을 때"…코리빙 '시설 활용형'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해외에 살다 한국에 정착하며 코리빙 주거 방식을 선택했다는 30대 직장인 C씨. 그는 방 자체를 함께 쓰는 룸셰어링부터 거실과 주방을 공유하는 셰어하우스, 개인 공간은 프라이빗하게 유지하면서 라운지와 커뮤니티 시설을 함께 이용하는 코리빙하우스까지 다양한 형태의 코리빙을 경험했다.

C씨가 코리빙을 선택한 이유는 '안전성'이었다. 그는 "한국에 처음 왔을 때 부동산 사기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런데 코리빙 하우스는 대부분 법인 임대 형태라 개인과 거래하는 다른 주거보다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느꼈다"고 설명했다. 풀옵션에 커뮤니티 시설까지 갖춰져 있다는 점도 장점으로 꼽았다.

코리빙이라고 해서 반드시 모든 공간을 공유하는 것은 아니다. C씨가 현재 살고 있는 곳은 개인 방과 화장실이 모두 독립된 구조다. 대신 건물 안에 마련된 라운지, 헬스장, 소형 영화관, 게임룸, 테라스 같은 커뮤니티 시설을 입주자들이 함께 이용한다.

코리빙의 장점은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 새로운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점이다. C씨가 이전에 살던 코리빙 공간에서는 토요일마다 브런치 모임, 저녁에는 와인 모임이 열리기도 했다. 그는 "모임을 통해 변호사, 회계사, 디자이너 등 평소 접점이 없는 다양한 직군의 사람들을 알게 됐다. 지금도 가끔 연락하면서 도움을 받기도 한다"고 말했다. 

연결감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들을 위해 정기적인 커뮤니티 이벤트를 여는 코리빙하우스도 많다. 플라워·DIY 공방 클래스, 공용 테라스에서 진행되는 필라테스와 요가 새벽 수련 같은 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C씨는 코리빙에 대해 "혼자 있고 싶지만 완전히 혼자이고 싶지는 않은 사람에게 맞는 주거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원룸에 살면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코리빙하우스에서는 라운지나 커뮤니티 시설에서 사람들을 자주 마주친다. '이런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혼자지만 덜 외로운 느낌이 든다"고 덧붙였다.

그는 내향적인 사람이라면 프라이버시가 강화된 시설을, 연결감을 중요하게 여기는 외향적인 사람이라면 커뮤니티 활동이 활발한 코리빙하우스를 선택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혼자'와 '함께' 사이의 새로운 균형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1인 가구는 이미 전체 가구의 주류가 됐다. 그러나 국가데이터처의 2025년 사회조사에 따르면 1인 가구 중 평소 외롭다고 응답한 비중은 절반에 가까운 48.9%에 달한다. 완전한 자유가 있지만 그 이면에는 고립과 외로움의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퇴근 후 부모 집에 들러 저녁을 먹는 A씨는 독립된 공간을 유지하면서도 가족과의 연결을 끊지 않는다. 평일에는 동거하지만 주말이면 각자의 공간으로 돌아가는 B씨 커플은 관계와 개인 생활 사이의 균형을 택했다. 코리빙하우스에서 생활하는 C씨는 완전히 혼자이기보다 함께 사는 공간 속에 머무르는 방식을 선택했다. 세 사람의 방식은 달랐지만 공통점은 분명하다. 혼자 살되, 완전히 고립되지는 않는 삶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독립적인 삶에 외부 자원을 적절히 더하거나 빼며 외로움과 부담을 줄이는 선택. '1.5가구'라는 주거 방식은 개인의 취향이라기보다, 자율성과 연결의 안정감 사이에서 자신만의 균형점을 찾으려는 새로운 주거 전략이다.

정효림 기자 jhlim@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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