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과 무의식 비밀 밝혀주는 뇌과학의 보배 ‘프로포폴’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2026. 3. 10.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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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기의 뇌과학 리포트] 대뇌피질 뒤쪽 ‘두정피질’이 전신마취 관여 연구 결과 나와

사람의 말과 생각, 감정과 행동은 뇌과학과 떼려야 뗄 수 없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은밀하게 우리를 움직이는 뇌. 강석기 칼럼니스트가 최신 연구와 일상 사례를 바탕으로 뇌가 만들어내는 마음의 비밀을 풀어준다.

프로포폴은 두정피질을 중심으로 한 신경 네트워크를 바꿔 의식 상태에서 무의식 상태로 넘어가게 만든다. 제미나이 생성 이미지
‘감정의 격동'을 쓴 철학자 마사 누스바움의 글을 읽고 "‘강단이 있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이지"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누스바움은 수면 마취를 하지 않고 대장내시경을 받아 검사 내내 온전한 정신으로 모니터를 통해 자신의 장 상태를 관찰했다고 한다. 얼마 전 몸에 이상을 느껴 내시경 검사를 받은 필자는 잠깐 "누스바움을 따라 해볼까"라고 생각했다가 용기가 나지 않아 그냥 수면마취를 했다. 아마 이때 쓴 마취제가 프로포폴이었을 것이다.

수면내시경 검사를 받을 때 깜빡 정신을 놓는 건 절반 정도 깨어 있는 '의식하 진정' 상태다. 프로포폴 용량을 늘리면 전신마취를 유도할 수 있다. 전신마취란 의식과 무의식 간 가역적 전환 과정이다. 즉 약물을 흡입하거나 투여받으면 의식을 잃었다가 약 주입이 멈추면 잠시 뒤 깨어난다. 이 과정에서 비가역적인 일이 발생한다면, 즉 깨어나지 못한다면 의료사고다. 전신마취 상태는 잠과 다르다. 흔들어도 깨지 않는다. 그래서 수면 연구 결과가 그대로 적용되지 않는다.

뇌 전체 아닌 '두정피질' 뇌파 바꿔

1995년 처음으로 프로포폴을 이용한 전신마취 관련 논문이 발표된 이래 지금까지 수많은 연구 결과가 나왔다. 기존 가설이 폐기되고 새로운 가설이 만들어져 입증됐다. 전신마취 초기 가설은 '젖은 담요 이론'이었다. 물이 담요에 스며들듯이 마취제가 뇌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쳐 마취 상태로 이끈다는 이론이다. 하지만 이후 뇌의 많은 영역이 마취 중에도 활동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전신마취는 뇌에서 의식 유지에 관여하는 영역만을 무력화하는 것이다.

이후 의식 유지와 관련된 뇌 부위는 대뇌피질이라는 가설이 주류로 떠올랐다. 그런데 대뇌피질 안에서도 어디가 중심이냐를 두고 의견이 갈렸다. 대뇌피질 앞쪽인 전두피질이라는 사람들과 대뇌피질 뒤쪽인 두정피질이라는 사람들로 나뉘었다.

얼핏 생각하면 뇌의 '지휘통제실'로 불리는 전두피질이 맞을 것 같지만, 뜻밖에도 프로포폴 실험 결과 두정피질이 의식 유지와 관련된 핵심 뇌 부위인 것으로 밝혀졌다. 전두피질이 주도하는 것은 보고나 실행 같은 의식의 '내용'이고, 의식의 '상태'에 주로 관여하는 건 두정피질이다. 프로포폴은 두정피질을 중심으로 한 신경 네트워크를 약화해 의식 상태에서 무의식 상태로 넘어가게 만든다.

최근 학술지 '셀 리포츠 의학'에 이를 입증하는 논문이 실렸다. 중국과 미국 연구자들이 프로포폴 전신마취가 유도하는 신경 네트워크의 변화를 뇌파에 따라 분석한 논문이었다. 뇌파는 뇌신경 사이에 신호가 전달될 때 발생하는 파동 형태 신호로, 진동수에 따라 5가지로 구분된다. 진동수가 작은 것부터 델타파, 세타파, 알파파, 베타파, 감마파 순서다. 의식이 있는 각성 상태일수록 후자 비중이 커진다.

연구자들은 피험자의 두피에 전극을 부착한 뒤 의식과 관련된 뇌 영역에 있는 128개 연결선에서 프로포폴 투약 전후 뇌파 변화를 분석했다. 그 결과 투약 후 전반적으로 델타파와 세타파의 세기가 커졌고 알파파, 베타파, 감마파는 줄었다. 특히 알파파 변화가 두드러졌다.

마이클 잭슨 사망 원인은 프로포폴

흥미롭게도 마취제 주입 후 알파파가 가장 뚜렷이 감소한 5개 연결선 모두가 두정피질이 관여한 것으로 드러났다. 구체적으로 두정피질-후두피질, 두정피질-시상, 두정피질-담핵, 두정피질-대상회, 두정피질-측두피질이다. 반면 전두피질 관련 연결설은 알파파 비중이 비슷하거나 오히려 살짝 늘어났다. 이 연구 결과는 의식 상태 변화 배경에 두정피질 네트워크 변화가 있음을 알려준다.

이번 연구는 또 대뇌피질만이 의식 상태 변화에 관여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밝혔다. 대뇌피질보다 더 원시적인 뇌로 알려진 피질하 영역에 있는 시상과 담핵 등과의 상호작용도 중요하다는 점을 보여준 것이다. 또한 두정피질을 중심으로 한 네트워크의 알파파 변화가 마취 과정에서 바이오 마커로 쓰일 수 있음을 시사했다. 전신마취 과정에서 뇌 네트워크의 알파파를 측정해 패턴 변화가 나타날 경우 마취제 주입량을 조절하는 시스템을 개발한다면 부작용이나 의료사고 발생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프로포폴을 잘못 쓰면 사망할 수도 있다. 2009년 팝의 제왕 마이클 잭슨도 프로포폴 과다 투여로 51세에 세상을 떠났다. 프로포폴을 투약하면 황홀감을 느낄 수 있어 유명인이 상습적으로 쓰다가 발각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일반인에게 프로포폴은 마취제보다 먀약이라는 부정적 인식이 강하다. 하지만 용도에 맞게 사용하면 프로포폴은 마취 유도 및 회복 속도가 빠르고 부작용이 적은 약물로서 우리 의식과 무의식의 비밀까지 밝혀주는 뇌과학의 보배가 될 수 있다. 

강석기 칼럼니스트는… 서울대 화학과 및 동대학원에서 공부했다. LG생활건강연구소 연구원, 동아사이언스 기자를 거쳐 2012년부터 과학칼럼니스트이자 프리랜서 작가(대표 저서 '식물은 어떻게 작물이 되었나')로 활동하고 있다.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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