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 안 익고 꽃은 시든다”… 기름값 폭등에 한숨 짓는 농·어민들 [르포]
날 추우면 딸기 생육 더뎌
수정위해 보일러 가동해야
화훼업계도 유가폭등 유탄
“하루종일 난방에 막막해”
상인들 스태그플레이션 우려
어민들 “안 나가는게 낫다”

“기름값은 하루가 멀다하고 치솟는데 딸기 사러 오는 손님은 뚝 끊겼어요. 농가야말로 더이상 버티기 어렵습니다.”
9일 오전 경기 남양주 조안면의 한 비닐하우스. 비닐하우스 문을 열자 드럼통을 가로로 눕혀놓은 모양의 온풍기가 쉴 새 없이 돌아가며 공기를 데우고 있었다. 500평 (약 1650㎡)규모의 딸기체험 농장을 운영하고 있는 김효준(58) 씨는 “월 100만 원 들었던 난방비가 최근 150만 원까지 올랐다”며 “온도가 조금만 낮아져도 상품성이 떨어지는 딸기 재배라 여간 힘든 게 아니다”라고 토로했다. 실제 김 씨가 가리킨 농장 곳곳엔 생육이 더뎌 초록빛을 띤 딸기가 매달려 있었다.
미국과 이란의 전쟁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면서 국내 기름값이 연일 고공 행진을 하는 가운데 휘발유·경유뿐 아니라 하우스 농업이나 화훼 농가 등에 사용되는 실내 등유까지 폭등해 농어업 종사자들이 직접적인 타격을 입고 있다.
한국석유공사의 유가 정보 시스템 오피넷에 따르면 이달 8일 기준 국내 주유소 평균 실내 등유 판매 가격은 ℓ당 1534.25원으로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격한 날인 지난달 28일(1313.88원) 대비 220.37원 상승했다. 같은 기간 보통 휘발유와 자동차용 경유도 각각 202.43원, 319.87원 올랐다.

이날 딸기농장 비닐하우스 내부 온도계는 등유 보일러 덕분에 21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딸기는 낮 20도, 밤 8~10도인 딸기의 생육 적정온도를 벗어나면 수정이 제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김 씨가 매일 등유를 열풍기에 주유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김 씨가 고개를 돌린 방향엔 딸기꽃 사이를 오가는 호박벌들이 보였다. 김 씨는 “딸기 수정에 필요한 호박벌을 빌려왔다”며 “낮은 온도에선 호박벌의 활동량이 50%로 감소해 등유가 비싸도 울며 겨자먹기로 밤새 열풍기를 가동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보온커튼이나 수막시설을 설치하면 난방비를 줄일 수 있지만, 수십 년간 농장을 운영해 온 이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김 씨는 “스마트팜을 창업하려는 청년들은 비교적 정부 지원을 받기 수월하다”며 “우리처럼 오랫동안 비닐하우스 농장 재배를 해온 사람들은 정부 지원을 받기 어려워 설비 재투자는 꿈도 못 꾼다”고 말했다.

농가와 마찬가지로 실내 온도 유지가 중요한 화훼업계도 이번 중동발 유가 폭등 유탄을 피해가지 못했다. 9일 방문한 경기 용인시 처인구 남사읍의 한 화훼센터에서 만난 안 모 씨는 서울경제신문에 “체감상 기름 가격이 지난해보다 못해도 20~30%는 오른 것 같다”며 “매일 오후 3시부터 다음 날 해 뜰 때까지, 오늘처럼 추운 날에는 하루종일 난방을 해야 하는데 솔직히 요즘엔 막막하다”고 토로했다.
꽃샘추위가 찾아온 이날 아침 온도는 -1도까지 내려갔지만 화훼센터는 꽃이 시들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일정한 온도(18~19도)로 유지되고 있었다. 두꺼운 외투를 입고 화훼센터를 찾은 손님들은 어느새 외투를 카트에 넣고 얇은 옷차림으로 꽃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안 씨에 따르면 지난해까지만 하더라도 700~800만 원에 그치던 한 달 난방비가 최근에는 1000만 원까지 치솟았다.

문제는 기름값 상승에 따른 스태그플레이션(고물가 속 경기 침체)에 있다는 설명이다. 안 씨는 “최근 불경기로 손님이 많지는 않다. 꽃값은 내리면 내렸지 오르진 않는다”며 “문제는 난방비뿐만 아니라 꽃을 이곳(화훼센터)으로 가져오는 운송비, 인건비 등이 줄줄이 오르면서 수익보다 고정 유지비가 더 많이 들어간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화훼센터도 마찬가지다. 남사읍에서 10여년 간 화훼센터를 운영했다는 이 모 씨도 “요즘 기름 가격 때문에 난리”라며 “원래 (기름을) 500만 원 구매하면 난방을 한 달은 땠는데, 최근에는 한 달도 안 돼 또 기름을 넣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대부분의 화훼센터가 비닐하우스로 돼있어 난방을 안 때면 춥다”며 “꽃값은 올릴 수도 없고, 난방 안 때면 다 시들어버리는데 기름값도 오르니 이도 저도 못하는 꼴”이라고 말했다.
경기 구리시 사노동에서 30년째 관엽식물 및 생화를 판매하는 60대 이 모 씨도 “도매상에서 나무를 사오는데, 등유 가격이 올라 나무값도 올랐다”며 “경기가 어려워 꽃 소비도 줄어들어 판매 가격을 올리기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2년 전에 비하면 매출이 50%로 줄었다”며 “매출이 급감해 세금도 줄어드니 세무서에선 의심스럽다고 전화가 올 정도”라는 게 이 씨의 설명이다.

농민뿐 아니라 어민들의 시름 또한 깊어져가고 있다. 이날 인천 남동구 소래포구항에서는 ‘서비스를 달라’는 손님의 요구에 상인들이 “우리도 기름값이 올라서 남는 게 없다”고 난색을 표하는 장면들이 포착되기도 했다.
인천 남동구 소래포구 수산시장에서 만난 어민 이 모 씨(62)는 유가 폭등에 대한 불안감을 숨기지 않았다. 상품 가격을 올릴 경우 그나마 유지되던 방문객의 발길마저 끊길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이 씨는 “가뜩이나 물건 품질과 양이 좋지 않아 장사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실제로 어민들이 사용하는 면세유 가격은 이미 상승세로 돌아섰다. 경북 영덕 어민 하 모 씨는 “지난달 1드럼(200리터)당 16만 7000원 선이었던 수협 면세 경유 가격이 3월 들어 18만 원으로 1만 3000원이나 올랐다는 문자를 받았다”며 “기름을 많이 쓰는 큰 배들은 이번 인상에 매우 민감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어업 현장에서는 이 같은 상승세가 더욱 가팔라진다면 특히 대형 선박부터 조업이 중단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한다. 조업 시간이 짧은 소형 어선과 달리 대형 선박은 일주일에 많게는 수천 리터 용량의 경유를 소모하며 작업을 이어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중단이 현실화될 경우 선주뿐 아니라 어업 종사자들의 소득 전반이 타격을 받게 된다. 하 씨는 “기름값이 일정 수준 이상 크게 오르면 ‘채낚기’ 식으로 오징어를 잡는 대형 어선들은 아예 조업을 중단한다”며 “아무리 잡아도 단가가 맞지 않아 선주가 손해를 보는 구조가 되면 선원들도 배를 세우고 쉴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수산물 유통 단계에서도 경영난에 대한 우려가 제기된다. 대형 납품처와 계약을 통해 장기간 공급 단가를 약정해둔 업체들은 갑작스런 유류비 상승이 수익성 악화로 직결된다. 한 수산물 중간유통업자는 “기름값이 오르면 그물 등 어업 장비 가격도 동반 상승해 결국 전체적인 수산물 시세가 오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양지혜 기자 hoje@sedaily.com황동건 기자 brassgun@sedaily.com남소정 기자 nsj@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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