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운은 다른 색을 이기려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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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먼센스] 우리는 너무 오래 '차려입는 피로' 속에 살았다. 시선을 강탈하는 형광색, 비명을 지르는 로고들. 그 소란스러운 시대의 끝에서 패션이 다시 도착한 곳은 의외로 조용하다. 브라운이다.
이번 시즌 유달리 사랑받는 이 색을 나는 '모던 초콜릿(Modern Chocolate)'이라 부른다. 힘을 꽉 준 완벽한 갈색이 아니라, 입 안에서 천천히 녹아내리는 가나슈처럼 부드럽게 흐르는 농도. 몸의 선을 따라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브라운 말이다.


요즘 런웨이에서 가장 눈에 띄는 장면은 브라운의 톤 플레이다. 짙은 에스프레소 브라운 코트 위에 카라멜 톤 니트를 겹치고, 코코아빛 가죽 백을 더한다. 서로 다른 브라운이 만나면 단조로움 대신 깊이가 생긴다. 블랙이 만드는 긴장감과는 다른, 훨씬 부드럽고 여유 있는 존재감이다.


하지만 진짜 흥미로운 장면은 런웨이가 아니라 거리에서 발견된다. 파파라치 컷 속 무심한 스타일링. 잘 길들여진 초콜릿색 빈티지 레더 재킷에 물 빠진 데님, 낡은 스니커즈 하나. 그 조합이 멋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오늘 좀 꾸몄다는 티가 전혀 나지 않기 때문이다.


브라운은 블랙보다 다정하고 화이트보다 깊다. 옷이 사람을 압도하지 않는다. 대신 그 사람의 분위기를 조용히 끌어올린다. 그래서 지금 가장 세련된 스타일링은 의외로 단순하다. 검정을 고집하던 자리에 브라운을 대신 놓는 것. 그 순간 룩의 온도가 달라진다.
초콜릿 브라운은 의외로 사교적인 색이다. 올리브와 그린과 만나면 가장 아름답지만, 사실 그 외에는 거의 모든 색과 잘 어울린다. 브라운은 다른 색을 이기려 하지 않는다. 대신 그 색을 더 깊게 만든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조합은 올리브와 그린의 변주다. 다크 초콜릿색 코트 아래로 슬쩍 보이는 이끼빛 올리브 니트, 채도를 낮춘 포레스트 그린 팬츠. 대지를 닮은 이 색들의 만남은 억지로 꾸미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세련된다.


브라운의 또 다른 매력은 소재에서 드러난다. 캐시미어 니트는 밀크 초콜릿처럼 부드럽게 흐르고, 가죽 재킷은 다크 초콜릿처럼 단단한 광택을 낸다. 같은 색이라도 소재가 달라지면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그래서 브라운은 지금 가장 입체적인 색이다.
결국 패션은 덜어내는 작업이다. 모던 초콜릿은 무언가를 더 채우려 애쓰지 않는다. 소재의 결, 빛의 농도, 그리고 움직임에 따라 달라지는 그림자면 충분하다. 묵직하지만 가볍고, 단순하지만 지루하지 않은 색. 패션이 지금 초콜릿을 선택한 이유는 단순하다. 달콤해서가 아니라 깊기 때문이다.
그리고 스타일은 결국, 깊이에서 나온다.
모던 초콜릿. 이름부터 이미 스타일이다.


하은정 기자 haha@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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