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유가 한때 110달러 돌파에... 아시아 증시 휩쓴 '검은 월요일'

손성원 2026. 3. 10.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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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7월 이후 처음으로 WTI 100달러 돌파
코스피, 서킷브레이커... 닛케이, 역대 세 번째 하락
카타르, 쿠웨이트 이어 바레인도 '불가항력' 선언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에 따른 중동 정세 불안 여파로 국제 유가의 기준점 역할을 하는 브렌트유와 서부텍사스산원유(WTI)가 모두 배럴당 100달러를 넘긴 9일 서울 영등포구 한국거래소 전광판에 WTI, 두바이유 선물 가격이 표시되고 있다. 뉴시스

미국·이란 전쟁으로 국제 유가가 9일 '심리적 저항선'인 배럴당 100달러(약 14만8,000원)를 넘어 한때 110달러까지 돌파했다. 유가가 급등하자 원유 수입 의존도가 높은 한국과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증시는 이날 '검은 월요일'(월요일 증시 폭락)을 맞았다. 분쟁이 장기화할 것으로 보이면서 유가 급등세는 당분간 불가피할 것으로 관측된다.


WTI, 1988년 이후 일일 최대 상승 기록

한국시간 이날 오전 7시 30분쯤 미국 뉴욕상품거래소(NYMEX)에서 4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 가격은 배럴당 107.54달러를 기록했다. WTI 가격이 100달러를 넘어선 것은 2022년 7월 이후 처음이다. WTI는 한때 약 30% 폭등한 116.45달러대까지 치솟았다. 이는 1988년 이후 일일 최대 상승 폭이라고 블룸버그통신은 지적했다. 브렌트유는 같은 시간 아시아 거래에서 배럴당 116.71달러로 거래되며 지난주 대비 24% 급등했다.

유가 급등으로 원유 수입 의존도가 높은 한국과 일본 등 아시아 주요 증시는 이날 일제히 급락했다. 이날 코스피 지수는 전 거래일 대비 5.96% 떨어진 5,251.87로 마감했다. 코스닥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4.54% 하락한 1,102.28로 마쳤다.

코스피 급락세가 커지면서 이날 오전 10시 31분쯤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되며 모든 종목의 매매 거래가 20분간 일시 중단되기도 했다. 코스닥에서도 같은 시간 매도 사이드카(프로그램매도호가 일시효력정지)가 발동됐다. 일본 닛케이225 평균주가(닛케이지수)는 이날 전 거래일 대비 2,892.12포인트 떨어진 5만2,728.72에 장을 마감했다. 장중 한때 4,200포인트 이상 급락하며 5만2,000선이 붕괴됐다. 역대 3번째 하락 폭을 기록했다.

7일 중국 산둥성 칭다오 항구 내 석유 터미널에서 원유 운반선이 부두로 안내되고 있다. 칭다오=AFP 연합뉴스

이 같은 유가 급등 및 시장 혼란은 이란이 호르무즈해협 봉쇄를 이어가면서 중동 산유국의 원유 감산이 본격화했기 때문이다. 호르무즈해협은 핵심 에너지 수송로로, 전 세계 석유·액화천연가스(LNG) 공급의 약 25%가 이곳을 통과한다. 블룸버그는 8일 기준으로 24시간 내 이란 관련 유조선들과 전날 중국 소유 벌크선 두 척만 호르무즈해협을 지나갔다고 집계했다. 데이터 제공업체 크플러에 따르면 해협을 통한 유조선 통행량은 지난달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이후 일주일 만에 90% 감소했다.


"원유가 2022년 최고치 넘을 것"

아울러 주요 인프라에 대한 공격으로 산유국들의 생산 중단도 이어지고 있다. 이날 바레인 국영 석유회사 밥코에너지는 "이란의 공격으로 정유소에 화재가 발생했다"며 '불가항력'을 선언했다. 불가항력 조항은 전쟁과 자연재해 등 통제불능한 이변이 발생하면 계약상 의무를 불이행해도 책임을 면제하거나 이행을 미뤄주는 장치다. 앞서 쿠웨이트 국영석유공사(KPC)도 7일 아라비아만에서 원유를 운송할 선박이 사실상 전무하다며 불가항력을 선언, 석유 생산을 감축하기로 했다. 세계 2위 LNG 수출국인 카타르도 이란의 무인기(드론) 공격으로 최대 LNG 생산기지가 피격된 뒤 4일 불가항력을 선언했다.

이란 미사일 공격으로 바레인 동부 시트라섬에 위치한 국영 정유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한 후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시트라=로이터 연합뉴스

이라크의 경우 원유 생산 중심지인 남부 유전에서 생산되는 원유량이 하루 130만 배럴로 미국·이란 전쟁 이전 대비 3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든 것으로 전해졌다. 하루 수출량도 지난달 333만 배럴 수준이 이날 80만 배럴로 급감했다. 호르무즈해협 통행 불가능으로 유조선 중 단 두 척만 선적이 가능한 탓이다. 이라크는 현지시간으로 9일 오후 8시쯤 수출이 완전히 중단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JP모건 체이스의 애널리스트 나타샤 카네바는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문자로 기록된 모든 역사에서 단 한 번도 호르무즈해협이 봉쇄된 적이 없었다"며 "최악의 시나리오일 뿐 아니라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시나리오가 현실화했다"고 말했다.

산유국의 주요 에너지 기간 시설들이 직접 타격받으면서 향후 유가 급등세가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JP모건은 분쟁 확산 시 유가가 배럴당 120달러를 넘어설 수 있다고 내다봤다. 골드만삭스도 원유 흐름이 정상화되지 않을 경우 유가가 이달 말에는 배럴당 150달러까지 상승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이달 내내 해협 흐름이 정체되면, 원유 가격이 금융위기 당시인 2008년(140달러)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된 2022년(130달러)의 사상 최고치를 모두 넘어설 것"으로 지적했다. 이와 관련 이란의 군사 작전을 총괄하는 카탐 알 안비야 본부사령부 대변인은 "만약 우리가 석유 인프라 시설 공격에 나서면 유가는 배럴당 200달러까지 치솟을 것"이라고 으름장을 놨다.

손성원 기자 sohns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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