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를 지운 이정후 “정말 많은 행운이 있었다”

순간 “죽을 것 같았다”고 했다. 하지만 우익수로 자리를 옮긴 이정후(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가 공을 낚아채고 있었다. 공이 빠졌다면 한국의 17년 만의 세계야구클래식(WBC) 8강 진출은 물거품이 되는 것이었다. 류지현 감독은 경기 뒤 당시를 회상하면서 다시 한 번 가슴을 쓸어내렸다. 류 감독은 “그 상황에서 공을 잡으려 한다는 게 쉽지 않다. 그런 결정을 한다는 것 자체가 정말 대단하다”고 했다.
한국 야구는 류지현 감독의 지휘 아래 2009년(준우승) 이후 처음으로 WBC 미국행을 결정지었다. 극적인 경기였다. 한국은 8강 진출을 위해 반드시 호주에 2점 이하의 점수를 주고 5점 차 이상의 승리를 거둬야 했다.
하지만, 한국이 5점 차이를 만들면 호주가 쫓아왔고, 다시 1점을 내 도망가면 호주가 따라왔다. 마치 꼬리잡기 같았다. 9회까지 이런 상황이 이어졌다. 호주가 8회말 1점을 따라와서 6-2가 되자 한국은 9회초 상대 실책과 안현민의 희생 뜬공으로 다시 7-2를 만들었다.
마운드에는 조병현(SSG 랜더스)이 계속 공을 던졌다. 에스에스지(SSG) 마무리 투수인 그는 1이닝 이상을 투구하고 있었다. 9회말 1사 1루에서 윈그로브가 친 공은 우중간을 가로질러 날아갔다. 하지만 이정후가 전력질주해서 잡아냈다. 2아웃. 이후 내야 뜬공이 나오면서 한국은 어려운 ‘경우의 수’를 완성했다.
8강행이 확정된 뒤 눈시울을 붉히기도 한 이정후는 “공이 날아올 때부터 무조건 잡겠다고 생각했다. 공이 약간 조명에 들어갔는데 그 역시 행운이 따른 것 같다”고 했다. 이정후는 거듭 ‘운’을 강조했다. 온 우주의 운을 모으기 위해 네잎 클로버 목걸이까지 하고 경기에 임한 그였다.
이정후는 “일본이 (호주를 이겨서) 우리에게 기회를 줬고 또 다른 행운은 우리가 (오늘) 초 공격을 했다는 것이다. 초 공격을 했기 때문에 한 번 더 공격할 수 있었다. 말 공격이었다면 (이기고 있어서) 8회까지밖에 공격하지 못 하기 때문에 이런 상황이 오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정말 많은 행운이 있던 것 같다. 코치진, 대표팀 스태프 그리고 국내외에서 응원 많이 해주신 분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우리의 승리를 바라다보니까 정말 많은 행운들이 우리에게 온 것 같다”고 했다.
사실 이정후는 한국 야구의 암흑기와 함께했었다. 2020 도쿄올림픽(2021년 개최)의 좌절을 맛봤고, 2023 세계야구클래식 조별리그 탈락도 경험했다. 그래서 국제 대회 ‘성취’가 더 간절하기도 했다. 이정후는 9회초 자신의 내야 땅볼 때 호주 내야수의 실책을 돌아보면서 “정말 찰나의 순간인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한국 야구)참사의 주역일 수 있어도 왕조의 주역인 (류)현진이 선배도 계셨고 또 밑에 후배들은 새로운 왕조를 써내려갈 수 있는 선수들이기 때문에 그 기운이 더 강했던 게 아닐까 싶다 “고 했다.
이정후는 이제 아버지(이종범)에게 말로만 듣던, 가장 먼 거리(일본-미국 마이애미)를 전세기를 타고 이동한다. 이정후는 “다 같이 전세기를 타고 (미국으로) 가는 것이 너무 행복하다. 비행시간이 긴 것이 처음이라서 설레고 대표팀 선수들이 이번 기회에 메이저리그 선수들 시스템을 누리게 되는 것도 정말 좋은 것 같다”고 했다. 8강전(14일 오전 7시30분)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우리가 만난 팀들도 정말 강한 팀들이었지만 (8강에서는) 더 강한 팀을 만난다.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캡틴’ 이정후가 날아올랐다. 덩달아 한국 야구에 한동안 드리웠던 그림자도 사라졌다.
한편, 야구 대표팀은 휴식을 취한 뒤 10일 자정 즈음 일본 하네다 공항에서 미국 마이애미까지 직항 전세기로 이동한다. 일본은 10일 저녁 체코전을 마친 뒤 출정식을 하고 다음날 새벽 이동한다.
도쿄/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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