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원전 사고 15년…세계최대 원전 가시와자키 재가동에 무슨 일이?

“바다를 더럽히지 마라∼ 물에 흘려보내지 마라∼ 나는 부끄럽다.”
지난 6일 늦은 저녁. 일본 도쿄 지요다구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 관저 앞 도로에서 구슬픈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시민단체 ‘가시와자키·가리와 원전을 재가동하지 마라 항의행동’의 집회에 참석한 30여명이 “미래를 빼앗지 마라, 나는 부끄럽다 나의 고향인데, 나는 부끄럽다”며 목소리를 더하면서 울림은 더욱 커졌다. 옷 앞섶에 마이크를 꽂고 통기타를 든 채 노래하던 시민은 “후쿠시마 사고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잊어서도, 용서해서도, 반복해서도 안 된다”고 호소했다. 이들의 손팻말에는 “우리에겐 원전이 필요 없다”, “핵 쓰레기를 버릴 곳은 없다”고 적힌 일본어 문구뿐 아니라 ‘탈원전’이라고 쓴 한국말도 눈길을 끌었다.
특히 이들은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여파로 멈춰 섰던 세계 최대 규모 가시와자키·가리와 원전(가시와 원전)의 재가동 추진을 성토했다. 도자기 굽는 일을 한다고 소개한 한 시민은 “오는 11일이면 도쿄전력의 후쿠시마 제1원전이 폭발한 지 15년이 되지만 그때 소아 갑상선 피해를 당한 6∼16살 아이들 수백명이 여전히 수술과 재발을 반복하고 있다”며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 가시와 원전 재가동을 지금이라도 멈춰야 한다”고 비판했다.

11일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난 지 15년이 된다. 당시 미야기현 동쪽 130㎞ 지점에서 시작된 규모 9.0 지진으로 사망자 1만5900여명, 실종자 2500여명 등 1만8500명이 희생됐다. 일본 역대 최대급 지진과 함께 일본 사회를 근본적으로 흔든 건 쓰나미(지진 해일) 여파로 후쿠시마 원전 일부가 폭발한 사고였다. 최악의 상황을 가까스로 피했지만, 원전 반경 30㎞ 지역엔 방사능 오염으로 사람이 살 수 없는 ‘귀환 곤란 지역’이 곳곳에 남았다. 일본 정부는 ‘원전 제로(0)’ 정책을 도입하며 한때 모든 원전을 멈춰 세웠다. 2014년에는 에너지 기본계획에 “지진 발생 이전 계획됐던 에너지 전략을 전면 재검토해 원전 의존도를 최대한 낮춘다”고 명시했다.
하지만 시간은 사람들의 기억을 옅게 했고, 일본 정부는 ‘원전 최대 활용’으로 방침을 완전히 바꿨다. 지난해 2월 일본 정부는 에너지 기본계획에서 ‘원자력 발전 의존도를 낮춘다’는 문구를 삭제하고, ‘적극적 원전 회귀’를 공식 천명했다.

일본 시민사회가 가시와 원전을 유독 주목하는 것은 후쿠시마 원전 폭발에 책임이 있는 도쿄전력이 운영한 곳이기 때문이다. 가시와 원전은 동일본 대지진 이후 다른 원전들과 함께 가동이 멈췄는데, 오는 18일 6호기가 상업운전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달 24일 재가동한 6호기는 이미 100% 발전출력인 135만6천킬로와트(㎾)에 도달해 상업운전 채비를 끝냈다. 후쿠시마 사고 뒤 재가동되는 도쿄전력의 첫 원자로다.
일본 원자력규제위원회 누리집을 보면, 일본 전역에 가동 가능한 원자로 33기 가운데 가시와 원전 6호기를 포함해 10기가 재가동됐다. 23기는 정지된 상태다. 후쿠시마 제1원전 원자로 6기는 전체가 완전히 폐쇄됐고, 또 다른 원자로 17기는 폐쇄 조처 중이다. 이와 별개로 시마네현 등에 새로 지어지는 원전도 3기가 있다.
가시와 원전은 1985년 1호기가 도입된 뒤 7호기 체제를 갖췄다. 전체 출력 821만2천㎾로 단일 원전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다. 이번에 재가동하는 6호기는 1996년 상업 운전을 시작한 개량형 비등수형 경수로(ABWR)다.
일본 정부가 비난을 무릅쓰고 도쿄전력의 원전 가동을 승인한 것은 ‘적극적인 원전 활용’ 정책으로 본격 전환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실제 일본 정부는 에너지 종류별 수급 전력 가운데 원전 비율을 2024년 8.5%에서 2030년까지 20~22%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인데, 가시와 원전이 총대를 멜 것으로 보인다. 도쿄전력 쪽은 지난 5일 기자회견에서 “안전 최우선으로 (…) 문제가 발생하면 관계자들이 논의해 하나하나 신중히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후쿠시마 트라우마’가 여전한 일본 사회는 도쿄전력의 원전 재가동에 대한 불신감을 감추지 않고 있다. 특히 가시와 원전은 2021년 발전소 직원이 중앙제어실에 무단으로 침입해 ‘허술한 방호 체계’ 논란을 빚는가 하면 경보장치 오작동, 악천후 감시 태세 미비 등으로 여러 차례 문제를 일으켰다. 이번 재가동을 앞두고도 원자로 제어봉 파손을 비롯해 불과 한달 전에도 원자로 압력 용기의 중성자 측정장치 고장에 따른 운전 정지 등 사고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1월 주부전력이 시즈오카현 하마오카 원자력발전소 재가동 허가를 얻기 위해 지진 안전 관련 데이터를 조작해 일본 원자력규제위원회에 제출한 사실이 들통난 사건과 맞물려 가시와 원전 재가동에 대한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게다가 시즈오카현은 100∼150여년 간격으로 8∼9급 지진이 반복되는 ‘난카이 해곡 대지진’이 발생해온 곳이다. 사용후핵연료가 이미 포화 상태에 가까운 가시와 원전에서 6호기가 본격 가동됐을 때, 이를 처리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지적도 많다.

도쿄전력이 후쿠시마 원전 사고 수습 과정에서 진 ‘빚’을 청산하기 위해 무리하게 재가동을 추진하는 것도 논란거리다. 실제 후쿠시마 원전 사고 수습 비용으로는 배상 9조2천억엔, 폐로 8조엔, 제염 4조엔 등 모두 23조4천억엔(약 220조2150억원)이 예상되는데, 도쿄전력이 감당하는 것만 16조엔(약 150조5700억원) 정도로 추산된다. 현재 도쿄전력은 화력발전소를 돌리며 버티고 있지만 , 결국 원전 재가동 없이 수지를 맞추기 어려운 상황이다. 도쿄전력에서는 “은행에서 빌릴 수 있는 돈의 한도도 넘어섰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오고 있다. 최근 인공지능(AI) 관련 수요가 폭발하면서 에너지 공급에 어려움을 겪는 일본 정부와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는 풀이가 나온다. 아울러 도쿄 등 수도권에서 쓸 에너지를 공급하기 위해 지방 도시가 원전 위험을 감수하는 이른바 ‘희생의 시스템’ 문제도 풀리지 않는 숙제로 남아 있다.

일본 사회에서 원전 재가동은 여전히 논란이 큰 문제다. 지난달 14∼15일 실시된 아사히신문 여론조사에서 ‘원전 재가동에 찬성한다’는 의견이 51%(반대 35%)로 나타났다. 2022년까지는 찬성 비율이 20∼30%대로 유지되다가, 4년 전 절반을 넘긴 뒤 비슷한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반면 일본 시민사회의 탈원전 요구 역시 멈추지 않고 있다. 지난 7일 일본 도쿄 요요기 공원에서 열린 ‘사요나라 원전 1천만인 액션 실행위원회’가 주최한 ‘원전을 멈추자, 3·7 전국 집회’에서 이런 분위기를 엿볼 수 있다. 하세가와 고이치 모리오카대 학장(시민단체 ‘원자력자료정보실’ 이사)은 집회에서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재앙이자, 도쿄전력과 일본 정부가 일으킨 범죄”라며 “이를 잊지 않는 게 일본 사회와 동아시아, 나아가 지구의 미래 세대의 평화와 안전, 생명과 삶을 지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가시와 원전 재가동을 생각하는 니가타현민 네트워크에서 활동하는 사사키 간나는 “가시와 원전 재가동 과정에 주민 의사는 완전히 무시되고 있다”며 “원전을 멈춘다는 것은 원전이 필요 없는 사회, 누구에게도 원전 피해를 전가하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2011년부터 해마다 전국 규모로 열리는 이날 행사에는 시민 8500여명이 참여했다.
도쿄/글·사진 홍석재 특파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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