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이 말로 코딩한 AI기사... 알파고보다 더 강해 ‘李 항복’

“방금 제가 둔 수(手) 좀 물러도 되겠습니까? 조금 전 제가 만든 얘(AI 바둑 기사)가 바둑을 너무 잘 둬서 사람이 이기는 건 어렵겠는데요.”
이세돌(43) 전 바둑 기사가 9일 서울 중구 포시즌스 호텔 아라홀에서 열린 ‘AI(인공지능) 에이전트(비서) 시연’ 행사에서 “사람이 아니라고 느껴지는 속도다”라며 이같이 감탄 섞인 농담을 던졌다. 자신의 음성 명령을 기반으로 AI 에이전트(비서)가 만든 ‘AI 바둑 기사’와 시범 대국을 시작한 직후였다. 이세돌은 “체감상 10년 전 붙었던 ‘알파고’보다 훨씬 뛰어난 수준”이라고 했다. 바둑 전문 AI도 아닌 범용 AI 에이전트가 30분 만에 뚝딱 만든 AI 바둑 기사가 경력 25년의 베테랑 기사를 실력으로 압도한 것이다.

오늘 행사가 열린 서울 포시즌스 호텔은 이세돌에게 역사적인 장소다. 그는 10년 전인 2016년 3월 이곳에서 구글 딥마인드 AI 알파고와 대국을 벌여 1승 4패를 거뒀다. 이세돌은 2019년 11월 바둑 기사 은퇴를 선언한 후 “바둑을 예술로 배웠는데, 이제는 바둑이 AI 때문에 정답만을 찾는 계산의 영역이 됐다”며 “AI 바둑 실력에서 벽을 느껴 절망적이었다”고 했다. 그러나 이후 AI가 경쟁 상대가 아니라 협업 대상이라는 인식이 커지면서 AI를 연구하는 학자(울산과학기술원 AI대학원 특임교수)이자 협업자로 알파고와 대국 10주년을 기념해 이 자리에 섰다.
이날 행사는 이세돌이 AI와 본격적인 대국을 펼치기보다 AI 에이전트를 통해 AI 바둑 기사를 만들고 대국 시범을 보이는 식으로 진행됐다. 이세돌은 AI 에이전트와 간략하게 인사했고, AI는 이세돌에게 “일과를 관리할 때 정해진 루틴을 따르는지, 그때그때 유동적으로 움직이는지” “하루 중 집중이 가장 잘 되는 시각은 몇 시인지” “편한 톤이 좋은지 업무적인 톤이 좋은지” 등을 물으며 성향 파악을 했다. AI는 또 바둑 관련 웹사이트, 아마존 내 도서, 유튜브 등으로 추가 리서치를 거쳐 AI 바둑 기사 ‘유아’를 완성했다.
이세돌은 AI 에이전트에 대해 “나 같은 AI 문외한이 말 몇 마디로 이런 수준급 모델을 만든다는 것은 인간과 AI가 어떻게 협업을 해야 하는지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면서 “이제 AI는 승부나 경쟁의 대상이 아니라, 인간이 더 큰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게 돕는 도구로 정의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AI가 모든 일자리를 대체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지만, AI가 되레 일자리를 만들 것으로 생각한다”며 “AI와 협업하며 인간들이 풀지 못했던 난제들을 풀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이세돌은 또 “AI는 감성적인 부분이 부족하다”며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직감과 경험치가 합쳐졌을 때 AI를 제대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행사는 AI 스타트업 인핸스가 인간과 AI 에이전트가 직접 협업하는 ‘AI 협업 시대(The Age of Agentic AI)’를 알리기 위해 기획했다. 이승현 대표는 “이제는 별도로 지시하지 않아도 스스로 일을 처리하는 AI 에이전트가 상용화 단계에 이르렀다”며 “AI 에이전트를 이용한다는 것은 실무를 전부 알고 있는 프로젝트 매니저(PM)와 24시간 일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