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노동의 현장에서 “영혼의 숨결과 호소”를 담아냈죠

‘광부 화가’ 황재형이 세상을 떠났다.
우람한 체구에 힘이 장사여서 백수는 넉넉히 하리라 생각했는데 4년 선배인 내가 그의 추도사를 쓸 줄은 정말 몰랐다. 나는 황재형의 삶과 예술,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알고 있는 예술적 동반자이자 지지자이다.
황재형은 1982년 제5회 중앙미술대전에서 ‘황지 330’으로 장려상(대상 다음 차석 상)을 수상한 ‘민전’시대(1970년대 말~1980년대 중반 일부 언론사가 주최한 민간 전시회가 정부가 주관하는 국가미술전람회(국전) 중심의 미술계 판도를 바꾸며 주목받던 시기)의 기린아였다. 탄광에 매몰되어 사망한 한 광부가 남긴 너절한 광부복의 가슴팍에 탄광 출입증이 선명하게 그려있는 대작이었다. 당시 심사위원들은 사진보다도 더 생생하게 그린 그의 하이퍼 리얼리즘(극사실주의) 묘사력을 높이 평가한 것이었다.

그러나 황재형 자신의 예술 목표는 형식보다 내용에 있었다. 전남 보성 출생으로 인근 화순탄광을 보고 자라면서 일찍부터 탄광촌 막장 인생에 애정을 키워왔다. 그의 나이 30살 때인 1982년, 황재형은 중앙대 동창인 이종구, 박흥순, 송창, 이명복 등과 ‘임술년’ 동인을 결성하고는 상업주의가 팽배한 기존 미술계에 반기를 들고 삶의 미술을 지향하는 리얼리즘 미술을 표방하였다. ‘임술년’은 2년 전에 등장한 ‘현실과 발언’ 그룹과 함께 곧바로 이어진 민중미술운동의 서막이었다.
황재형은 탄광촌의 현실을 그리겠다는 예술 목표를 실현하기 위하여 1983년, 식솔을 이끌고 강원 태백으로 이주하여 광부가 되었다. 관조적 시각이 아니라 삶의 생생한 현장을 담기 위해서였다. 1984년에 첫 개인전으로 연 ‘쥘 흙은 있어도 뉠 땅은 없다’에서는 광부들이 막장에서 서로 헤드라이트를 비춰주며 ‘도시락’을 먹는 명장면을 낳았다.

황재형의 광부 생활은 약 3년간 이어졌다. 그러다 시력을 다쳐 막장에 들어갈 수 없게 되면서 태백에서 시민판화운동과 벽화운동, 문화운동 등을 펼치며 자기 예술작업도 성실히 이어갔다. 그리고 2007년 서울 가나아트센터에서 16년 만에 개인전 ‘쥘 흙과 뉠 땅’을 열면서 리얼리즘 화단의 존재감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2010년 이후에는 더욱 원숙한 작품세계로 들어가 장대한 산맥을 담은 대작 ‘백두대간’, 탄가루 섞인 시냇가에 비친 노을을 그린 ‘탄천의 노을’, 무수한 실제 머리카락으로 만든 인물화 대작 ‘드러난 얼굴’ 등 명작을 쏟아내었다.

그리하여 환갑을 넘긴 2013년, 제7회 민족미술상을 수상했다. 황재형은 민중미술 동네에서만 높이 평가된 것이 아니었다. 2016년, 제1회 박수근미술상의 수상자로도 선정되었다. 바로 그해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린 ‘리얼리즘의 복권’전에 신학철, 임옥상 등과 함께 출품한 ‘아버지의 자리, 존엄의 자리’라는 그의 대작은 우리 현대미술사의 걸작 중 걸작이었다. 핏발 선 눈동자의 아버지와 주름살 깊게 파인 어머니의 얼굴에는 두 분의 인생 역정이 그대로 담겨 있어 문학평론가 염무웅 선생은 장편소설을 보는 듯한 감동이 일어난다고 했다.


2017년, 황재형은 또 한차례 개인전을 가졌고, 2021년에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회천’(回天)이라는 주제로 개인전을 열면서 탄광촌 노동자 작업복 연작부터 머리카락 초상화까지 40여년의 작업을 조망하는 65점을 선보였다. 이때 그는 “삶과 노동의 현장에서 다가오는 영혼의 숨결과 호소를 온몸으로 받아들여 곧바로 작품에 담아내려 온 신경을 집중했다”고 자신의 예술 의지를 말하였다. 이것이 황재형 예술의 본령이었다.
황재형이 세상을 떠나기 이태 전, 나는 태백에 가서 한차례 문화 강연을 한 뒤 그의 새 화실에서 하룻밤을 같이 보냈다. 그때 한쪽에 놓인 ‘아랫목’이라는 풍경화가 정말 아름다웠다. 석탄재로 뒤덮인 탄광촌 루핑집들 창문으로 노란빛이 따뜻하게 새어 나오는 풍광은 황재형의 예술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그런 우리의 화가 황재형이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그가 남긴 ‘황지 330’, ‘아버지의 자리, 존엄의 자리’, ‘아랫목’은 영원히 한국 현대미술사의 명작으로 우리 곁에 남아있을 것이다.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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