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의 '수평적 확전' 전략…'정치적 인내'의 전투로 바꿔

이유 에디터 2026. 3. 9.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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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전략적 갈림길…공중 작전 강화냐 철수냐

장기전 가면 미국·걸프·유럽에 큰 '정치적 비용'

페이프 "이란에 필요한 건 오로지 인내뿐"

이란, 2·28 공격 책임 '친미 질서'로 확대

"이스라엘 증오 무슬림 대중 직접 겨냥"

"결정적 국면, 지역 위기와 함께 시작돼"

압도적 공군력에도 베트남 전쟁서 패배

"이란의 타격들은 지리멸렬한 보복이나 죽어가는 정권의 마구잡이 행동으로 치부해선 안 된다. 되려 그건 분쟁의 범위를 넓히고 기간을 늘림으로써 판을 바꾸고자 하는 '수평적 확전'(horizontal escalation) 전략이다."

미국의 군사 역사가인 로버트 페이프 시카고대 교수(정치학)는 '확전이 이란에 유리한 까닭'이란 9일 자 <포린 어페어즈> 기고에서 미국과 이스라엘의 2‧28 '불법 공격'과 최고 지도자 암살에 대한 보복으로 이란이 지난 9일간 이스라엘과 걸프 지역 내의 미군기지와 외교공관들은 물론, 공항과 석유 인프라 등 민간 시설들을 타격하고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고 유조선을 타격하는 것에 대해 이렇게 분석했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 속에서, 바레인 시트라 섬의 밥코 정유소에 가해진 타격으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2026. 03. 09 [로이터.=연합뉴스]

"이란의 타격들, 지리멸렬한 보복 아냐"
'수평적 확전' 통해 '인내의 전투' 전환

페이프 교수는 약한 교전국이 더 강한 적의 '계산'을 바꾸게 하는 이 전략은 과거 베트남과 세르비아가 활용해 압도적 공군력을 지녔던 미국과 동맹국을 패배시켰다고 소개했다. 그에 따르면 수평적 확전은 약한 국가가 분쟁을 단일 전역에 국한하지 않고 그 지리적, 정치적 범위를 확대할 때 일어난다. 약자는 강자와 정면으로 맞붙는 대신에 추가로 다른 나라들, 경제 부문, 역내 대중들을 분쟁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위험의 무대를 다각화한다.

페이프는 "이란은 재래식 군사 대결에서 미국이나 이스라엘을 이길 수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이란의 목표는 더 큰 정치적 지렛대를 얻는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특히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등 최고지도부에 대한 '참수 작전'이 이 전략을 활용하도록 강력한 유인을 제공했다고 봤다. 그는 "지도자를 잃고도 정권이 살아남았다면, 분쟁 확대를 통해 신속하게 회복력을 과시해야 하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그가 보기에 이란은 먼저 회복력을 과시했다. 이란 군대 마비를 겨냥한 미국의 참수 작전에도 불과 몇 시간 만에 대규모 보복을 개시해 지휘 체계의 연속성과 작전 능력을 보여줬다. 둘째, 분쟁을 이란 영토 너머로 크게 확장했다. 보복을 이스라엘에 국한하지 않고, 미군이 주둔한 바레인, 요르단, 쿠웨이트, 카타르,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등 최소 9개국의 목표물을 타격하거나 겨냥했다. 페이프는 "메시지는 명확했다. 미군 수용 국가는 가혹한 대가를 치르고, 이스라엘과 미국이 시작한 전쟁은 확산할 것이란 점이다"라고 짚었다.
11일 이란 테헤란에서 열린 이슬람 혁명 47주년 기념행사 도중(2026년 3월 9일 배포), 한 이란 남성이 암살당한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최고 지도자의 아들인 모즈타바 하메네이의 초상화를 들고 있다. 국영 매체에 따르면, 이란 전문가 회의는 모즈타바 하메네이를 부친의 뒤를 잇는 국가의 새로운 최고 지도자로 임명했다. 2026. 02. 11 [EPA=연합뉴스]

이란, 2‧28 공격 책임 '친미 질서'로 확대
"이스라엘 증오 무슬림 대중 직접 겨냥"

이란 외무부가 미군 기지가 있는 걸프 국가 등에 대한 미사일과 드론 공격을 두고 "지역 내 모든 '적대 세력'에 대한 정당한 대응"으로 규정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페이프는 "이 표현은 대이란 공격의 책임을 이스라엘과 미국을 넘어 걸프 지역의 광범위한 친미 질서로 확대했다"고 해석했다. 그러면서 "근본적으로 이란의 수평적 확전은 정치적 전략이다. 이는 이란이 설득하려는 대상, 이란과 이념적으론 일치하지 않아도 대체로 이스라엘을 증오하는 역내 무슬림 대중들을 직접 겨냥하고 있다"고 해석했다.

셋째, 이란의 보복은 공항 폐쇄, 상업 시설 화재, 외국인 노동자 사망, 에너지‧보험 시장 혼란을 초래함으로써 분쟁을 '정치화'했다. 걸프 지도자들은 외국인 투자자와 관광객을 안심시켜야 하는 처지가 됐고, 이란 전쟁은 회의실과 의사당으로 옮겨갔다. 그는 "이제 수많은 행위자가 각자의 이익을 추구하며 갈등으로 들어섰으며, 전혀 조율되지 않은 채 모두가 워싱턴의 통제를 벗어나 확전의 경로를 바꿀 수 있게 됐다"고 경고했다. 끝으로 시간이다. 여러 나라가 압박을 느끼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역내 국가와 그 너머에서 정치적 갈등이 깊어질 수 있다.
8일 미국 중부사령부 공보실이 배포한 미 해군 제공 사진.  '에픽 퓨리 작전'을 지원하며 항해 중인 알레이 버크급 유도 미사일 구축함 토마스 허드너함(DDG 116)이 토마호크 지상 공격 미사일을 발사하고 있다. 2025. 03. 09 [AFP=연합뉴스]

장기전, 미국‧걸프‧유럽에 '정치적 비용'
페이프 "이란에 필요한 건 오로지 인내뿐"

이런 이란의 '수평적 확전' 전략에는 명확한 정치적 목적이 있다고 봤다. 우선 세계적 금융‧ 투자‧관광‧물류의 허브인 걸프 지역의 '절대 안전' 평판에 구멍을 내는 것이다. 그건 물리적 피해보다 훨씬 크기 때문이다. 다음은 알우데이드, 알다프라, 프린스 술탄 등 미군 기지와 그 주변을 타격해 미군 기지 수용에 드는 걸프 국가들의 정치적 비용을 높였다. 페이프는 "테헤란은 워싱턴과의 동맹이 공격에 대한 노출을 뜻한다는 신호를 보냈다. 걸프 지도자들은 동맹의 약속과 국내 경제적 안정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만 한다"고 지적했다.

셋째는 중동 질서 관련 서사를 만드는 것이다. 자신들의 행동이 지역 패권을 노리는 미국과 이스라엘에 대한 저항으로 묘사함으로써, 걸프 국가의 지도자와 대중 사이를 벌려 놓으려는 것이다. 끝으로, 전 세계 석유 물동량의 약 20%가 통과하는 호르무즈 해협 등 경제적 요충지를 지렛대로 활용하고 있다. 미사일 공격, 해상 사고나 보험료 상승 같은 부분적 혼란만 이어져도 즉각 글로벌 파급 효과를 일으키며, 미국과 유럽의 인플레 우려와 국내 정치적 압박에 기름을 붓는다. 페이프는 "이들 목적 달성엔 전장에서의 승리가 필요 없다. 이란에 필요한 건 오로지 인내뿐이다"라고 주장했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의 전쟁 속에서 헤즈볼라와 이스라엘 사이의 확전에 뒤이어, 레바논 베이루트 남부 외곽에 가해진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2026. 03. 09 [로이터.=연합뉴스]

트럼프 행정부, 전략적 갈림길에 서
공중 작전 배가 vs 군사 개입 종료

이란의 '수평적 확전' 전략이 먹혀 장기전으로 넘어갈 때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페이프는 먼저 그동안 미국의 지원 아래 이스라엘과 '조용히' 안보 협력을 확대해온 걸프 정부들의 행보가 밖으로 노출될 걸로 봤다. 아랍 대중은 여전히 이스라엘의 공격적 군사 행동을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는 점에서 걸프 통치자들엔 상당한 국내 정치적 부담을 안길 수 있다.

미국 정치에도 큰 영향을 줄 걸로 예상했다. 에너지 가격 급등, 미군 사상자 발생, 불확실한 목표로 점철된 지루한 중동 전쟁은 미국 내 불만을 키울 가능성이 크다. 이미 트럼프의 지지 기반인 '마가'(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진영 내에서 대선 공약을 어기고 중동 문제에 개입하며,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꽁무니를 따른다는 비난의 목소리가 많다. 이란 전쟁이 장기화하면 그 균열은 더 확대될 개연성이 크다.

또한 확전을 원하는 미국과 그렇지 않은 유럽 간의 갈등도 확대될 수 있다. 무엇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불법 침공에 대한 제재 차원에서 유럽이 러시아산 가스와 석유의 수입 중단을 입법화한 상황에서 중동산 석유와 가스 수입마저도 어려워진다면 유럽 경제는 이중으로 막대한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유럽 내 기지들의 미군 사용 문제를 놓고도 미국과 갈등이 확대될 수 있다. 장기전 속에서 기존 또는 신생의 무장 단체나 테러 단체들이 고개를 들 위험성도 작지 않다.
1960~70년대 베트남전쟁 당시 작전 중인 미군. 나무위키

"결정적 국면, 지역 위기와 함께 시작돼"
압도적 공군력에도 베트남 전쟁서 패배

분쟁을 확대하고 정치화하는 이런 이란의 장기전 전략에 맞서 트럼프 행정부가 취할 대응과 관련해 페이프는 "전략적 갈림길에 섰다"라면서 추가로 공중 자산을 투입해 공중 작전을 배가하던가, 아니면 "목표가 달성됐다"고 선언하고 이 시점에서 군사 개입을 끝내는 방안을 제안했다. 그는 "트럼프는 미국이 지금 당장 짧고 제한적인 정치적 비용을 감수할지, 아니면 추후 더 길고 불확실한 정치적 비용을 감수할지를 판단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고 말했다.

페이프는 "지리적으로 넓고, 경제적으로 파괴적이며, 정치적으로 계산된 이란의 보복은 분쟁의 구조 재편을 목표로 한다. 전역을 넓히고 전쟁을 장기화함으로써 테헤란은 대결의 성격을 군사적 능력의 싸움에서 정치적 인내의 싸움으로 전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 전쟁의 결정적 국면은 첫 번째 타격이 아니라 뒤이은 지역적 위기와 함께 시작됐다. 여러 수도에서 방공망이 가동되고, 공항이 폐쇄되고, 시장이 요동치고, 동맹 정치가 긴장 상태에 빠진 지금 말이다"라고 강조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9일 플로리다주 팜 비치의 마러라고 클럽에서 진행된 공동 기자회견도중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악수하고 있다. 2025. 12. 29 [로이터=연합뉴스]

한편, 베트남 전쟁과 관련해 페이프는 1965년부터 미국이 압도적 공군력을 바탕으로 제2차 세계대전 전체 기간에 사용한 것보다 3배나 많은 양의 폭탄을 북베트남에 투하하고, 1967년 가을 무렵엔 주요 통신, 군사, 산업 센터와 간선 도로들을 폐허로 만들었지만, 북베트남이 분쟁을 시골과 남베트남의 주요 도시, 정치 영역으로 확대하고 워싱턴의 국내 정치적 계산도 바꿔냄으로써 결국은 장기전에서 승리했다고 설명했다.

yooillee22@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