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리뷰] 송경 글라라 유작展 ‘빛의 기도’… 경계 지운 빛, 평화를 비추다
이달 19일까지 인천 이승훈베드로성지기념관
김수환 추기경이 생전에 아낀 작가
천주교 ‘매일미사’ 표지 등 다수 작품
유가족들, 기념관에 60점 넘게 기증

하늘에 떠 있는 태양 빛이 사각의 캔버스 전체를 따뜻하게 감싸며 여러 가지 빛깔을 만들어 낸다. 그 빛은 사물과 공간의 경계를 부드럽게 지운다. 새와 꽃, 나무의 형상이 빛에 번져 마치 하나처럼 평화롭게 공존한다.
천주교 신자로서 은둔의 삶을 살며 한평생 종교미술에 매진한 송경(글라라·1935~2022) 작가의 회화 ‘하늘바다’(1983)는 ‘본다’라기보다는 ‘관조하다’라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세속과 거리를 두고 신앙과 예술의 세계로 침잠했던 작가의 정신이 종교와 관계없이 보는 이의 내면에서 고요한 울림을 준다.
송경 작가의 유작전 ‘빛의 기도’가 인천 남동구에 있는 천주교 인천교구 이승훈베드로성지기념관 전시실에서 오는 19일까지 진행 중이다. 작가의 회화, 도예, 조각 등 작품 40여 점과 함께 작가의 신앙과 예술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사진과 유고 등을 만날 수 있다.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한 작가는 1950년대 말부터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에 7년 연속 입선하는 등 활발한 작품 활동을 했다. 작가는 1980년대부터 서울가톨릭미술가회 작가로서 종교미술에 천착했다. 1997년 가톨릭미술상 본상을 수상하고, ‘매일미사’ 등 천주교 공식 간행물에 오랫동안 표지 그림을 그리는 등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러면서도 작가는 생전 자신의 작품을 한 점도 팔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작품은 서울대교구청, 명동대성당, 가회동성당,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등에 소장돼 있다.
김수환 추기경(1922~2009)이 매우 아꼈던 작가였다고 한다. 초기작부터 말년의 작업까지 작가의 고유한 작품 세계는 크게 변하지 않고 한결같았다. 전시장에서 작가의 1973년작 ‘꽃말’과 그 옆에 나란히 걸린 1993년작 ‘나래’를 보면 작가의 변화상과 일관성을 함께 느낄 수 있다. ‘산길’(1985), ‘성 프란치스코’(1985), ‘빛 따라’(1999), ‘새들의 합창’(1999), ‘꽃 비’(2000) 등 한국적 정서를 담은 종교화도 눈에 띈다.

지난달 2일부터 시작한 전시 중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지난 7일 송경 작가의 유가족들이 60점이 넘는 작가의 유작을 이승훈베드로성지기념관에 기증한 것이다. 작가의 유가족들은 특별한 행사 없이 조용히 성지를 찾아 기증 동의서에 서명한 뒤 돌아갔다고 한다.
이승훈베드로성지기념관 정광웅 마르코 신부는 “한국 천주교의 첫 영세자이자 신앙공동체를 시작한 이승훈 베드로(1756~1801)는 어려움과 박해 속에서도 신앙의 빛을 간직했던 인물”이라며 “이승훈 베드로의 삶을 기억하는 공간이자 그의 묘역으로 온 송경 글라라의 작품 속 빛의 메시지는 성지가 간직한 역사와도 자연스럽게 만난다”고 말했다. 이어 정광웅 신부는 “송경 글라라의 작품은 신앙을 떠나서 내면의 깊이를 들여다볼 수 있는 따뜻함이 있으며, 그 빛이 무엇인지는 보면 볼수록 드러난다”며 “유가족들도 더 많은 사람이 작품을 만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에 기증을 결심했다”고 했다. 이승훈베드로성지기념관은 이번 전시를 마친 후 기증받은 작품들을 정비해 빠르면 내달 중순께 다시 송경 작가의 작품을 공개할 계획이다.
/박경호 기자 pkhh@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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