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년 전 남편을 용서한 아내로부터 온 전화[이수진의 이혼 이야기]

옛 사건 의뢰인의 전화가 걸려온 순간, 올 것이 왔구나 싶었습니다. "변호사님, 남편이 바람을 핀 것 같아요." 그녀의 목소리는 낮고 지쳐있었습니다. 2년 전과 같은 말이었습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2년 전 목소리에는 분노가 가득했다면 이번에는 모든 걸 내려 놓은듯한 건조함이었습니다. 2년 전 남편의 상간녀를 상대로 한 위자료 소송에서 승소하는 순간에도 같은 일이 반복 될 것이라 예감했습니다.
2년 전, 그녀는 상간 소송을 위해 내 사무실을 찾았습니다. 저는 그때 이혼을 권유했고 그녀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남편이 무릎을 꿇고 울며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빌었다 했습니다. 아이들 얼굴을 보면 결정은 더 어려워졌고, 이혼녀라는 딱지가 두렵기도 했답니다.
그녀에게 그 이상 이혼을 권유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결정은 당사자의 마음이 정하는 것입니다. 그녀가 상간녀로부터 위자료를 받고 2년이 흘러 남편에게는 새로운 상간녀가 생겼습니다.
우리는 흔히 외도를 한 번의 실수라고 부릅니다. 순간의 판단 착오, 다시는 없을 일탈이라고 말합니다. 배신한 쪽도, 배신당한 쪽도 그렇게 믿고 싶어 합니다. 믿어야만 함께 살아갈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 일을 하면서 관찰한 결과는 다릅니다. 외도는 '선택'입니다. 선택은 어떤 사람의 기질과 상황, 행동패턴이 결합돼 도출되는 결과값에 가깝습니다. 그 사람이 어떤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하는 사람인지를 보여주는 패턴입니다. 그리고 한 번 '선택'의 문턱을 넘고 나면 그 다음 기회에 문턱은 더 낮아집니다. 그런 선택이 반복되어 만들어지는 것이 '습관'입니다. 진심으로 후회하면서도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것, 그것이 습관의 무서움입니다. 그리고 진심과 습관은 별개입니다. 남편의 눈물은 아마도 진실된 것이었을 것입니다.
두 번째 소송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번에는 이혼도 함께 진행하겠다고 했습니다. 목소리에는 결의가 가득했습니다. 의뢰인 뜻에 따라 서류를 준비해 제출했습니다.
그러나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남편은 혼인 회복에 대한 의지를 굳건히 보였습니다. 아이들과도 잘 지냈고 법원에서 눈물로 읍소하였습니다. 기일이 반복될수록 그녀의 목소리는 작아졌습니다. 어느 날 그녀가 말했습니다. 이혼은 조금 더 생각해보겠다고. 상간 소송만 마무리하고 싶다고.
"후회하실지도 모른다"고 말씀드렸지만 수화기 너머에서는 좀처럼 답변이 없었습니다. 저는 좀 더 적극적으로 그녀를 말려보려다 이내 그만두었습니다. 외도가 진심의 문제가 아니라 습관의 문제라는 것을 깨달을 때까지는 다 소용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저는 그녀가 세 번째 전화를 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압니다. 어쩌면 세 번째는 전화조차 오지 않을 수 있다는 것도. 싸울 의지도, 다시 시작할 용기도 모두 소진된 자리에는 그냥 견디는 삶만 남습니다. 그것이 그녀가 진정으로 원한 결혼 생활의 모습인지, 혹은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부부의 모습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용서는 아름다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 용서가 상대의 변화가 아닌 나의 두려움 위에 세워진 것이라면, 같은 일이 반복된다고 해도 함께할 것이라는 각오가 서 있는지를, 지금 한번 조용히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