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잡으려다 골목상권 잡을 판"…대형마트 새벽배송 허용에 전통시장 '비명'

권영진 기자 2026. 3. 9.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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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전화 클릭 몇 번이면 물건이 집 앞까지 오는데, 누가 무거운 장바구니를 들고 시장에 오겠습니까? 이제는 새벽 배송까지 대형마트에 열어준다니, 우리 같은 시장 상인들은 그냥 문을 닫으라는 소리죠." 대구 북구 칠성시장에서 20년째 채소가게를 운영하는 김모(55)씨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박씨는 "대형마트가 새벽 배송을 시작하면 신선식품부터 생필품까지 시장의 마지막 보루마저 뺏기게 됩니다. 시스템과 자본을 갖춘 대기업과 우리가 어떻게 싸웁니까. 대형마트의 규제를 풀 것이라면 우리 같은 영세상인들이 온라인으로 전환할 수 있는 실질적인 인프라부터 깔아줘야 공정한 것 아닙니까"라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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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배송 허용 등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 발의
골목상권, 규제 완화 시 매출 감소 등 타격 불가피
대형마트 의무휴업제가 도입된 지 14년이 흐른 가운데, 지역의 한 대형마트 입구에 영업시간 안내판이 설치돼 있다. 대구일보 DB
정치권에서 14년 만에 대형마트의 '새벽 배송'을 허용하는 내용이 담긴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을 내놓으면서 지역 소상공인과 전통시장 상인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대구일보 DB

"휴대전화 클릭 몇 번이면 물건이 집 앞까지 오는데, 누가 무거운 장바구니를 들고 시장에 오겠습니까? 이제는 새벽 배송까지 대형마트에 열어준다니, 우리 같은 시장 상인들은 그냥 문을 닫으라는 소리죠." 대구 북구 칠성시장에서 20년째 채소가게를 운영하는 김모(55)씨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중구 동성로에서 10년째 옷가게를 운영 중인 김지민(32·여)씨는 "대형 플랫폼처럼 물류나 배송시스템을 갖추기에는 자금이 턱없이 부족한데, 이런 상황에서 대형마트의 규제까지 완화되면 소상공인들은 버티기 힘들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서 14년 만에 대형마트의 '새벽 배송' 규제를 푸는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을 밀어붙이자, 지역 소상공인들 사이에서는 "생존권이 벼랑 끝으로 몰렸다"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격차 벌어지는 온·오프라인…'기울어진 운동장' 가속화

현재 논의 중인 개정안의 핵심은 대형마트를 온라인 물류거점으로 활용해 24시간 배송을 허용하는 것이다. 그동안 대형마트는 유통산업발전법에 묶여 자정부터 오전 10시까지 영업이 제한됐고, 이 시간대에 온라인 배송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데이터가 보여주는 현실은 냉혹하다. 2021년 190조 원이었던 대형마트 거래액은 2024년 242조 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다. 특히, 쿠팡의 2024년 매출은 41조2천901억 원으로 4년 전보다 무려 210% 증가했다.

반면, 오프라인은 몰락하고 있다. 이마트와 롯데마트, 홈플러스 등 대형마트 3사의 점포 수는 5년 사이 6.3% 감소하며 역성장의 늪에 빠졌다. 3사의 점포 수는 2020년 412개에서 지난해 388개로 감소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와 정치권은 대형마트의 규제를 풀어 쿠팡 등 이커머스 공룡과 경쟁하게 하겠다는 구상이지만, 그 사이에 낀 전통시장은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격이 됐다.

◆"우리도 온라인 하고 싶지만"…현장의 절규

전통시장 상인들은 대형마트의 규제 완화가 곧 골목상권의 '사형선고'라고 입을 모은다.

중구 서문시장에서 의류소매업을 하는 박모(62)씨는 현장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박씨는 "대형마트가 새벽 배송을 시작하면 신선식품부터 생필품까지 시장의 마지막 보루마저 뺏기게 됩니다. 시스템과 자본을 갖춘 대기업과 우리가 어떻게 싸웁니까. 대형마트의 규제를 풀 것이라면 우리 같은 영세상인들이 온라인으로 전환할 수 있는 실질적인 인프라부터 깔아줘야 공정한 것 아닙니까"라고 반문했다.

변기현 대구서문시장연합회장 역시 정책적 보완 없는 규제 완화에 불만을 터뜨렸다. "이미 온라인쇼핑 때문에 손님이 반토막 난 상태다. 대형마트에 새벽 배송 날개를 달아주기 전에 소상공인들이 온라인 판로를 개척하고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정부와 지자체의 파격적인 지원책이 선행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통 생태계의 파편화, 대안은 없는가?

정치권이 발의한 개정안이 통과되면 대형마트는 점포를 거점 삼아 '24시간 주문 처리' 체제로 전환된다. 유통업계의 형평성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취지지만, 결과적으로는 전통시장→대형마트→이커머스로 이어지는 포식 구조에서 가장 약한 고리인 골목상권이 붕괴될 우려가 크다.

전문가들은 단순한 규제 완화를 넘어서서 전통시장의 디지털 전환(DX) 지원과 배송시스템 공동 구축 등 유통업계 상생을 기반으로 한 유통생태계 재편이 시급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거대 자본의 속도전 속에 '사람 냄새' 나는 골목상권이 사라지지 않도록,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한 세밀한 정책 설계가 필요한 시점이다.

권영진 기자 b0127kyj@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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