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전쟁 터진 후 '10조 매도폭탄'…사흘 만에 또 서킷브레이커
'S 공포'가 부른 셀 코리아

미국·이란과 이스라엘 간 전쟁이 장기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며 코스피지수가 단번에 5200선까지 밀렸다. 고유가가 고착화하며 경기 둔화가 현실화할 수 있다는 공포가 증시를 짓눌렀다. 다만 스태그플레이션(고물가 속 경기 침체) 우려에도 해외 투자은행(IB)들은 잇따라 코스피지수 목표치를 올려 잡으며 “분할 저가 매수에 나설 때”라고 조언했다.
◇ 전쟁이 부른 역대급 변동성

9일 코스피지수는 5.96% 급락한 5251.87에 거래를 마쳤다. 외국인 투자자와 기관투자가가 각각 3조1980억원, 1조5440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개인투자자가 4조6270억원어치 저가 매수에 나섰지만 흘러내리는 지수를 막아내기엔 역부족이었다.
전쟁이 스태그플레이션(고물가 속 경기 침체)을 불러올 수 있다는 공포는 외국인의 ‘셀 코리아’를 부르며 역대급 변동성을 초래했다. 외국인은 중동 전쟁 발발 이후 5거래일간 10조2510억원어치를 팔아치웠다. 전쟁 이후 유가증권시장엔 서킷브레이커(20분간 매매 중단)가 두 번 발동됐다. 유가증권시장에서 한 달 안에 서킷브레이커가 재발동된 건 2020년 3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처음이다. 지난 3일과 4일에 이어 이날 세 번째 매도 사이드카(프로그램 매도호가 일시효력정지)도 발동됐다. 5일엔 매수 사이드카 조치가 이뤄졌다. 코스닥시장에서도 매도 사이드카가 두 번, 매수 사이드카가 두 번 발동됐다.
이날 삼성전자는 7.81% 내린 17만3500원에 거래를 마치며 4일 이후 3거래일 만에 17만원대로 밀려났다. SK하이닉스도 9.52% 하락한 83만6000원에 마감하며 3거래일 만에 80만원대로 내려앉았다. 외국인이 ‘바스켓 매도’(일괄 매도)를 하면서 현대자동차(-8.32%), SK스퀘어(-7.96%), LG에너지솔루션(-4.77%) 등 대형주도 일제히 하락세를 그렸다. 현대로템(-7.73%)과 한국항공우주(-5.02%) 등 전쟁 수혜 업종으로 여겨진 방산 업종도 무차별적으로 하락했다.
전쟁 장기화 가능성이 커지며 유가(WTI 기준)가 배럴당 120달러에 육박한 것이 치명타를 입혔다. 원·달러 환율이 달러당 1500원 부근까지 급등하며 국내 산업계의 원유 구매 비용이 이중으로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작용했다. 미국의 2월 고용지표까지 추정치를 밑돌며 스태그플레이션 우려를 키웠다. 유가 급등으로 인플레이션이 발생해도 미국 중앙은행(Fed)이 섣불리 기준금리 인하 카드를 쓰지 못할 것이라는 공포가 커졌다.
◇ 해외 IB “코스피 여전히 싸”
다만 해외 IB들은 중동 불안 고조에도 코스피지수 목표치를 잇달아 올려 잡고 있다. 아직까지는 중동 전쟁으로 인한 조정이 단기에 끝날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는 얘기다.
UBS는 이날 코스피지수 목표치를 4350에서 7300으로 상향했다. 코스피지수가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PER) 8배 수준까지 하락한 만큼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 수준) 매력이 높아졌다는 분석이다. UBS는 “과거 전쟁 때마다 증시는 결국 변동성을 회복했다”며 “견조한 한국 상장사 실적에 힘입어 이전 전쟁과 마찬가지로 ‘J자 커브’ 형태로 반등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골드만삭스도 5일 코스피지수 목표치를 6400에서 7000으로 상향했다. 골드만삭스는 “한국은 유가 상승이 국내총생산(GDP)에 미치는 영향이 다른 신흥국 대비 상대적으로 덜한 편”이라며 “기술적 조정 과정에서 박스권을 거친 뒤 반등해 새로운 고점을 기록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이날 급락세를 면치 못한 대형 반도체주도 목표주가가 잇달아 상향됐다. 홍콩계 CLSA는 이날 삼성전자 목표주가를 26만원에서 29만원으로, SK하이닉스는 125만원에서 142만원으로 올렸다. CLSA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다변화된 공급망과 기존 재고 덕분에 원자재 조달 리스크를 충분히 관리할 수 있을 것”이라며 “전쟁이 단기간(2~3개월) 내 종료될 경우 관리 가능한 수준의 리스크”라고 했다.
심성미/맹진규 기자 smsh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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