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평중 “보수 몰락은 자유민주주의 배신 탓…공화적 가치 실천이 살 길”[청론직설]

최형욱 논설위원 2026. 3. 9.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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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평중 한신대 철학과 명예교수
국힘 당권파는 ‘정치적 좀비’…1~2년내 흔적도 없을 것
보수, 양극화 해소 등 공공선 확대로 ‘자유’ 가치 확장을
李대통령 ‘예외상태’ 일상화로 연성독재 문지방 넘는 중
사법3법·이너서클 특수계급화 등 민주공화국 근간 훼손
윤평중 한신대 철학과 명예교수가 9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국 보수의 몰락 위기는 대한민국 헌법에 규정된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배신했기 때문”이라며 “자유와 민주 가치를 통합해 공화의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오승현 기자

국민의힘 지도부가 12·3 계엄 세력과의 절연을 거부하면서 민심의 외면을 받고 있다. 이런 사이 집권 세력은 삼권분립 질서를 허무는 법안 등을 강행하면서 한국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할 것이라는 우려도 크다. 윤평중 한신대 철학과 명예교수는 9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국 보수가 의제 능력을 상실하고 몰락 위기에 처한 것은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배신했기 때문”이라며 “대한민국 헌법에 규정된 자유와 민주의 가치를 적절히 조합하고 공화(共和)라는 고차원적 화두를 실천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박근혜 전 대통령에 이은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은 장기간에 걸친 보수 퇴행의 극악한 결과물이자 종착점”이라며 “올 6월 지방선거는 ‘정치적 좀비’나 다름없는 국민의힘 당권파들이 앞으로 1~2년 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재명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에 대해서는 “내란 청산이라는 미명 아래 예외 상태의 일상화를 꾀하는 듯하다”며 “‘사법 3법(재판소원 도입, 법왜곡죄, 대법관 증원)’, 검찰 해체, 비리 인사의 고위직 중용 등의 행태를 보면 연성 독재의 문지방을 넘어가려 하는 중”이라고 비판했다.

-한국의 보수 세력이 몰락했다는 평가가 많은 이유는.

△국민 다수에 소구하는 의제 설정 능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건국, 박정희 전 대통령은 ‘잘살아보자’는 조국 근대화의 비전을 제시했다. 독재정치라는 과오에도 일정한 민중적 호소력과 국가적 비전이 있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만 해도 실용주의와 경제 살리기를 앞세워 대선에서 압승했다. 반면 박 전 대통령은 사회경제적 양극화라는 시대적 문제 해결을 위해 경제민주화를 내세웠지만 집권하자마자 폐기해 버렸다. 윤 전 대통령은 어떤 국정 화두도 없었고 좌충우돌하다 결국 자멸해 버렸다.

-보수가 진보 진영보다 더 무능하다는 소리도 듣는다.

△비전도 부재했지만 국가 운영도 실패를 거듭했다. 이 전 대통령은 광우병 촛불 사태가 터지자 민심을 읽고 공정사회론으로 국정 운영의 방향을 바꿨다. 반면 박 전 대통령은 골방에 틀어박혀 누구의 말도 듣지 않다가 탄핵을 당했다. 윤 전 대통령은 간발의 차이로 집권하고도 외연을 확장하기는커녕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를 쫓아내고 의사들과 해병대 등 자신의 지지 기반을 적으로 돌렸다. 그는 취임사에서 ‘자유’를 35번이나 언급했지만 정작 국정 운영 방식은 권위주의적이었다. 무능의 화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민의힘 주류들은 윤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거부하고 있는데.

△12·3 계엄은 친위 쿠데타이자 ‘윤석열의 난’이었다.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과 1심의 내란 규정으로 이미 정치적 사형선고를 받았다. 대한민국 헌정 체계로부터 도출된 이 법적 판단들은 결국 프랑스 철학자 장자크 루소가 말한 국민들의 ‘일반의지’를 반영한다. 공동체 전체의 관점에서 보편타당하고 정당한 국민적 뜻을 일반의지라고 부른다. 그런 의미에서 대한민국 국민의 정언명령에 해당하는 헌정 질서를 무너뜨리려 했던 윤 전 대통령과 이를 옹호하는 친윤 당권파는 보수가 아니라 수구 반동 세력이다.

-친윤 당권파들은 ‘절윤’을 주장하는 인사들을 배신자라고 몰아붙이고 있다.

△윤 전 대통령 일당이야말로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과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것이다. 10여 년 전 새누리당 시절만 해도 당 지도부가 민심과 어긋난 길을 가면 소장파와 원로들이 받아치는 등 보수정당 내에 역동성이 살아 있었다. 지금은 당내 비판을 격려하기는커녕 특정 개인에 대한 충성만을 강요하는 봉건적인 문화가 횡행하고 보복을 일삼는 숙청 정치를 하고 있다. 일종의 말기적 증상이자 한편의 정치적 코미디다. 한국 정치의 역동성이나 국민들의 일반의지를 감안하면 국민의힘의 정치적 미래는 전무하다고 본다.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부르고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국민들도 있다.

△그런 식의 음모론은 패배 의식과 절망감의 발로라고 본다. 자신의 주관적 소망과 날카롭게 충돌하는 현실을 냉철하게 직면하기 두려운 것이다. 사회심리학자인 에리히 프롬의 말처럼 ‘자유로부터의 도피’라고나 할까. 하지만 한 공동체의 보편타당한 양식을 부인할수록 정치적으로 사멸하게 된다. 고통스럽더라도 국민 다수의 목소리를 수용해야 우리 사회에서 자신들의 꿈을 펼칠 수 있을 것이다.

윤평중 한신대 철학과 명예교수가 9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국 보수의 몰락 위기는 대한민국 헌법에 규정된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배신했기 때문”이라며 “자유와 민주 가치를 통합해 공화의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오승현 기자

-앞으로 보수정당이 살 길은 무엇인가.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대한민국 헌법의 가치를 충실하게 따르고 관련 정책들을 적극 발굴하라고 주문하고 싶다. 우리 헌법은 굉장히 잘 만들어졌고 시대를 앞서간 문서다. 현대 민주주의 국가의 헌법은 좌변의 민주, 우변의 자유, 꼭짓점의 공화 등 삼각형 모양의 정치철학적 화두로 구성돼 있다. 우리 헌법도 제1조 1항에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고 시작해 제4조에서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를 규정하고 제12~22조는 신체·사생활·양심 등의 자유를 구체화하고 있다. 민주는 민중의 자기 지배를 뜻하는데 이를 지나치게 강조하면 민주주의가 태동한 고대 아테네에서 보듯 중우정치로 퇴행할 수 있다. 반대로 자유만 밀어붙이면 사회 양극화 위험을 초래한다. 이 두 가치 간의 충돌을 막고 통합하는 상위의 화두가 바로 공화다. 동양식으로 말하자면 ‘천하는 모두의 것’이라는 ‘천하위공(天下爲公)’의 정신이다.

-보수 세력이 받아들여야 할 진보적 어젠다가 있다면.

△공화주의적·민주주의적 어젠다를 적극 받아들여 자유주의 보수의 내용을 풍요롭게 만들어야 한다. 예컨대 사회적 양극화 해소나 민중의 정치 참여 확대는 보수가 적극 수용해야 할 시대적 과제다. 말은 쉽지만 실천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민주적 다원주의와 공공선에 대한 존중을 실제 행동으로 증명하는 지도자가 있다면 시작은 미약할지라도 미래는 창대할 것이라고 본다.

-현 정부의 국정 운영은 어떻게 평가하나.

△요즘 독재자들은 과거와 달리 다수 국민의 자발적 지지를 받는 경우가 많다. 민주제도나 시민사회도 존재하고 선거를 통한 정권 교체의 가능성도 열려 있다. 우리가 지금 그런 상황이다. 하지만 현 집권 세력은 독일 정치철학자 카를 슈미트가 아돌프 히틀러의 절대 권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예외 상태’라는 개념을 만들어낸 것과 유사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윤석열의 난을 척결한다는 명분 아래 반헌법적이고 위헌적 법률을 밀어붙이고 있다. 특히 사법 3법은 민주공화정의 근간을 무너뜨리게 될 악법 중의 악법이다.

-법치주의 훼손에 대한 우려도 크다.

△검찰은 대통령 측근과 민주당 유력 인사들에 대한 기소를 취하하고 경찰은 수사조차 하지 않고 있다. 정권 이너서클의 인사들은 중죄를 저질러도 처벌받지 않는 사회를 제도적으로 관철하려 하고 있다. 어떤 이유로도 사회적 특수 계급을 창설하지 못하도록 한 우리 헌법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행위다. 또 대통령 재판 관련 변호사들이 대거 고위직에 올랐다. 불법은 아니지만 중차대한 국가 운영을 사유화하고 있는 것이다.

윤평중 한신대 철학과 명예교수가 9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국 보수의 몰락 위기는 대한민국 헌법에 규정된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배신했기 때문”이라며 “자유와 민주 가치를 통합해 공화의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오승현 기자

-과거 민주화 운동 세력이 민주주의 근간을 훼손하고 있는 현실이 역설적인데.

△그들은 자유라는 가치는 폄하하고 민주는 굉장히 좁게 다수결로만 이해한다. 자유민주주의는 가진 자를 위한 부르주아지 민주주의라고 폄하한다. 서로 타협하고 조정하는 공화적 가치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 또 서로 운동권 선후배 사이다 보니 일반 시민들의 눈높이에 못 미치는 언행을 해도 감싸고 공공선에 대한 인식이 굉장히 부족하다. 공화의 가치를 송두리째 무너뜨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한국 정치에 희망이 있다면.

△오늘날 한국을 선진국으로 만든 우리 국민이다. 한국 산업화·민주화 성공의 결정적 주체는 보통 국민들이었다. 12·3 친위 쿠데타가 실패한 것도 특전사 청년들이 태업하고 일반 국민들이 여의도로 쏟아져 나와 저항한 덕분이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한국인으로 태어난 것에 굉장히 자랑스러워하고 있다. 이런 국민들이 있는 한 대한민국의 미래는 낙관적이라고 본다. 희망이나 의지는 현재를 만들고 미래를 조각한다.

-우리 사회에 음모론이 횡행하고 있는데.

△시민사회에 팩트(사실)의 존엄함을 다시 강조하고 싶다. 한 사람의 주관적 양심조차 과학적 사실과 객관적 합리성의 잣대를 통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민주 다원사회에서 의견이 다른 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하지만 과학적 사실성에 위배되는 주관적 믿음을 주변에 강변하는 것은 성숙한 사회의 모습이 아니다.

-공공 지식인이 실종됐다는 우려가 크다.

△가장 큰 원인은 적대적 진영 대립이다. 공공 지식인이라면 특정한 정치적 선호가 있더라도 잘못은 잘못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한편으로는 기술 혁명으로 인해 지식인이 별다른 게 아닌 사회가 됐다. 깨어 있는 보통 사람들도 국경을 넘나드는 전문 정보들을 활용해 얼마든지 공공 지식인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 이탈리아 사상가 안토니오 그람시의 ‘유기적 지식인’이라는 개념대로 집단 지성을 발휘할 수도 있다고 본다.

He is…

1956년 전남 함평에서 태어나 광주일고와 고려대 철학과를 졸업한 후 미국 서던일리노이주립대에서 철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9년부터 한신대 철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한신대 대학원장과 학술원장을 지냈다. 미 버클리대, 미시간주립대, 럿거스대에서 연구교수를 역임했고 대통령 소속 사회통합위원 등으로 활동했다. 공화주의자를 자처하며 보수와 진보, 양 진영을 가리지 않고 비판을 서슴지 않는 논객으로 유명하다. ‘국가의 철학’ ‘시장의 철학’ ‘급진 자유주의 정치철학’ 등 여러 저서가 있다.

최형욱 논설위원 choihu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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