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가지 논란' 제주, 이색체험 승부수 통할까
내국인 관광객 2022년 정점 이후 감소
지자체와 정부, 관광 수요 되돌리기 총력

1990년대 제주도는 '설렘'의 상징이었다. 비행기를 타고 떠나는 유일한 이국적 공간으로 가족여행과 신혼여행의 '성지'로 군림했다. 2010년대 들어서는 저비용항공사(LCC)의 보급과 올레길 열풍이 더해지며 누구나 쉽게 떠나는 '국민 휴양지'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해외여행의 대체지로 부상한 제주는 2022년 내국인 관광객 1380만명이라는 역대 최다 기록을 갈아치우며 정점을 찍었다.
그러나 화려한 기록 뒤엔 그림자가 드리웠다. 엔데믹과 함께 해외여행이 재개되자 제주의 입지는 흔들렸다. 단순히 하늘길이 열린 탓만이 아니다. 온라인상에서 끊이지 않는 '바가지 요금' 논란과 천편일률적인 관광 콘텐츠는 내국인들이 제주 대신 일본이나 동남아로 발길을 돌리는 결정적 이유가 됐다. "그 돈이면 차라리 해외를 가겠다"는 싸늘한 여론은 제주 관광 산업에 비상등을 켰다.
실제로 수치도 위기감을 드러냈다. 제주도관광협회에 따르면 2022년 1380만명이었던 관광객 수는 2023년 1266만명, 2024년 1186만명, 2025년 1160만명으로 매년 감소세를 보였다. 그나마 외국인 관광객이 늘면서 전체 관광객 수를 방어하는 형국이었다.
"다시 오게 만들자"
위기감을 느낀 제주특별자치도와 관광 유관 기관들은 내국인 마음을 되돌리기 위해 파격적인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우선 현금성 지원을 강화했다. 올해 1월부터 시행 중인 '단체관광객 유치 인센티브' 사업은 15인 이상의 동창회, 동호회 등이 방문할 경우 1인당 3만원의 지역화폐 '탐나는전'을 지급한다. 뱃길을 이용할 경우 10인 이상부터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디지털 전환도 핵심 전략 중 하나다. NFT 기반 디지털 관광주민증 서비스 '나우다(NOWDA)'가 대표적이다. 이용자는 렌터카, 골프장, 식당 등에서 도민 수준의 할인을 받을 수 있다. 방문 횟수에 따른 레벨업 게임 요소를 도입해 재방문을 유도한다. 여기에 '제주와의 약속' 캠페인을 통해 고질적인 가격 논란을 정면 돌파하며 이미지 개선에 공을 들였다.

지자체의 이런 노력에 발맞춰 정부 차원도 지원 사격에 나섰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는 '대한민국 숙박 세일 페스타' 등 대규모 할인 캠페인을 통해 제주를 포함한 국내 여행의 가격 문턱을 대폭 낮췄다.
또 항공업계와의 협력을 통해 제주 노선의 공급석을 확대했다. 여기에 지자체와 민간 기업이 협업해 워케이션(Workation) 거점 센터를 확대 조성하면서 내국인 관광객의 발길을 다시 돌리는 결정적 촉매제가 됐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두 자릿수 감소세를 이어가던 내국인 관광객 수는 지난해 7월 처음으로 2.7% 증가로 반등했다. 10월부터는 본격적인 회복 흐름을 보이며 누적 감소 폭을 상당 부분 만회했다.
이에 따라 제주도는 올해를 '더-제주 포시즌즈 방문의 해'로 선포하고 사계절 체류형 관광 확대에 나섰다. 귤꽃·오름·해변 등 계절별 특화 콘텐츠를 비롯해 국제관광마라톤, 주민주도 농어촌 관광, 최우수 관광마을 육성, 제주형 웰니스 인증 제도 등을 통해 계절별·테마별 장기 체류형 관광 콘텐츠를 강화할 계획이다. 아울러 '한 달 살기' 수요를 겨냥해 '디지털 퐁낭 라운지'를 조성하는 등 체류형 관광 인프라 확충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숨은 매력 발굴이 관건
관광당국의 지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관광객의 발길을 이끄는 독창적인 '콘텐츠'다. 글로벌 숙박 플랫폼 에어비앤비는 '커뮤니티 펀드'를 통해 제주 해녀가 직접 호스트로 참여하는 '할망숙소' 프로젝트를 지원하고 있다. 구좌읍 등지에서 해녀가 직접 잡은 해산물로 차린 '해녀의 부엌' 식사 체험이나 해녀의 삶을 공유하는 프로그램은 젊은 여행객 사이에서 '진정한 제주'를 만나는 로컬 여행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안은주 제주올레 대표는 "올레길은 단순히 걷는 길이 아니라 길을 걸으며 제주의 문화와 자연, 기술, 역사를 함께 경험하는 공간"이라며 "이 과정에서 제주 숙소에서의 독특한 경험 역시 중요한 요소인데 그동안 할망숙소가 그런 역할을 충분히 해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할망숙소가 단순한 숙소를 넘어 여행자가 지역의 일상을 가장 가까이에서 느끼는 '머무는 여행'의 출발점으로 자리매김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지난 6일. 제주 화순곶자왈에서는 특별한 프로그램이 열렸다. 제주의 허파라 불리는 '곶자왈'은 숲을 뜻하는 '곶'과 덤불을 뜻하는 '자왈'이 합쳐진 이름이다. 나무와 덩굴이 거칠게 뒤엉킨 이곳에서 체험객들은 생태해설 전문가인 '사운드워커'의 안내에 따라 눈이 아닌 귀로 숲을 만나는 '사운드워킹'에 나섰다.
사운드워킹은 헤드폰과 전문가용 소형 녹음기, 삼각대를 지참하고 자연의 소리에 온전히 집중하는 프로그램이다. 장비를 착용하자 평소라면 무심히 스쳐 지났을 소리들이 생생하게 귓가를 파고들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의 서걱거림부터 자신의 발자국 소리까지 입체적으로 살아났다. 텃새들이 날아오는 철새를 경계하며 내뱉는 날카로운 비명과 송버드들의 청아한 노랫소리는 대조를 이루며 숲의 생명력을 실감케 했다.

사운드워커는 "인간의 시각은 보고 싶은 것만 선별할 수 있지만, 귀는 자의로 닫을 수 없어 늘 열려 있다"며 "우리는 인위적인 소리인 '엔트로폰'에 둘러싸여 사는데, 소리 또한 하나의 욕구다. 자연의 소리로 그 욕구를 해소하고 나를 채워주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숲의 생태를 인간의 삶에 빗댄 해설도 인상적이었다. 칡과 등나무가 뒤엉킨 모습을 가리키며 "한자어로 칡 갈자와 등나무 등자를 써서 이렇게 다른 성질의 것이 부딪히는 것을 '갈등(葛藤)'이라 부른다. 갈등은 불편할 수 있지만, 역설적으로 나무를 지탱하고 살아가게 하는 성장 동력이 된다"는 대목은 깊은 울림을 줬다.
사운드워킹이 특별한 이유는 우리가 향유하는 소리들이 점차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개발 탓에 물길이 바뀌며 제주 몽돌해변의 자갈 소리는 이미 4년 전 자취를 감췄고 여름 철새의 개체 수 역시 급감하고 있다.세계 최초로 사운드워킹 프로그램을 개발한 이용원 더사운드벙커 대표는 "소리 또한 우리가 보존해야 할 소중한 유산"이라며 "사운드워킹은 현재 들려오는 소리에 집중하며 과거나 미래에 대한 잡념을 끄는 '소리 명상'이다. 많은 이들이 이 체험을 통해 안정감과 행복지수를 되찾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다이 (neverdie@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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