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홍련’…저승의 재판장서 울리는 ‘록 씻김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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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포승줄이 허공을 가른다.
창작 뮤지컬 '홍련'의 마지막 장면은 마치 한편의 씻김굿 같다.
지난달 28일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에서 재연 막을 올린 '홍련'(5월17일까지)은 작은 규모의 창작 뮤지컬이지만 이미 확실한 팬층을 가진 작품이다.
아버지를 죽이고 동생까지 해쳤다는 혐의로 저승의 천도정에 끌려온 홍련(이지혜·강혜인·김이후·홍나현)은 사건의 기억을 제대로 떠올리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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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포승줄이 허공을 가른다. 억울하게 죽은 소녀의 이름이 다시 불리는 순간, 객석 어딘가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린다. 창작 뮤지컬 ‘홍련’의 마지막 장면은 마치 한편의 씻김굿 같다. 관객은 공연을 바라보는 자리에 머물지 않는다. 홍련과 함께 울고, 함께 숨을 고르며, 오래 묵은 감정을 풀어내는 의식에 참여하는 느낌을 받는다.
지난달 28일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에서 재연 막을 올린 ‘홍련’(5월17일까지)은 작은 규모의 창작 뮤지컬이지만 이미 확실한 팬층을 가진 작품이다. 2022년 씨제이(CJ)문화재단 창작 뮤지컬 지원 사업 ‘스테이지업’ 선정작으로 개발돼 2024년 초연했다. 당시 예매처 평점 9.9점, 평균 객석 점유율 99%라는 기록을 남기며 전석 매진 행렬을 이어갔다. 이후 제9회 한국뮤지컬어워즈 작품상(400석 미만)을 받으며 작품성을 인정받았고, 국내 6개 도시 투어와 중국 광저우 워크숍, 상하이 라이선스 공연까지 이어졌다.

작품의 출발점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아는 고전 소설 ‘장화홍련전’과 설화 ‘바리데기’다. 하지만 익숙함을 그대로 옮기지 않는다. 이야기는 저승의 재판장에서 시작된다. 아버지를 죽이고 동생까지 해쳤다는 혐의로 저승의 천도정에 끌려온 홍련(이지혜·강혜인·김이후·홍나현)은 사건의 기억을 제대로 떠올리지 못한다. 저승신 바리(이아름솔·김경민·이지연)와 차사들은 홍련의 기억 속 장면을 하나씩 불러내며 사건의 진실을 추적한다.
재판을 집행하는 강림(이정수·신창주·이종영)과 월직차사(김대현·백종민), 일직차사(신윤철·정백선)는 저승의 사자이면서 동시에 홍련의 기억 속 인물들로 끊임없이 변주된다. 배우 수는 많지 않지만 멀티롤 구조 덕분에 무대는 계속 얼굴을 바꾼다. 차사들이 기억 속 인물로 변신할 때마다 사건의 퍼즐이 조금씩 맞춰지고, 홍련의 잊힌 과거도 서서히 드러난다.

‘홍련’의 가장 큰 특징은 한국적 정서를 무대 언어로 풀어낸 방식이다. 작품은 씻김굿의 구조를 서사의 중심에 놓는다. 혼을 부르고, 얽힌 매듭을 풀고, 영혼을 씻어 보내는 의식이다. 여기에 록 음악을 결합한 점도 인상적이다. 강렬한 밴드 사운드는 억눌린 감정을 밀어 올리듯 폭발시키고, 배우들의 목소리는 마치 굿판의 절규처럼 객석을 파고든다.
후반부 클라이맥스는 작품의 정수를 보여준다. 홍련이 마침내 자신의 기억과 마주하는 순간, 무대는 재판에서 의식으로 바뀐다. 배우들의 노래와 음악이 뒤엉키며 공연은 한 상처받은 소녀의 영혼을 씻어 보내는 굿판으로 변한다. 이 장면에서 객석의 감정도 함께 흔들린다. 눈물을 훔치는 관객들이 적지 않다. 홍련의 이야기가 작품 안의 비극을 넘어, 말하지 못했던 개인의 감정과 억눌린 상처를 건드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홍련’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한국 설화와 전통 의례, 록 음악을 결합해 익숙한 이야기를 완전히 다른 정서로 풀어낸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한’을 설명하려 들지 않는다. 대신 무대 위에서 그 한을 풀어낸다. 공연이 끝나고 조명이 꺼진 뒤에도 객석에는 묘한 여운이 남는다. 긴 굿판이 끝난 뒤처럼, 마음 한편이 조금은 가벼워진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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