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수터) 광주특별시, '최저 보행로 폭' 기본권 확보하라

“그 도시의 수준을 알고 싶으면 유아차를 끌고 걸어 다녀 보면 된다.” 오성훈 건축공간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의 말이다. 지난 1년간 광주를 대상으로 도로 다이어트 기획 취재를 하는 과정에서 가장 뇌리에 박힌 말이다. 실로 그렇다. 광주의 어느 길거리를 다녀도 유아차를 끌고 다니는 부모를 보기란 어렵다. 구도심은 말할 것도 없고 신규로 조성된 택지지구에서도 많이 볼 수 없다.
아이가 없어서일까? 아니다. 대단지 아파트나 넓은 쇼핑몰에 가면 볼 수 있다. 구도심과 골목상권이 침체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본인이 어린 자녀가 있다면 지금 광주의 거리를 걷겠는가? 아이는 그 사회에서 가장 보호 받는 존재다. 그 아이를 데리고 도로에 나갈 수 없다는 건 그만큼 거리가 안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최소한의 보행로를 확보하지 않은 곳이 태반이다. 좁은 보행로, 그 좁은 보행로마저 자전거와 함께 이용해야 하는 게 작금의 광주 도로 실태다. 우리 도시는 왜 최소한의 ‘안전한 보행로’ 확보에 대한 논의가 적을까?
보행은 모든 이동의 시작과 끝이다. 대중교통, 자전거, 자동차 등 모든 이동수단도 결국 보행이 동반된다. 이동권 약자든 강자든 모든 이들은 거리를 걸어야 한다. 그렇기에 보행은 대중교통 이용률을 높이기 위한 핵심 전제 조건이기도 하다. 이동을 기본권적 가치로 접근한다면 최소한의 보행 권리를 도시가 보장해야 한다. 단순한 ‘길 걷기’를 넘어 시민의 생존과 안전이 직결된다. 보행이 단절된 곳에서 ‘대자보 도시’는 공허한 구호일 뿐이다. 자동차 중심에서 대중교통, 사람 중심의 도시 구조로 전환하는 ‘대자보 도시’ 전략의 성공 여부는 ‘걷고 싶은 환경’을 얼마나 촘촘하게 구축하느냐에 달려 있다. 보행이 이뤄지는 곳에서 도시의 숨이 트인다. 골목 상권도 마찬가지다. 도시가 살기 위해서는 걸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대자보 도시 전략으로 ‘걷고 싶은 길’을 여러 군데 조성하는 것은 분명 의미가 있지만 본질적 접근은 아니다.
도시의 모든 도로에서 예외 없는 ‘최소 보행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주택법에도 ‘최저주거기준’(1인 가구 기준 최소 주거면적 14㎡)을 명시하고 있다. 국민이 쾌적하고 살기좋은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주거 기준이다. 현재 국토교통부령에는 ‘보도의 유효폭’은 최소 2m 이상으로, 부득이한 경우에는 1.5m 이상으로 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그러나 현실은 예산 부족이나 기존 건축물과의 인접성을 이유로 1.5m 미만, 혹은 아예 보도가 없는 도로가 허용된다. 더군다나 주택가 이면도로는 법적으로 ‘보도’와 ‘차도’가 구분되지 않은 보차혼용도로인 경우가 많다. 이 경우 차량 주차가 보행권을 완전히 잠식한다. 흔히 골목길이라고 부르는 광주의 주택가 이면도로 대부분이 이에 해당된다.

우리 법은 보행을 시설물 설치의 기준으로 볼 뿐, 시민이 누려야 할 권리로 정의하는 데 인색하다. 정부 법에서 임의 규정을 강행 규정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 그와 동시에 우리 도시도 최소한의 보행권 확보를 위해 할 수 있는 수단을 모두 동원해야 한다.
광주시는 ‘대자보’를 표방하면서도 여전히 차량 중심 관성이 남아 있다. 현재 광주의 보행 정책은 ‘남는 땅에 인도를 만드는 방식’이다. 이제는 순서를 바꿔 사람이 걷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폭(1.5~2.0m)을 먼저 떼어놓고 나머지 공간에 차도와 주차장을 배치하는 ‘보행 우선 배분 원칙’을 조례로 못 박아야 한다. 법령에 기준이 없어서 못 하는 것이 아니라, 보행을 권리로 인정하는 행정적 의지가 없는 것이 문제다.
조례가 아니더라도 문화로서 ‘보행권 확보’ 운동이 필요하다. 실제 정책을 집행하는 데 있어 시민 인식과 충돌이 크기 때문이다. 특히 보행로 확보 과정에서 ‘주차’를 둘러싼 주민과 상인 간 갈등이 불가피하다. 그러다 보니 지금도 인도 위 불법 주차를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방치하는 사이 보행자의 이동권은 가장 먼저 포기해야 할 가치로 전락했다. 그러면서도 막대한 세금을 투입해 공공주차장을 짓는 행위가 반복되고 있다.
보행로 확보와 주차는 충돌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결국 도로다이어트와 일방로 전환 등 도로 입체화는 보행로, 자전거도로, 주차장 확보 모두를 가져갈 수 있다. 즉, 도로다이어트나 일방통행 전환을 통한 ‘도로 재구조화’ 단행이 필요하다. 기존의 무질서한 양방향 도로를 과감히 일방통행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를 통해 확보된 여유 공간에 보행로, 자전거도로, 합법적 노상주차장을 패키지로 조성하는 ‘도로 다이어트’ 로드맵을 수립해야 한다.
민간 주차장 활성화를 위한 ‘용적률 인센티브’ 대폭 확대가 필요하다. 모든 주차 문제를 세금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 민간이 주차 전용 빌딩을 짓거나 부설 주차장을 개방할 경우 수익성을 보장할 수 있도록 용적률 인센티브를 파격적으로 늘리고 주차장 내 근린생활시설 허용 비율을 확대하는 조례 개정을 검토해야 한다. 아울러 노상주차장 유료화를 통해 보행 환경 개선에 재투자해야 한다.
이삼섭 취재1본부 차장 seobi@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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