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지혁 “오토픽션, 몸을 가진 작가의 경험이 담긴 이야기”

오토픽션. 자기 자신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어원의 ‘auto’와 허구를 뜻하는 ‘fiction’의 결합어로 저자의 실제 삶과 소설적 상상력이 더해진 글쓰기 장르를 말한다. 문지혁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자서전과 자전적 소설 사이의 장르”다. 현실과 허구의 세계가 교차하는 것이 복잡해 보일 수 있지만, 의외로 단순하게 접근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작가 스스로 완전한 하나의 세계를 세우기만 한다면. <초급 한국어>, <중급 한국어> 등으로 자신만의 오토픽션 세계를 구축해 나가고 있는 문지혁 작가를 지난 3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만나 ‘오토픽션’이 무엇이며, 이를 통해 어떤 이야기를 더 할 수 있을지 들었다.
작가는 지난달 신간 <나이트 트레인>을 냈다. 1999년을 배경으로 20대 청년인 ‘나’가 헤어진 연인이 이별 선물로 준 반지를 버리러 3주간 유럽 여행을 떠난 이야기를 큰 줄기로 삼는다. 여기에 ‘나’가 여행을 하며 써낸 습작 비슷한 소설 속 이야기와 1999년으로부터 25년이 지나 과거를 회상하는 40대 ‘나’의 이야기가 겹쳐진다. 역시 작가의 젊은 시절 유럽 여행담을 토대로 한 오토픽션이다. 소설 속 20대의 ‘나’가 쓰는 소설은 그가 실제 20대에 시작했으나 끝을 맺지 못했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40대의 ‘나’의 이야기를 읽을 때면 이건 지금 작가의 상황인가 하고 궁금증이 생긴다.
소설 속 40대의 ‘나’는 이미 결혼한 기혼 남성이고 아내에 대한 이야기도 등장한다. 문지혁도 결혼해 자녀 둘이 있다. 소설 속 ‘나’의 옛사랑이 작가 문지혁의 옛사랑처럼 보일 수도 있다. 소설을 본 실제 아내의 반응은 있었을까. 문지혁은 “아내가 언제나 내 책의 첫 독자다. 다만 소설 속의 아내는 현실의 아내와 아무 관계가 없다. <초급 한국어> 이후의 오토픽션 세계관을 동일하게 맞추기 위해서 아내를 등장시키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아내’라는 인물은 어쩌면 문지혁의 오토픽션이 현실의 일을 그대로 써낸 자서전이 아니며, 그 자체로 하나의 독자적인 세계라는 단적인 증거처럼 보인다.

SF를 비롯해 다양한 장르의 글쓰기를 선보여왔으나 ‘오토픽션’은 ‘문지혁’을 상징하는 단어처럼 됐다. 그는 “칼 오베 크나우스 고르의 <나의 투쟁>처럼 해외에는 이미 자기 일생을 하나의 시리즈로 재구성하는 작가들이 있다. 국내에서도 박완서 선생님의 작품들이 그렇다. 나 역시 박완서의 작품을 많이 참고하고 공부했다”고 말했다.
“소설의 미래는 오토픽션에 달렸다.” 챗GPT 등 언어 기반 인공지능(AI)이 대두하면서 그가 예전부터 해오던 이 말이 좀 더 특별한 의미를 가지게 됐다. 그는 “몸을 가진 작가의 경험이 담겨 있지 못한, 재미있지만 어딘가 본듯한 것들은 빠르게 대체될 것이라 생각한다. 내면을 언어화 시킬 수 있는 유일한 장르는 소설”이라며 “앞으로는 저자성이 더욱 중요해지고, 작가들도 점점 더 앞으로 나올 거라 생각한다. 독자들은 이 소설을 쓴 사람이 진짜 살아있는 사람인지 확인하고 싶어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유학 경험을 담은 대표작 <초급 한국어>는 미국 뉴욕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한 남성의 이야기다. 이어진 작품 <중급 한국어>는 주인공이 미국 뉴욕 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학생들을 대상으로 글쓰기 강의를 하는 것과 결혼 이후 아이를 낳아 키우는 생활을 담았다. 그 이후의 이야기를 담은 ‘~한국어’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 <실전 한국어>가 올봄 출간된다.
이후엔 새로운 프로젝트도 구상 중이다. 인물의 내면과 그 주변에 제한될 수 있는 자전적 이야기의 한계를 벗어나 이를 사회적으로 확장해 이야기를 풀어낼 예정이다. 주된 소재는 1950~60년대 일본 사회에서 벌어졌던 ‘재일교포북송사건’이라고 말했다. 그는 “내 글쓰기의 또 다른 주제인 ‘디아스포라’와도 연결된 얘기다. 현재 취재는 거의 다 했다. 이 사건을 취재하는 ‘나’를 따라가며 오토픽션으로 쓸 생각”이라고 말했다.
고희진 기자 go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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