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말 ‘신의주 도당청사 화재’는 성난 주민이 저지른 방화였다[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 사이]

지난해 12월 7일 북한 신의주 평북 도당 건물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했다. 압록강 건너편 중국 단둥(丹東)에서도 치솟은 검은 연기가 보였다. 북한은 건물 잔해를 급히 철거했다. 내부 소식통에 따르면 도당 청사 중심부 회의실이 불타 5명이 죽고 대형 초상화와 조각상들도 타 버렸다. 당국은 화재를 합선으로 위장한 방화로 결론 내고 은밀히 수사하고 있다. 아직 범인을 잡지는 못했다.
신의주는 온실 건설을 계기로 최근 김정은이 가장 많이 찾은 도시이다. 화재 열흘 전에도 김정은이 다녀갔다. 그런 신의주에서 가장 상징적인 도당 건물을 태워 버렸다는 것은 북한 역사를 돌아봐도 유례없는 일이다. 김정은은 “감히 어떤 놈이 이런 짓을 했냐”며 펄쩍 뛰었을 것이다.
김정은은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지금 북한 민심은 그가 집권한 이래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가장 큰 원인은 민생 파탄이다. 이번 겨울에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이후 30년 만에 다시금 수많은 아사자와 동사자가 발생했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북한은 지금 완벽히 봉쇄돼 여러 지역에서 아사자가 많이 생겨도 외부에 소식이 전해지기 어렵다.
주민들은 굶어 죽는 이유가 김정은 때문이라는 것을 다 알고 있다. 아무리 노동당 대회에서 자화자찬해 봐야, 주택단지와 온실이나 지방공업공장을 완공했다고 만세를 불러 봐야 대다수 주민에겐 딴 나라 이야기에 불과하다.
김정은은 주민들이 수십 년 동안 의존해 먹고살던 장마당 경제의 핵심 근간을 단 2년 만에 무너뜨렸다. 몇 가지 사례만 들어 보자.
김정은은 2년 동안 초라한 지방산업공장 40개를 겨우 건설해 놓고 무슨 자신감인지 외국에서 수입하던 제품 180종에 대해 수입금지 조치를 내렸다. 주로 중국에서 들여오던 것으로 민생에 절실한 식품을 비롯한 생필품이다. 김정은의 의도는 지방산업공장 생산품으로 국영 유통망을 강화해 내수 시장을 살리겠다는 것이었을 터다. 그래서 완제품을 사 오지 말고 원료를 사 오라는 지시도 내렸다.
문제는 지방산업공장이 내수 시장을 충족하기엔 턱없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제대로 돌아가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김정은도 지난달 당 대회에서 새로 건설된 공장이 1년도 되지 않아 제대로 운영되지 않는다고 고백하면서, 이를 간부들 태만과 무책임성 때문이라고 했다. 전기도 원료도 외화도 주지 않으면서 공장을 정상화하라는 지시가 얼마나 황당한지도 모르는 것 같다. 이러는 사이에 수입금지 조치로 장마당 시스템이 붕괴했다.
장마당에서 물건을 팔던 상인들은 하루아침에 굶어 죽게 생겼다. 어제까지 밥 먹고살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소득을 잃었는데, 내부 식량 가격은 무섭게 오르고 있다. 북한에서 지난달 중순 기준 북한돈 환율은 1달러당 4만 원을 넘겼고, 쌀 1kg 가격도 2만 원을 넘었다. 2년 전엔 각각 8000원, 5000원 안팎이었는데 미친 듯이 오른 것이다. 그렇다고 주민 소득이 따라 오른 것도 아니다. 월급도 2년째 제자리다. 그러니 비싼 식량과 땔감을 살 수 없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이다.
여기에 식량 생산도 크게 줄었다. 이것도 김정은 때문이다. 그의 농촌개혁안에 따라 농장 작업반장은 국가 공급 비료를 외상으로 받아 가을에 식량으로 갚아야 한다. 가을 수확량을 알 수 없는 데다 흉작이면 빚더미에 올라앉는 구조라 많은 반장이 지난해 비료 구입을 포기했다.
인민은 아우성치는데 김정은의 건설판은 점점 커진다. 지방산업공장만 지으라더니 이젠 봉사기지도 건설하고 병원도 건설하고 목장도 지어야 한다. 건설 비용은 주민 주머니에서 나온다. 건설 노동자들에게 장갑과 양말을 줘야 한다, 배부르게 먹여야 한다 등등의 구실로 계속 인민반들을 쥐어짠다.
돈독이 오른 김정은은 병원에 가서도 돈을 내야 치료를 받게 했다. 치료비와 약값은 북한 주민 소득에 비해 어마어마하게 비싸다. 이제 가난한 사람은 아프면 죽어야 한다.
이러니 어차피 죽을 바에야 불이라도 확 지르겠다는 사람이 나오는 것이다. 이란처럼 대규모 민중 봉기가 일어난 뒤 미국이 김정은을 제거해준다는 믿음만 있다면 북한 주민들은 다 거리로 몰려나올지도 모른다. 정작 김정은은 이런 민심을 알고는 있을까. 어린 딸을 데리고 총이나 쏘러 다니는 것을 보면, 전혀 모르는 것 같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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