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 수필 ] 볼거리 정말 많은 아름다운 내소사, 미당 서정주의 감칠맛 언어로 승화
변산반도 적벽강 채석강 풍경, 실경이 환상이고, 환상이 다시 실경 반복

[<사람과 산> 이수인 전문기자]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계속 산길을 걸어 앞으로 나간다. 얼마쯤 암릉지대가 이어가는가 싶더니, 어느새 내소사를 남쪽으로 품으며 솟구친 거대한 암봉 – 관음봉 의 서쪽 측면에 발길이 이른다.
관음봉은, 그 봉우리의 동쪽을 제외한 서남북쪽으로는, 비슷한 높이의 다른 봉우리들이 없이, 거의 원뿔형으로 솟구친 독립형 봉우리다. 가까운 거리 안에는 그냥 깊고 얕은 골짜기들만 보이는 곳이다. 어쨌든, 이 돌올한 관음봉에 올라서서 사방을 지긋하게 내려 보려니, 그제서야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다.
어처구니 없는 확인이요, 굼뜰 대로 굼뜬 기억이겠지만, 다시 보니 여기는 내가 예전에 이미 산행을 했었던 곳이 분명했다. 명명 백백한, '기왕(旣往)의 장소' 였다. 그러니까, 아까 지나쳐온 월명암인가 하는, 규모는 비록 작지만 그래도 격조가 분명한 오래된 암자는 나의 이 옛 기억에 포함되지 않지만, 그 뒤로 쭈욱 이어서 걸어온 저수지와, 폭포를 낀 구간과, 그리고 이 봉우리들은, 모두 내가 예전에 답사를 왔었던 장소라는 생각이 구체적인 인식 차원으로 스물스물 올라오고 있었던 것이다.
아아, 그렇듯 당당한 관음봉의 기상은, 그 정상의 공간의 아우라는, 어처구니없게도 과거 어느잡지의 객원 기자로 내가 직접 답사하고 취재해서 소개했었던, 천년 고찰 내소사의 뒷산인, 바로 그 "관음봉"이었던 것이다.


기왕 이렇게 말이 나왔으니, 여기서 잠깐, 불멸의 산악인 고 김홍빈 대장의 이력을 조금 살펴보기로 하겠다. 산악인 김홍빈(金洪彬, 1964-2021). 그는 1991년 북미 데날리 등반 도중 조난을 당해서 동상으로 양손 손가락 모두를 잃었다. 하지만 그 이후 등산을 포기하지 않았고, 장애인 스키 국가대표로 패럴림픽에 참여하기도 했었다. 말 그대로, '불굴의 산악인이요, 체육인'이었다.
그렇게 그는 쉬지 않고, 장애인으로 7대륙 최고봉과 8,000m 급 히말라야 14봉을 등정을 했다. 그러나 2021년 7월 19일. 히말라야 브로드피크 등정에서, 그는 안타깝게도 하산하는 도중에 실종되고 말았다. 시신도 남기지 못한 실종상태로 그는 그렇게 아득한 설산 속으로 영면에 들어갔던 것이다.
이런 안타까운 생각에 빠져있다가 나는 다시 정신을 수습하고, 군데군데 낙석을 피할 수 있도록 윗쪽을 보호한 철조망형 통로를 통과해서 마침내 관음봉 정상에 이르렀다. 정상석이 있었고, 그 뒤로 둥글게 조망용 의자가 설치되어 있었다.
집사람과 그곳에 잠시 앉아, 일망무제(一望無際)란 말의 뜻을 잠시 실감해 본다. 석양이 붉게 물들어가는 외변산 쪽 아득한 바다가 눈길로 녹아든다. 적벽강 채석강이 바다로 접어드는, 그 변산반도 끝의 절경을 집약하는, 바로 그 아득하고 아득한 해안 쪽 풍경이 다소곳이 엎드려 있다.

그런데 오늘은, 내게 이 절경을 누릴 넉넉한 시간 여유가 허용되지 않는다. 해가 이미 서해바다로 뛰어들고 있는 시간이니까. 그래서 관음봉 정상석 앞에서 집사람 인증사진만 급하게 찍어주고, 관음봉 조망을 아주 잠깐만 누리고, 그리고 우리는 다시 서둘러 퇴출로를 따라 내소사 쪽으로 내려갔다.
내소사는 원래부터 볼 거리가 정말 정말 많은, 그리고 아름다운 절이다. 그 아름다움의 대부분은 이미 미당 서정주(未堂 徐貞柱, 1883~1978) 시인의 감칠맛 나는 전라도 사투리로 승화되어 문학적 생명력으로 저장되었고, 그리고 세상에 전해지고 있다. 그러니 누구든 그 시들을 곱씹으면서 문학적인 체험으로 감상할 수 있다.
그런데 문득, 옆으로 지나가는 어떤 사람의 말이, 오늘 이곳에 반가운 동매(冬梅)가 피어났단다. 순간, 그걸 꼭 보아겠다는 마음이 꿈틀 생겨난다. 그러나 이미 발에 피로가 나타난 집사람의 운행 능력이 걱정되니 아쉽지만 그것은 스치는 꽃소식으로만 받고, 일주문 쪽으로 급하게 방향을 잡는다. 하지만 이렇게 지나가는 내소사 절집 앞 전나무 숲길 또한, 이 내소사가 내놓고 자랑하는 빼어난 명품 숲길이 아니던가. 천천히 그 숲길을 음미하듯 걸어 나오니, 그래도 큰 아쉬움은 아니다.



글.사진 이수인 전문기자│ 등산학교 정규반, 암벽반, 동계반을 모두 수료했고, 2008청소년오지탐사대 지도자로 알래스카 지역을 탐사했으며, 〈사람과 산>에 장기간 '산행기', '한국의 산성', '한국산서회 인문산행', '경기도의 산' 등을 연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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