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 없인 AI도 없어"…에너지 데이터 개방 논의 띄운다
공공 데이터 개방·표준화·시장 설계 필요성 한 목소리
탄소중립과 에너지 안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AI·에너지데이터 산업 포럼이 공식 출범했다. 기후위기 대응과 에너지 전환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그간 공공기관의 폐쇄적인 관리 하에 고립돼 있던 에너지 데이터를 민간에 개방하고 이를 표준화된 플랫폼에서 안전하게 거래하는 '에너지 데이터 스페이스(Energy Data Space)' 구축이 국가적 과제로 급부상했다.

데이터 댐에서 '데이터 스페이스'로…분산형 표준 플랫폼 필요
화두는 기존의 중앙 집중식 데이터 관리 체계인 데이터 댐의 한계를 극복하는 것이었다.
반재원 퀀텀서프 대표는 "데이터 파편화와 사일로(Silo) 현상이 에너지 산업의 혁신을 가로막고 있다"며 '데이터 스페이스' 도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데이터 스페이스는 데이터를 한곳에 모으는(중앙집중형) 것이 아니라 데이터는 각 기관이 보유하되 필요할 때만 표준화된 규격(커넥터)을 통해 계약 기반으로 연결·교환하는 연합형 구조다. 유럽 IDSA(국제데이터공간협회)가 주도하는 이 방식은 데이터 주권을 보장하면서도 상호 운용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유럽은 산업 전반에서 데이터 주권과 상호운용성을 전제로 공통 데이터 스페이스들을 추진해 왔으며 에너지 분야에서도 'Common European Energy Data Space(CEEDS)' 청사진을 구체화하고 있다.
반 대표는 "에너지 데이터는 그 특성상 보안과 주권 문제가 민감해 중앙 집중식 개방이 어렵다"며 "유럽의 오메가-X, 일본의 우라노스 에포처럼 우리도 기술 국산화를 통해 글로벌 표준을 선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데이터 개방을 ▲메타데이터 개방 ▲커넥터 기반 공유 ▲분석 결과 공유의 3단계로 전략화해 민간 투자를 유도해야 한다는 분석이다.
국내 에너지 데이터의 최대 보유처인 한국전력은 플랫폼 기업으로의 전환 의지를 강조했다.
주재각 한전 AI혁신단장은 "재생에너지 변동성 관리와 계통 안정성 확보를 위해 AI 도입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며 "AI 대전환의 성패는 알고리즘이 아닌 고품질 데이터·검증된 알고리즘·컴퓨팅 파워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한전은 고품질 데이터 개방을 위해 전사적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주요 전략으로는 ▲분산된 전력 데이터의 통합 메타데이터 관리 ▲AI 학습에 최적화된 데이터 아키텍처 재설계 ▲데이터 안심 구역 및 API 마켓플레이스 고도화 등이 제시됐다.

"디테일의 악마" 거버넌스·책임·시장설계가 병목
이어진 토론에서는 데이터 개방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정책적 제언이 나왔다.
특히 산업통상부, 기후에너지환경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으로 분산된 데이터 관련 법과 조직을 통합할 컨트롤 타워 부재가 가장 큰 걸림돌로 지적됐다.
김용래 경희대 교수는 "소비 데이터는 이미 미국 빅테크가 장악했지만 에너지와 같은 산업 데이터는 아직 우리가 주도권을 잡을 기회가 있다"며 "부처별로 쪼개진 디지털 전환 촉진법과 데이터 기본법 등을 아우르는 거버넌스 구축이 시급하다"고 제언했다.
공공기관이 데이터 개방을 주저하는 현실에 대해 면책 제도 마련의 필요성도 거론됐다. 이종영 중앙대 교수와 전우영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데이터 개방에 따른 보안 사고 책임 소지가 명확하지 않아 실무진들이 개방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며 "독립적인 위원회를 통해 의사결정을 내리고 이에 따른 법적 보호 장치를 마련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장에 참석한 민간 기업들은 실제 비즈니스에 적용 가능한 '살아있는 데이터'를 요구했다.
송민영 식스티헤르츠 이사는 "데이터가 개방되더라도 시간대별 요금 차등화 등 시장 구조의 변화가 동반되지 않으면 민간의 수익 모델이 나오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김명 리벨리온 이사 역시 "전력 소모가 극심한 AI 데이터센터의 입지 선정과 계통 안정화를 위해 정교한 실시간 데이터가 필수적"이라며 AI와 에너지 산업의 결합을 촉구했다.
채영진 전력거래소 처장도 "비즈니스 모델 혁신은 창조적 파괴를 수반한다"며 "공공이 시작은 쉽게 하지만 결국 공공 때문에 멈추는 구조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지속가능한 운영모델과 역할 재정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기후부 DX 전략 TF 가동…22대 국회 "실질적 입법 성과 낼 것"
주무부처인 기후부는 조직개편 이후 기후에너지 DX(디지털전환) 전략 TF(태스크포스)를 운영하며 데이터 분과 등을 통해 전략을 마련 중이라고 밝혔다.
권현철 기후부 기후에너지신산업과장은 "데이터 안심구역은 현재 한전을 중심으로 5개 기관이 참여하고 있으나 추가로 최대 14개 기관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협의 중"이라고 언급했다. 에너지 AI 전환은 AI 데이터센터 전력 공급에만 관심이 쏠리기 쉬운데 AI로 에너지 시스템 자체를 효율화하는 가치에 대한 공감대도 함께 키워야 한다고 했다.
포럼을 주최한 김소희 국민의힘 의원은 "이번 포럼의 목표는 단순한 논의를 넘어 실질적인 입법 성과를 내는 것"이라며 "22대 국회 임기 내에 에너지 데이터 산업의 기반을 다질 수 있도록 범부처 협력을 이끌어내고 내년에는 구체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논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