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긴장에 흔들리는 에너지 공급망…중·러 지정학적 반사이익?

장지현 기자 2026. 3. 9.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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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 급등 속 中 수송로 확보, 러시아는 고유가 효과
중동 충돌이 촉발한 '에너지 공급망 블록화' 조짐
중동 정세 불안으로 글로벌 에너지의 동맥으로 불리는 호르무즈 해협의 긴장이 최고조에 달하면서 국제 에너지 공급망이 지정학적 리스크에 휩싸였다. 단순 유가 급등을 넘어 전쟁과 제재, 해상 물류, 아시아의 에너지 안보까지 복합 위기로 번지는 분위기 속에서 중국과 러시아에게는 새로운 지정학적·경제적 반사이익의 기회가 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호르무즈 해협. 사진=셔터스톡

6일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25년 기준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하루 약 2000만배럴의 석유가 수출됐고 이는 전 세계 해상 원유 거래의 약 25% 수준이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도 2024년 기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 석유 물량이 전 세계 석유 소비의 약 20%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2024년 전 세계 LNG(액화천연가스) 역시 거래량 약 20%가 호르무즈 해협을 지났으며 이 중 상당량이 아시아로 향했다. 원유뿐 아니라 가스 시장까지 동시에 요동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실제 시장 반응도 빠르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3월 첫째 주 브렌트유는 한때 배럴당 84달러대까지 오르며 주간 기준 2022년 이후 가장 큰 폭의 상승세를 기록했다. 이는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충돌이 지난달 28일 이후 본격화하면서 호르무즈 해협 통항 차질과 중동 내 생산·정제시설 차질 우려가 동시에 부각된 영향이다.

中, 호르무즈 리스크 속 '에너지 통행권' 확보 총력

중국은 이번 위기 상황에서 가장 기민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평가다.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될 경우 가장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됐으나 오히려 이를 계기로 이란과의 전략적 동맹을 공고히 하며 에너지 통행세 면제권을 확보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중국은 최근 이란 당국과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중국행 원유 운반선 및 LNG 선박에 대한 안전 보장 협상을 비밀리에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이 이란 원유의 최대 수입국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물리적 봉쇄 상황에서도 자국의 에너지 수급만큼은 차질 없이 유지하겠다는 포석이다.

전문가들은 "중국이 중동 내 외교적 중재자 역할을 자처하며 미국의 해상 통제권이 약화된 틈을 타 역내 영향력을 급격히 확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에너지 가격 상승 국면에서도 안정적인 수급 경로를 확보함으로써 제조 경쟁력을 유지하는 독보적인 반사이익을 누릴 가능성이 크다는 설명이다.

러시아, 고유가 반사이익…전쟁 경제 숨통 트이나

이 과정에서 러시아는 분명 일정 부분 반사이익을 얻고 있다. 로이터는 중동 전쟁이 유가를 밀어 올리면서 러시아의 전쟁 경제에 도움을 주고 있다고 진단했다.

미국의 시선이 중동으로 쏠리는 점 역시 모스크바에는 전략적으로 유리한 측면이 있다는 분석이다. 인도 등 아시아 수요처가 중동 공급 불안에 대비해 다시 러시아산 원유 확보에 나서는 움직임도 감지된다.

로이터는 "인도 연안 인근에 떠 있는 러시아산 원유 물량이 수주 내 투입 가능한 대기 물량으로 주목받고 있다"고 전했다.

다만 마냥 호황기로 단정하기는 이르다는 해석도 나온다. 로이터는 최근 유가 반등에도 러시아 예산을 균형 수준으로 맞추기에는 역부족이라고 계산했다.

러시아산 우랄유는 서방 제재 여파로 브렌트 대비 할인된 가격에 거래되고 있고 2026년 예산 전제 유가를 충족하려면 러시아산 원유 가격이 3월 2일 수준보다 50% 이상 더 올라야 한다는 설명이다.

러시아 재정에서 석유·가스 수입은 약 4분의 1을 차지하지만 현재의 유가 상승만으로는 재정 적자를 해소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유조선. 사진=로이터 연합뉴스

에너지 공급망 '블록화' 가속

한편 업계는 이번 사태로 에너지 공급망의 블록화 가능성을 내다보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나가는 석유 및 LNG의 80%가 아시아로 간다. IEA는 호르무즈를 지나는 원유에서 중국과 인도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한국과 일본도 높은 의존도를 보인다고 짚었다.

중동발 충격이 아시아 제조업과 전력·가스 조달 비용, 정유·석유화학 가동률, 물가까지 흔드는 직접 변수라는 의미다. 공급망 재편이 길어질수록 미국·유럽의 제재 질서와 별개로 아시아의 실물 수급 논리가 더 강하게 작동할 가능성도 있다.

IEA는 이번 중동 긴장이 단기적으로는 유가 변동성을 키우겠지만 글로벌 에너지 공급 체계가 즉각적인 물리적 부족 상황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제한적이라고 평가했다. "현재 세계 석유 시장은 비교적 충분한 여유 생산능력과 전략비축유 체계를 갖추고 있어 단기 공급 충격을 흡수할 완충 장치가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동시에 "호르무즈 해협과 같은 핵심 해상 수송로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장기화될 경우 에너지 가격 변동성과 공급망 재편 압력이 확대될 수 있다"며 글로벌 에너지 안보가 다시 주요 정책 의제로 부상할 가능성을 경고했다.

단순한 유가 급등 이벤트를 넘어 에너지 공급망의 취약성과 지정학적 리스크 관리의 중요성을 다시 확인시키는 계기가 되고 있다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