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환율 더블 쇼크에 ‘S공포’…2% 성장 멀어지나
유가 100弗→경제성장률 0.3%P 하락
경기침체 속 물가상승…금리 딜레마
물가 급등시 ‘금리인상’ 카드 불가피
“대응여력 있어 영향 제한적” 전망속
금리인상땐 내수 급랭 등 부작용 커
![이란 사태가 장기화 가능성이 높아진 가운데 국내 주유소 기름값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8일 인천 시내의 한 주유소 앞에 휘발유 매진 안내문이 붙어 있다. [연합]](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3/09/ned/20260309112605271qqna.jpg)
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의 군사 분쟁이 전면전 양상으로 치달으면서 한국 경제도 크게 휘청이고 있다. 이번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한국 경제가 경기 침체와 물가 상승이 동시에 나타나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 국면에 진입할 것이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특히, 9일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하면서 한국 경제에 ‘빨간불’이 커졌다. 이대로라면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도 2% 수준에서 1.7% 수준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물가 안정의 ‘파수꾼’ 한국은행의 고민도 점점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올해 초 ‘금리 인하’ 기조에 마침표를 찍은 뒤 비둘기파(완화)적 동결 흐름을 시사한 한은 통화정책이 변곡점을 맞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중동발(發) 물가 상승 압력이 예상보다 클 경우 2023년 1월 이후 3년 만에 금리 인상 카드를 꺼내 들 것이라는 가능성이 조심스레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중동서 덮쳐오는 ‘스태그플레이션’ 공포
‘스태그플레이션’이란 경기 침체를 의미하는 ‘스태그네이션(stagnation)’과 물가 상승을 뜻하는 ‘인플레이션(inflation)’의 합성어다. 경제 침체에도 물가가 지속적으로 오르는 상황을 가리킨다.
이론적으로 경기가 침체되면 물가가 떨어지고, 반대로 물가가 오르면 경제 호황이 맞물린다. 하지만 유가 급등 같은 변수가 생기면 물가가 오르면서 경기가 침체되기도 한다. 1970년대 ‘석유 파동’이 처음이자 대표적인 사례다.
중동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한국 경제가 다시 물가 상승과 경기 침체, 즉 스태그플레이션에 맞닥뜨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미 조짐은 여럿 있다. 우선 국제 유가가 매섭게 오르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9일 오전 7시께 브렌트유와 서부텍사스산원유(WTI)가 모두 배럴당 100달러를 넘겼다. WTI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긴 것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해인 2022년 7월 이후 처음이다.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두바이유 가격은 2022년 6월 배럴당 113.27달러에서 올해 1월 61.97달러로 쭉 떨어졌다가 2월 68.4달러로 반등한 뒤 이달(6일까지)에는 88.96달러까지 뛰었다.
시장에서는 앞으로도 유가가 계속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골드만삭스는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원유 흐름이 개선되지 않으면 국제 유가가 이달 말 배럴당 150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고 내다봤다.
원/달러 환율도 오름세를 이어가고 있다. 이날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 주간 종가보다 16.6원 오른 1493에 거래를 시작했다. 지난달 28일 중동 사태가 발발하기 직전 거래일인 27일 환율 주간 종가는 1439.7원이었는데 3월 3일에는 1466.1원으로 뛰었고, 그 뒤로 1470원대 수준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4일 새벽 야간 거래에서는 환율이 한때 1500원을 넘기도 했다. 2009년 3월 이후 약 17년 만이었다.
월평균 원/달러 환율은 지난해 12월 1467.1원 이후 1월(1456.3원)·2월(1448.4원) 연이어 떨어지다가 이달(6일까지)에는 1471.7원으로 반등했다.
동시적으로 유가와 환율이 상승하는 것은 국내 물가에 직격탄이다. 한은에서는 환율과 유가가 각각 10% 오를 경우 물가상승률이 최고 0.6%포인트 오르는 것으로 추산한다. 앞서 한은은 올해 연간 두바이유 평균 가격 64달러를 기준으로 물가상승률 전망치를 2.2%로 제시했다. 만약 연평균 유가가 100달러로 오르고 환율이 1470원보다 더 오른다고 가정할 경우 물가 상승률이 4%를 돌파할 가능성도 있다.
경기 회복세 둔화 가능성도 제기된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공습이 장기화하고 호르무즈 해협이 수개월간 봉쇄되면서 연평균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 안팎까지 오르면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은 0.3%포인트 하락하고, 경상수지는 260억달러 감소할 수 있다. 지난달 한은이 제시한 올해 경제성장 전망치에 적용하면 2%에서 1.7%까지 떨어지는 셈이다.
그만큼 한국 경제에 유가가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지난해 통관 기준 전체 수입액(6318억달러)에서 원유가 차지하는 비중은 11.9%에 달했다.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도 “한국은 연간 1000억달러가 넘는 비용을 에너지 수입에 지출하고 있기 때문에 에너지 가격 상승은 무역수지를 악화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은, ‘물가안정’ 최우선…‘금리 인상’ 강수 두나
‘물가 안정’을 최우선 정책 목표로 삼는 한은의 고민도 깊어질 전망이다. 한은은 2019년부터 물가안정 목표를 전년 대비 소비자물가 상승률 2%로 삼고 있다. 중기적 시계에서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물가안정 목표에 근접하도록 통화신용정책을 운영하고 있다. 물가 경로가 목표보다 높으면 기준금리를 올려 낮추고, 반대 경우에는 기준금리를 낮춰 물가상승률을 높이는 식이다.
지난달 한은은 기준금리를 6연속 동결하며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기존 2.1%에서 2.2%로 0.1%포인트 높여 잡았지만, 이 정도면 안정적인 수준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통화정책방향 결정문에서 “물가상승률이 목표 수준 근처에서 안정적인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며 동결 배경을 밝혔다. 금융통화위원들의 6개월 뒤 전망치를 점으로 나타낸 ‘점도표’에서도 전체 21개 점 중에 금리 인상은 1개(4.8%)뿐이었다. 그만큼 지난달 물가가 안정적인 흐름을 이어갈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중동 사태가 장기화하고 전쟁 규모가 커지면서 물가상승률이 목표치에서 크게 벗어난다면 한은으로서도 금리 인상 카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김웅 한은 부총재보는 6일 물가상황점검회의에서 “3월에는 중동 상황에 영향을 받아 국제 유가가 상승하면서 비용 측면에서의 물가 상방 압력이 커졌다”며 “향후 물가 흐름은 중동 상황 전개 양상에 대한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유가 움직임에 크게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했던 2022년에도 유가와 환율이 모두 급등하며 물가는 급등하고 무역수지는 역대 최대 적자를 냈다. 그해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두 차례의 빅스텝(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을 포함해 기준금리를 1%에서 3.25%까지 총 2.25%포인트 높였다.
해외에서도 중동 사태 이후 긴축 통화정책 기조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미국에서는 관세 부과와 중동 사태로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면서 기준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감은 점점 낮아지고 있다. 시카고상업거래소의 기준금리 예측 도구 ‘페드워치(FedWatch)’에 따르면 이달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금리를 동결할 가능성은 8일(현지시각) 기준 95.5%에 달했다. 일주일 전(92.6%)보다는 2.9%포인트, 한달 전(81.6%)과 비교하면 13.9%포인트 올랐다.
JP모건은 최근 보고서에서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올해 금리 인하 횟수 전망치를 1회에서 0회로 낮췄다. 도이치뱅크도 보고서에서 “유가 충격이 전망이 더 많은 불확실성을 가져다줄 것”이라며 “연준이 금리를 동결하는 상황을 더 강화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유럽에서도 최근 중동사태에 따른 인플레이션 우려에 기존 유럽중앙은행(ECB)의 금리 인하보다 인상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3일(현지시각) 시장은 ECB의 금리 인상 가능성을 60% 이상으로 봤다.
다만 현재 한국의 펀더멘털(기초요건)과 재정 여력 등을 고려하면 물가상승률 상승폭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한국은 미국과 비교하면 경상수지도 사상 최대 수준이고 반도체 경기도 회복되고 있는 데다 물가도 상대적으로 안정돼 있다”며 “정부로서 재정적으로 유가 충격을 흡수할 만한 여력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물가 상승 압력이 굉장히 커지고 기대 인플레이션이 불안해지는 동시에 임금이나 기타 부문으로 물가 효과가 전이되는 리스크가 생기지 않는 한 지켜볼 여지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K자형 성장’이 발목…‘동결’ 전망도 여전
이에 더해 최근 ‘K자형’ 경기 회복 흐름에 완만한 내수 회복세 등을 고려해도 금리 인상 결정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최근 한국 경제는 반도체를 중심으로 명백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앞서 한은은 반도체 수출 호조와 내수 회복 등을 근거로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8%에서 2%로 0.2%포인트 높여 잡았다. 한은은 2024년 11월 올해 전망치를 1.8%로 처음 제시한 뒤 지난해 5월 1.6%로 낮췄다가 11월 1.8%로 높이고, 이번에 재차 올렸다. 1월 경상수지도 132억6000만달러 흑자를 기록하며 33개월 연속 흑자 기조를 이어갔다.
다만 반도체 등 IT 수출 대기업을 제외한 나머지 업종의 회복세는 열악한 실정이다. 지난달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에서 이창용 총재는 “올해 성장은 내수와 IT 품목 호조에 힘 입어 2% 성장세를 보일 것”이라면서도 “다만 성장 전망의 상향 조정에도 비IT 품목 성장률은 1.4%를 유지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IT와 비IT 간 격차는 오히려 11월 전망보다 확대됐다”고 말했다.
그만큼 경제적 양극화도 심화하는 양상이다. 자칫 금리를 높였다가 일부 IT 대기업을 제외한 경제 상황이 크게 위축될 우려가 있다.
내수 회복세도 예년에 비해 더딘 편이다. 한은은 최근 ‘과거 회복기에 비춰본 현 소비 국면 판단과 전망’ 보고서를 통해 최근 반도체 중심의 수출 호조와 부동산·주식 가격 상승이 소비 증가로 이어지는 효과가 과거보다 약해졌다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민간소비는 지난해 1분기를 저점으로 빠르게 반등해 올해부터 ‘점진적 개선형’ 회복기에 진입할 것”이라면서도 “여건 개선의 소비 파급 경로가 약해진 점을 고려하면 향후 증가세가 과거와 비교해 비교적 완만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기준금리를 높일 경우 가계와 자영업자의 자금 사정을 악화시켜 내수가 급격히 냉각될 우려가 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중동 사태 장기화에 따른 경제성장률 하향 조정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는 상황에서 물가상승률이 크게 경로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경기 위축을 감수하면서까지 금리를 높이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기준금리 동결을 이어가며 관망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김벼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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